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게 넘치는데도 이상하게 더 배고픈 시대>
24.11/16
이번 가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있다. 오늘도 비가 내리는 토요일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절기상 이미 겨울이다.
놀랍게도 지난주(11/7)가 입동이었다.
명리학(사주팔자) 공부를 하니 24 절기 변화에 민감하다. 인간의 시간은 아직 가을을 지나고 있지만 세상의 기운은 이미 겨울을 시작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날이 따뜻하다.
심지어 요즘 반팔도 입고 다닌다. 회사에서 내 자리는 창가석이라 내려쬐는 햇살이 무척 따뜻하다. 반면 겨울엔 외풍으로 발목이 시리다. 한마디로 겨울 빼고 내내 더운 자리다.
저녁에 몇 가지 글을 쓰고 맥주를 사기 위해 가볍게 외출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골목 어디선가 참기름 바른 김 굽는 냄새가 아주 고소~하게 났다.
요새 누가 번거롭게 김을 구워 먹을까?
(어떤 집인지 모르겠지만 부럽다.)
간편한 포장도시락 김이 당연한 시절인데.... 그래서 직접 구운 김은 상당히 소중하고 귀한 음식이 되었다.
직화구이된 김의 그 풍미와 고소함은 그냥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어릴 때 저녁 시간쯤이면 골목에서 밥 짓는 냄새가 맛있게 났다.
그런데 요즘 퇴근길 골목은 아주 무미건조하다. 누구도 밥을 할 여유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건가?
밥을 짓지 않지만 더 바쁜 지식노동자의 삶이다.
세상의 편리는, 밥 짓고 식사하는 일상의 시간을 모두 일로 대체하며 살게 하고 있다.
번거로운 일상의 잡일들은 모두 편리하고 간단한 서비스로 대체되었다.
그 잉여 시간에 우린 더 많은 일을 하고(할 수) 있다.
나도 밥은 안 지어먹는다. 그냥 햇반을 돌려먹을 뿐.
퇴근 후 저녁 다들 배달음식을 먹거나, 간편식이나 건강식(쉐이크 등) 혹은 간헐적 단식을 한다.
집 주방은 점점 더 컴팩트해진다. 옛날 집들은 주방이 아주 크지만 요즘 집들은 주방의 규모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이러다가 미래엔 집에서 주방이 아예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먹을게 넘치지만 이상하게 배고픈 시대다.
요즘은 예전처럼 골목에서 나던 다채롭고 풍성하던 밥냄새도 없어졌다. 그래서 김 냄새는 순간 너무 먼 과거까지 추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비 온 뒤라 김 냄새가 더욱 고소하게 멀리멀리 퍼진다.
김 냄새처럼 소박한 냄새가 그리웠다.
김구이 냄새 하나로 차갑던 동네가 갑자기 인간미 넘치는 곳처럼 느껴진다.
화려하고 비싸고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오히려 배가 고프다.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고, 샐러드로 끼니를 때우는 슬픈 삶... 그런데도 과거의 사람들보다 병이 많은 우리 현대인들. 뭐가 잘못된 걸까.
우리는 뭔가 한참 자연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있다.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의 시차처럼. 가을과 입동의 갭만큼.
진짜 밥이 먹고 싶다.
갓 지은 밥에 집에서 참기름 발라 석쇠에 구운 김 한 장. 겨우 김 냄새에 침이 고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