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롤모델은 우리가 걸어가는 현실적인 지표가 된다.>
몇몇의 학생이 나에게 롤모델이라길래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들었다. 빈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차분히 나를 돌아봤다.
칭찬은 거절하고 겸손을 갖추는 것이 한국인의 미덕이지만 칭찬을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내 눈엔 스스로가 한심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인다. 24시간 셀프 검열을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멋져 보일리 없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을까?
어쩌면 너무너무 평범해서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만만함을 발견했을 거다.
아마 이런 무난함이 주변사람들 생각에 현실적인 목표로 삼기 딱 적당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이를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실현 가능한 기준이 된다.
넘사벽 말고 그들보다 딱 한 발 앞서서 가보고 있는 진행형 사람은 현실성이 높은 목표가 된다.
원래 체감상 직접 와닿는 자극은 멀리 있는 위인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나보다 1% 잘난 사람이다.
저 멀리 있는 전교 1등 말고, 윗집 엄마 친구 아들과 비교되는 것이 더 마음이 아프다.
TV 속의 셀럽, 역사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 압도적이라 우리 삶과 전혀 연관성이나 감응조차 없을 때가 있다.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질투가 아니라 동경을 하게 된다.
적어도 질투심이 1%라도 생겨야 의지가 활성화된다. 질투는 현실적인 동기부여의 씨앗이 된다.
주변에 인간미 있게 약간 우수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을 보며 우리는 희망을 꿈꾸고 그를 목표로 삼아 걸어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싶은 건 경이롭게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는 현실성일 것이다.
타고난 재능 덕이 아니라,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똑같던 평범했던 바로 옆의 저 친구가 뭔가 잘하고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일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달라진다. 바로 이 순간이 용기를 내고 도전에 대한 의지가 생기는 때이다.
어떨 때는 이런 또래 집단의 영향이 우리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정글짐에서 자주 놀았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양손으로 봉을 잡고 한 발씩 조심조심 옮겼다. 그러다 갑자기 한 친구가 양손을 놓고 정글짐 위에서 마구 뛰어다녔다.
그걸 본 나는 '오? 나도 할 수 있으려나?"싶어서 용기 내서 양손을 놓고 중심을 잡아보니 걸어볼 만했다. 곧 익숙해져 나도 양손을 놓고 정글짐 위에서 뛰어다녔다.
만약 내가 TV에서 올림픽 기계체조 선수가 정글짐에서 뛰어다니는 걸 봤다면 그렇게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다.
그냥 바로 옆의 평범한 내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용기 낼 수 있었다.
'쟤도 하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
먼 곳의 위대한 사람보다 바로 옆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롤 모델로 삼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주말 아침, 골프 연습장 1인 타석에서 혼자 연습 중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어르신들이 많았다.
한 할머니 무리가 나에게 몰려와 골프를 얼마나 쳤냐고 물으며 "우리 목표가 아가씨처럼 치는 거잖아. 스윙이 너무 예쁘다."며 내 연습을 구경하셨다.
아직 머리도 안 올린, '쌩초보 골린이'인 내가 뭐가 좋아 보였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런 평범한 사람을 목표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께는 TV 속의 로리 맥길로이보다, 연습장 한구석에서 혼자 연습하는 내가 더 동기부여가 되었을 거다.
PGA 프로 골퍼가 치는 드라이버 270m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저 옆 언니가 170m 치는 걸 보면 나도 가능하겠다 싶은 희망.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수시로 누군가의 평범한 롤모델이 되고 있다. 좋게 말하면.
나쁘게 말하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경쟁자가 되어 시기질투를 당할 수도 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를 목표로 노력하고 성장할 거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그를 미워하고 현실을 원망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아무런 경쟁이 없을 때보다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를 목표 삼을 때 더 나은 기록을 얻을 수 있다.
혼자 가는 것은 내 여력만큼의 타협이 생기기도 하지만, 다른 이를 롤모델로 두면 지금 내가 가진 능력보다 살짝 무리해야 한다.
사람은 현재 능력보다 아주 약간 우상향을 향해 움직이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혼자 하는 일은 아주 약간이라는 상향 기준이 낮게 설정되거나 전혀 상향이 아닐 때가 많다. 그렇게 혼자 설정한 목표는 자꾸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하다 못해 요가만 해도 혼자 수련할 때와 사람들 속에서 할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챌린지 결과가 다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타인이라는 롤모델이 필요하다. 이들을 통해 성취뿐만 아니라 좌절이나 괴로움을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나는 괴로운 일을 겪을 때마다 롤모델로 삼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평범해 보이지만 똑똑하게 잘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찾아 롤모델로 삼아본다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나아지게 된다.
잘 찾아보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일반인 대표 1등이 우리 주변에 있다. 만약 없다면, 본인이 그 평범한 대표가 되면 된다.
사실 누구라도 딱 하나씩은 본받을 자질을 품고 있다. 남의 장점을 찾는 것도 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저 정도는 나도 하겠네.' 라며 하찮게 평가하면서도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고, 우습게 여긴 바로 그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일 때가 아주 많다.
나는 성격이 집요해서 내 손에 들어온 많은 것들을 대체로 무난한 아니 꽤 괜찮은 결과로 만들어 왔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레퍼런스와 예습이다.
막연하게 기도와 바람으로만 어떤 것을 잘하기 힘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운을 기대하며 잘 되길 꿈꾸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러나 운으로 얻어걸리는 일은 거의 없으며 운 좋게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금방 휘발되어 버린다.
어떤 분야건 (1)정보의 수집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나에게 습득할지 고민하여 체화하는 것이다. 정보를 몸에 착붙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스토리텔링 만들기, 가상의 동반자 만들기 등의 방법이 있다. 다들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결국 (2)내 몸과 생각이 움직여서 직접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1)레퍼런스 = 정보의 수집 & (2)예습 = 실행
이것을 계속 반복하면 사실 이 세상에 안 될 일은 크게 없다.
너무 쉽지만 다들 안 하고 있는 것들이다.
어른이 되면 절제력 있게 모든 것을 해낼 거 같지만, 어른들도 나약해진 세상이다.
그런 사람들 말고, 이런 시대에도 고독하게 자기 길을 성실하게 가고 있는 사람을 롤모델로 찾아내야 한다.
재능과 유능이 좀 딸려도 성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 다들 게을러져서 세상에서 성실함이 많이 사라졌다. 요가를 매일 하고 있지만 잘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매일'이라는 이유로 요가 커뮤니티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도저도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괜찮다.
재능이 없어도 성실만으로도 롤모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