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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치앙마이 요가 리트릿 특별편1

<언젠가 시간이 되면을 기약하며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미뤄왔던가>

by 전인미D

여행이 싫어서 한동안 여행을 안 갔다. 이렇게 긴 비행을 하는 여행은 신혼여행(13년 전) 이후 처음이다.

그간 긴 비행이 두려워서 일본만 가볍게 당일로 다녀오는 정도였다. 긴 비행 시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귀가 뚫리지 않아 이륙하고 얼마 안 가 코피가 터졌다. 토마토 주스를 마시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주스인 줄 알았다가 따뜻함을 느끼며 맛있게(?) 기내식을 먹었다. 앞으로 토마토 주스를 마실 때마다 코피 맛이 기억날 거 같다.

쉬기 위해 피곤한 여행의 여정을 동반해야 하다니,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고생할까.


행복하고 싶었지만 행복을 미루던 습관들. 여행을 떠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된 후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다녀온 뒤 불안과 허무가 더 힘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여행을 떠난 후 현실을 잊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단 하루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누워 쉬는 휴식이었다.

정신의 휴식을 논하기 조차 사치였다. 그저 몸이 쉬어야 했다.

이 세상을 살아나가기에 왜 이렇게 많은 미션들이 있는지…

바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은 무능한 거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너무 바빴다. 그다지 무능하지는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무능하면 안 바쁘다.(회사에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굳이 일을 많이 시키지 않는다.)


이 요가 리트릿을 가기 전 회사에서 구조조정과 팀 통합에 따라 추가 업무를 더하게 되어 몹시 정신이 없었다.

왁싱도 하고 머리 염색도 하고 네일도 하고 몸도 만들고 떠나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쌩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갔다.

환전도 못했고 짐은 캐리어에 대충 쑤셔 받았다. 리조트 도착 후 짐 정리를 새로 해야 할 판이다. 뭘 챙겼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최근 회사 일과 인간관계로 심신이 지치고 승진심사도 앞두고 마음이 산란하다.

요가 리트릿을 신청한 것을 살짝 후회했다.

명절 연휴, 그냥 집에서 쉬면서 승진 면접 준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이 리트릿을 이미 작년에 결제해 버렸다.

원래 승진 시험은 지난해 말에 끝났어야 했지만,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인사개편이 조금 늦어졌다.

결국은 홀가분해야 했을 리트릿은 마음의 짐을 무겁게 안은 채 떠나게 됐다. 스스로 의심하고 두려운 출발길이었다.


대체로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나는 많은 개인사를 무시하고 살았다.

분명 예전의 나였다면 이 리트릿은 취소했을 거다. 그런데 이번에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는 분들을 보며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나의 하루를 잊고 일에만 몰입해 왔던 시간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의 시간만이 내 인생 전부가 아니다.

이 회사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간 잊혀져간 나를 조금씩 찾아가야만 했다.


일 외에도 내 존재 목적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에 유능을 증명하는 것에 치중하며 살았다.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평가가 뭐 그리도 중요했는지....그런 내 태도는 타인의 무능과 무책임을 혐오하게 만들었다.

존재로써 생명을 사랑할 인간애는 이미 내 속에서 사라졌고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가치하게 여기게 되었다.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심하게 생각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 생활하는 내내 눈앞의 일들에 집중하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제일 쉬운 일은 나를 미워하는 것 밖에 없었다.

말로는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해놓고 현실은 나 스스로를 괴롭혀왔다. 세상과 타인을 바꿀수 없으니 나를 파괴적으로 대했다.

바쁘고 괴롭다고 식사를 굶고 좋은 음식 대신 과자와 간식으로 끼니를 연명했다. 퇴근 후 힘들다고 매일 술을 마셨다. 술 없이 잠을 못 잘 정도로 알코올 의존증이 생겼다.

늦게까지 의미 없이 놀기도 하고 미라클 모닝을 하며 수면의 양을 줄여 몸을 혹사했다. 멍하니 폰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들어놓고 나를 방치했다.

힘들게 번 돈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많은 명품을 모으는 것에 사용했다.

도파민 중독 속에 자신을 사랑으로 돌보지 못했던 것이 명백하다.


나를 이렇게 망가트리고 소모시키야 겨우 이 자본주의 사회에 숨 붙이고 살아 나갈 수 있었다.

사랑으로 돌볼 여유가 없어서 손쉬운 순간의 자극 속에 나를 길들여놨다.

"난 자기애가 충만해."라는 말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어떤 행동을 수반해야 하는지 다들 모르고 있다. 그냥 자신을 사랑한다고 앵무새처럼 의미 없는 말을 할 뿐.


평생 나를 돌보며 쉬어본 기억이 없어서 어떻게 쉬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늘 해왔다. 이 리트릿은 그걸 알려주지 않을까? 쉼과 여유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사랑하고 비우고 정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용기 내어 비행기에 올랐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을 기약하며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미뤄왔던가.

이번 리트릿을 취소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이 여행을 감행하며 얼마나 내 기준들이 많이 바뀌어갈지 모르겠다.


나는 이 리트릿에서 알차게 휴식하는 법을 배웠다.

리트릿 참가 당시에는 빡빡한 수련 스케줄을 소화하며 ‘아 나는 더 많은 휴식을 원한다고.’~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드는 생각은 내 스타일로 참으로 알찬 리트릿이었다는 것.


쉼을 원해서 참가했다는 말에 진짜 휴식이 뭔지 생각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

멍하니 시간을 흘려버리는 것만이 쉬는 것은 아니다. 나를 챙기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 진짜 리트릿이 된다. 그래야 비워질 수 있다.


정말 이 리트릿 내내 일도 잊고, 남편도, 고양이도 모두 잊었다. 심지어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만큼 현실의 집착을 놓아버렸다.

베르나르베르베르 소설, 타나토노트에 보면 사후세계 탐사를 떠난 사람들이 죽음의 경계선에서 너무나도 따뜻하고 행복하여 연구의 목적을 잊고, 오히려 죽음을 선택하고 현실적 삶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선택한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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