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행복했다.>
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한다.
몹시 괴롭다. 프로 집순이에게 감히 여행 도전장을 내밀어??
난 못 간다고 칼같이 거절한다. 남편은 시무룩하며 내 허락이 떨어지기 전 경솔하게(?) 자체 판단으로(?) 먼저 결제한 비행기표를 취소한다.
남편에게 말했다.
“난 이번 주말에 약속이 있다고."
나와의 약속.
집에서 글도 쓰고 밀린 넷플릭스도 보면서 한량이 모드로 지낼 거란 말이다.
다음 주에 중요한 일들이 많으므로 나는 풀충전을 해야 한다. 소중한 주말, 노는 것에 내 에너지를 쓸 수가 없단 말이다.
노는 것도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은 일에 몰두할 때 아닌가?
일에 모든 힘을 다 쏟고 나면, 시간이 없고 에너지가 안 돼서 못 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놀지 못하는 것이 전혀 억울하지 않다.
그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적당한 휴식을 확보하는 것일 뿐.
휴식 없이 일에만 내내 매달리면 머리도 잘 안 돌아가고 효율이 안 생긴다. 신경도 예민해져 사소한 데서 짜증과 불안을 느낀다.
힘들수록 소인배에 모드로 돌입된다.
그래서 예전만큼 너무 무리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 나름 워라밸을 챙기는 노력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최대한 휴식과 충전한 뒤 건강한 정신 상태로, 내 일을 무탈하게 잘 해내고 싶을 뿐이다.
지금은 거의 이 두 가지에만 신경 쓰고 있다. 적절한 휴식과 효율적인 업무진행.
나와 여행을 가고 싶단 말이지?
그러면 최소 한 달 전에 얘기해 줄래? 마음의 준비 및 일상의 정비, 회사 업무조율 좀 미리미리 해놓게.
남편의 즉흥성에 나는 늘 놀란다.
어차피 안 갈 거지만 거절하는 내 맘도 편치 않으니 아예 즉흥 제안조차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만약 제안한다면 최소 한 달 전이다!!
그렇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여행 가자는 제안을 안 해주는 것이다.
집이 천국인데 왜 대체 무엇 때문에 어딜 가서 고생하자는 것인가?
새로운 장소도, 신선한 자극도 다 필요 없다. 오히려 삶 자체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주말이라도 무자극으로 보내고 싶단 말이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경험 갖고 싶지 않다.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고 무료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사는 게 심심하다는 사람들 보면 너무 약이 오른다.
아니 그 좋은 상태를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놀아달라고 조르다니. 행복한 걸 모르다니 아주 배가 불렀구먼?
사는 게 심심하다면 그 상태대로 즐기거나, 보다 도전적으로 인생을 살면 될 것을...
내 소원이 심심할 정도로 삶이 평온해지는 그 자체인데, 이미 그걸 가지셨다니 부럽습니다.
무료하고 느긋하고 별일 없어서 지루해 미칠 것 같은 삶을 꿈꿉니다.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그런 심심한 날을 하루이틀 갖는데, 어찌 감히 그 지루하도록 평화로운 행복의 순간을 망치려 드는가?
이번 현충일, 원래는 골프 약속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취소가 되었다. (약속 취소되면 좋아하는 스타일)
나에게 드디어 풀로 하루 쉴 수 있는 날이 하루 생겼다.
남편은 친한 형과 강원도에 여행을 간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나는 이불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남편에게 말했다.
“난 지금 니가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아 행복해~ 이불속~”
나를 바라보는 남편은 이불속 부인을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낸다.
신선한 경험, 새로운 장소…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사치지. 빚쟁이처럼 회사 일에 쫓기는 사람에게 휴일은 여행 대신 집에서 풀충전 하는 게 최고다.
내게 집안 공간은 무선 충전기 느낌이랄까? 집에 오랫동안 머물수록 정신이 회복된다.
이번 휴일도 집에서 무선충전 완료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열정적으로 회사일에 에너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나한테 사는 게 심심하다 지루하다고 말 좀 하지 말아 주세요.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니까.
사는 게 너무 다이내믹해서 심심하고 지루해지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습니다.
별일 없이 행복한 일상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게 행복이라고요. 많은 사람들은 그 여유를 가지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 달리고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 매일매일 심심할 수 있겠지~
무료하고 무탈할 내 미래를 위해. 오늘도 토할 때까지 달립니다. 으 정신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