<어쩌면 그건 자발적 중매결혼이에요.>
주변에 기혼 여성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요새야 재벌가 자식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연애결혼을 한다.
연애결혼은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것이 전제이긴 하지만, 요즘은 지인의 소개에 의한 만남도 같은 범주에 포함한다. 아무래도 부모나 어른들의 중매가 아닌 또래집단의 소개로 의한 만남은 '자신의 선택 범주'로 두는 듯하다.
이런 기혼 여성들과 대화해 보면 가끔 놀라는 포인트가 있다.
연애결혼이라고 모두가 미친 듯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라는 점. '연애결혼의 핵심은 사랑'이라는 공식이 깨져서 잠시 혼란스러웠다.(마찬가지로 중매결혼의 핵심은 '조건'이라는 편견에 빠져있었다.)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면 이 결혼 안 한다."는 말은 장난처럼 웃기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한번 갔다 오거나 갔다 올 뻔했던 사람과의 깊은 대화에서 연애결혼의 선택이 오로지 사랑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집안 어르신들에 의해 중매결혼을 했다. 그 시절 사람들이야 그런 경우가 많았다 보니 서로 취향이나 성향이 다르고 그다지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했다. 조건을 보고 결혼했으니 경제적으로는 안락했지만 정서적으로 괴리감이 큰 사이였다. 둘 사이의 불화는 나를 힘들게 했고 저런 결혼을 할 바에야 혼자 사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늘 있었다.
둘은 왜 결혼한 건지. 혼자 사는 것이 각자 훨씬 더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되었을 텐데 그 시절에 싱글을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늘 '우리는 왜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가지게됐다.
사실 결혼은 안 해도 된다.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혼인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그런데 지금 난 결혼을 했다. 모든 상황이 모순스러워서 죄송.)
요즘 시대 사람들이야 집안의 강압 없이 대체로 자유롭게 연애와 결혼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미친 듯 사랑에 빠지고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간절한 마음으로 결혼을 선택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인들과 내밀한 대화가 오가기까지는.
사실 연애결혼이라고 모든 것에서 선택적 자유가 있는 건 아니다. 결혼시장에도 계급이 섞이지 못하는 미묘한 층이 있다. 아무리 연애결혼이라고 해도.
우리 모두는 대체로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다. 집안, 직업, 학벌, 외모, 재산, 지능, 교양, 그 외 스펙 등. 결혼을 하게 되면 타인(배우자 예정자)에게 이것들을 숨김없이 다 까발려야 한다. 결혼을 준비할 때야 비로소 자기의 사회적 레벨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어쩌면 중매결혼에 가까운 연애결혼이 생기는 이유도 이런 자기 현실의 반영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한계에 맞춰 선택하고 부모의 재촉에 시달리다 보니 중매결혼과 다를 바 없는 결혼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연애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나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결혼을 물리고 싶다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떠밀어 억지로 시켰어?"라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은 타의든 자의든 떠밀리듯 궁지에 몰렸다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결혼도 있었다. 연애결혼이라고 100% 내 의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연애를 한다고 연애결혼은 아니다. 중매결혼도 중매 이후 결혼에 이어지기까지 데이트라는 연애 단계가 있다.
분명 시작은 연애로 이어진 결혼인데 모든 조건을 다 맞추며 진행되는 과정은 중매결혼과 다르지 않은 상황으로 남을 수도 있다. 상대방은 미래 배우자로써 썩 나쁘지 않고 내 수준에 앞으로 이 이상의 상대는 못 만날 것 같고 지금 나이에 새로운 사람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사랑은 모르지만 좋아하는 편이거나 그다지 싫지 않아서 선택된 결혼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겉으론 연애결혼 같지만 실상은 중매결혼인 것이다. 생각보다 꽤 많을 것 같다는 현실.
한마디로 이 사람이 다시 못 만날 내 영혼의 반쪽이자 세상 유일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 이 정도 조건이 썩 나쁘지 않은 '최적과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잘 맞춰 최적으로 선택한 결혼이 서로 배려하고 잘 맞으면 된다. 오히려 결혼 정보 회사에서는 이런 조건적인 결혼이야말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성혼서비스를 홍보한다.
맞다. 조건이 중요한 사람은 조건으로, 사랑이 중요한 사람은 사랑으로 결혼을 선택하면 된다. 조건 보고 결혼해 놓고 사랑탓 하거나, 사랑 보고 결혼했는데 조건 탓을 하는 오류에 범하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자기의 기준과 다른 결과를 원하는 건 시험범위 밖의 문제를 제출한 뒤 상대편이 다 맞추길 바라는 헛된 기대일 뿐이다.
가장 심각한 건 조건도 사랑도 대략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여 선택해서 어떤 것이 본인이 원하는 행복의 기준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결혼 생활은 연애결혼이든 중매결혼이든 혹은 연애결혼 같은 셀프중매결혼이든 방법은 상관없다. 자신의 선택과 기준을 인지하며 함께 어떻게 삶을 대하는지에 따라 달리 흘러간다. 그래서 결혼에 있어서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포인트'를 스스로 잘 알고 선택해야 한다.
사랑에 빠져 결혼을 선택했다면 앞으로 살아가며 배우자가 유능하든 무능하든 일단 사랑의 힘을 중심으로 극복하는 것이 옳다. 사랑을 중심으로 선택해 놓고 유능함까지 바란다면 너무 욕심이 된다. 성공적인 미래를 갖고 싶다면 그 유능함을 배우자에게 요구할게 아니라 본인이 성취하면 된다. 둘은 그저 알콩달콩 사랑을 기준으로 가정을 꾸리면 애초의 목적성에 부합된다. 배우자에게 바란 것이 사랑과 정서적 교감이었다면 딱 그것만 얻을 수 있어도 좋다. 그 이상을 원해서 늘 문제가 된다.
물론 배우자가 스스로 잘 되어서 유능해지면 금상첨화 땡큐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그 사람과는 그냥 사랑만 하려고 결혼한 거니까 둘의 최종 목표는 사랑에 집중하면 된다. 그 외 둘 사이에 없는 것은 스스로 채우면 된다.
우리 어머니는 조건으로 결혼했지만 배우자에게 사랑과 교감을 바라서 늘 외롭고 괴로웠다. 반대로 사랑만 하는 남자랑 결혼했다면 돈 없고 가난해서 사는 게 버겁고 힘들다고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이슈라면 스스로 유능해져서 사랑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배우자를 찾았어야 했다.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선택기준을 착각하니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유 있는 경제력을 선택한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 정서적 교감이 없다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혼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여 성취감을 얻거나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기며 정서적 충만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돈이 없는 게 너무 지옥인 사람이 있다. 경제력이 본인 인생에 최우선 행복의 가치라면 취집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이 사랑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가치기준을 오해하여 다른 것을 바랄 때 문제가 될 뿐이다. 나이 80세가 넘는 수천억 자산가와 결혼한 20대 여성도 본인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선택이라고 한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세상이 그녀에게 돈보고 결혼한 속물이라 손가락질을 하건 말건 본인만 만족하면 그만일 뿐. 그녀가 결혼에서 생각하는 최고의 기준은 경제적 풍요라는 것이다. 어쩌면 어설프게 사랑도 모르고, 사회적 조건도 모르고 모든 것이 대략 적당하다고 착각해서 주변에 떠밀려한 결혼이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결혼의 필요성과 목적을 진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혼이 인생에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인지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나의 결혼을 원해서 지금 연인이 꽤 나쁘지 않고 나이가 차서 라는 이유 말고. 나이의 한계, 학력의 한계, 재력의 한계, 외모의 한계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선을 긋고 저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타협 말고. 정말 나에게 결혼이 필요한지?
어쩌면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이 없을 거라는 나름의 현실감각으로 타협하듯 해버린 결혼은 시간이 지나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본인이 무엇을 중시하는지가 그 결혼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저 시간과 조건에 떠밀린 결혼 숙제 완수는 모두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위기의 순간에 그것을 극복할 힘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야 할 정도로 소중한 결혼이 아닐 수도 있기에 배우자에게 손해 보지 않으려고 계산기를 돌리기나 상대 탓만 하기 급급하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따르고, 어떤 좋은 선택에서도 빛과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혼은 그렇게 숙제처럼 이뤄져야 할 미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홈쇼핑 품절 임박처럼 서두르며 이루어진 결혼은 본인과 배우자뿐만 아니라 그 아래 태어나는 자녀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조부모까지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다. 그냥 차라리 결혼 안 하고 속 태우는 싱글 자식이 나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하듯 조건과 타이밍만으로 선택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그 세월이 너무 길다. 대학은 4년이고 취업은 내가 이직하기 전까지 몇 년 혹은 평생직장이라 해도 30년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결혼은 나 혼자 실패하는 선택이 아니라 상대편의 인생 전부도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다.
이 결혼에서 불행하다면 자신만 괴로운 게 아니라 배우자도 똑같이 불행한 시간을 겪고 있다. 누구 한 명만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벤트나 숙제가 아니다. 평생 안고 가며 정답 없는 퍼즐을 함께 맞춰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런 인내의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 결혼 속에 내 선택을 납득할만한 자신만의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이미 결혼은 해버렸고 그것이 없다고 해도 망한 건 아니다. 이 결혼을 선택할 때 그래도 단 하나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찾고 나머지에 대한 욕심은 그저 내려놓는 여유도 필요하다.
공무원이라 안정적이어서(평생 큰돈을 안겨주진 않지만 망할 일 없음), 얼굴이 몹시 잘생겨서(다른 건 모르겠고 아침마다 바라보며 기쁠 수 있음), 옷을 잘 입어서(쇼핑 친구와 개인 스타일리스트 확보), 취미가 같아서(평생 취미친구가 내 곁에), 영어를 잘해서(해외여행 가면 인간 통번역기가 옆에서 비서노릇 해줌) 등의 말도 안 되지만 자기만 납득 가는 이유 하나쯤은 있다. 그거 말고 다른걸 안 해준다고 불행에 빠질 필요가 없다.
얼굴만 보고 결혼한 배우자에게 무식하다거나 돈을 못 번다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만큼 스스로 불행하게 하는 지름길은 없다. 그에겐 외모만 바라면 된다. 얼굴은 잠시라고 하지만 미남은 나이가 들어도 미중년, 미노년이다. 그 나이대 기준에서 베스트 외모를 자랑하며 평생 얼굴 뜯어먹고 살 수 있다는 말.
자신이 왜 이 결혼을 선택했는지 잘 찾아보고 그 외의 추가적인 바람은 버리면 된다.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장점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복과 욕심은 악착같이 바랄수록 더욱 갖기 힘든 법이다.
결혼을 통해서 목표나 취향, 가치관이 맞는 배우자를 만나면 인생의 깊이가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단순히 사람 하나를 동거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만족과 농도가 달라지는 중대한 결정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잘 알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잘 맞으면 서로의 지식 교류 및 동기부여를 통해 시너지가 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어설픈 타협이 아니라 차라리 속물적으로라도 돈이냐, 사랑이냐, 권력이냐 같은 양보할 수 없는 명쾌한 단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외 나머지 조건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결혼은 적정선을 타협해 가며 꼭 완수해야 하는 의무나 과제가 아니다. 썩 나쁘지 않지만 딱히 마음에도 안 드는데도 억지로 선택한 어정쩡한 시작이 오히려 결혼(& 인생) 전반을 괴롭게 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과 평생 함께하는 것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선택해도 늘 평화와 행복이 충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면 말 다 했다.
죽는 날까지 함께 살아가며 매일의 모든 것을 나누는 존재가 결이나 방향성이 맞지 않다면 사는 것이 상당히 지옥이 된다. 부부생활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파트너십이다.
자연스럽게 만났든 소개로 만났든 만남의 경위와 상관없이 '결혼만을 목적'으로 연애를 이어간다면, 이것은 사실 셀프 중매로하는 목적 결혼 아닐까?
연애는 꼭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수도 있다. 결혼을 꼭 하기 위해 필요한 연애가 아니라, 연애를 하며 내게 어떤 결혼이 필요한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결혼을 함으로써 모든 서사가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식 뒤에 살아가야할 현실 이야기는 수없이 남아있다.
결혼이 인생에 꼭 필요한가를 생각하며 연애 자체에 집중하고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경험이 된다.
결혼이야 사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이야기를 이미 결혼한 사람이 언급하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 있다. 이 말은 비혼인이 해야 더욱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혼인과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대에 이런 글은 상당히 시대착오적일 수 있지만, 시대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나 자신의 행복의 문제는 그 안에서 조금 더 새로운 시각으로 찾아봐야 한다.
나는 살아오며 대부분의 중요한 선택은 늘 냉철한 고민을 통해 낭비 없이 논리적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살아가며 가장 감정적으로 선택한 일은 결혼이다. 아무리 봐도 나답지 않은 선택인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사랑에 미쳐있었다.
이런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은 분명 내 평소 기준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불행하게 흘러갈 조건이지만, 엉뚱하게도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성공한 남자보다 나를 편안하게 하고 사랑해 주는 배우자가 중요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 친구처럼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배우자다.
성공? 성공은 내가 하면 된다.
상대편이 잘못을 안 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 용서하고 수용이 가능한가를 생각한다. 적어도 등 떠밀려 후회하는 마음이 이어지는 결혼은 어떤 사소한 잘못에도 배우자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서가 아니라 대체로 내 기준에서 남편의 문제는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