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법도 배우는 알찬 휴식을 향해>
쉬는 법도, 새롭게 채우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쉼을 잘못 이해하면 일과 공부를 방치하고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온전한 쉼이 완성되는 구간은 비워낸 곳에 리프레쉬를 채우는 것이다. 그간 나는 공백의 순간만이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리트릿을 통해 넘치는 것은 비우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알찬 휴식을 경험했다.
쉬는 법은 은퇴한다고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도시 노동자가 되었다.
오히려 휴식에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은퇴한 후 우울증, 자살, 급사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을 보면 준비 없는 여백의 시간은 얼마나 사람을 파괴하는지 알 수 있다.
일할 때야 업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았겠지만, 은퇴 후 공백의 시간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게 생긴 허무감은 심신의 균형을 무너트린다.
안타깝게도 은퇴 후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 많다. 일을 안하면 여유있고 건강하고 행복할거라는 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업이 사라진 뒤 나는 어떤 의미를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요가 리트릿을 나섰다.
그러나 시작부터 만만찮다. 공항의 수많은 기다림과 인파들,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과하며 출발도 전에 지쳐버렸다. 설 연휴가 시작된 날이었다.
평화와 휴식을 위해 자본주의와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하는 아이러니.
집에 있는 것이 더욱 평화가 아니었을까 순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 있었으면 디지털 디톡스와 거리가 먼 생활 중 있겠지••. 라며 공항에서 지금 디지털과 한 몸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치앙마이 도착후 진짜 디지털 디톡스를 하라는듯 노트북이 고장이 났다.
서울에서 나는 명품 옷과 구두를 신고, 모델클래스에서 배운 파워 당당 워킹, 메이크업 클래스에서 배운 멋진 화장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매일 빈틈없이 쫓기듯 뛰어다녔다.
이번 여행에는 메이크업 도구를 모두 내려놓고 생얼과 운동화, 편한 옷을 입고 자연스러운 생활을 했다.
화장을 안 하고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어색하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편안하게 나를 느끼는 시간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지금 단 하나 바라는 건, 이륙 후 무사히 내 귀가 이퀄라이징 되길..
예쁜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다. 비행기 이착륙 시 귀가 뚫리지 않으면 며칠 동안 두통과 코감기로 고생한다.
요가매트를 기내에 싣고 타니 스튜어드가 “여행 가서도 운동을 하시네요. 운동을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물으며 오버헤드캐빈에 요가매트를 깊숙이 넣어 주신다. 요가매트는 오버헤드캐빈 세로 길이에 안 맞으므로 가로로 깊이 넣어야 하는데 평균 여성키로는 안쪽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내릴 때 결국 추하지만 신발을 벗고 의자에 올라가 꺼내게 되었다.
치앙마이 리조트 생활이 시작됐다.
아침에 새소리로 눈을 뜨고, 명상으로 잠을 깨우다 보면 사방이 서서히 밝아온다. 선선하지만 춥지 않은 청명한 야외날씨 모든 순간이 행복하게만 보이는 리조트 스태프들.
사람으로 마음이 다쳤다가 사람으로 마음이 치유되는 중이다. 작은 친절과 미소의 힘, 그리고 서로 쫓길 것 없는 여유 있는 일상에서나 가능한 치유력.
몸이 다친 것보다 마음 다친 것을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렵지만, 또 몸보다 빠르게 회복되기도 하는 게 마음이다.
물질이 풍부하고 부족함 없던 서울에서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그래서 더욱 아팠던 곳이다.
여유 있게 모든 것을 대하는 이곳의 공기는,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아도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늘 결핍의 순간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요가 리트릿. 요가를 잘해야 할까요? 떠나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또 숙제같은 질문을 했다. 끝나고 난 다음 나의 대답은 ‘전혀 아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서 완벽함이 아니면 무의미하게 인식하며 살아왔다.
과정도, 미완성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여유가 없다.
아무리 노력했어도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면 과정일 뿐이라는 자조적인 의식이 팽배한 사회다.
그러나 굳이 모든 것에서 결과를 볼 필요는 없다. 그 결과 조차도 사회가 정한 시스템일 뿐이며 어떤 것도 끝이라는 결말이 있을 수는 없다. 지속하는한 모든 것은 과정일뿐.
그저 리트릿이라는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준비만 되어 있다면 요가의 완성도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요가에 완성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에 불편했던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려, 어느새 낯선 리조트 생활이 일상으로 스며들게 된다.
멀리서 보면 인생의 많은 것들은 큰 위기가 아닐 수 있다. 그 생활에 메몰 되어 있을 때는 많은 것들이 생사를 가를 만큼 비장하고 힘들게만 느껴졌지만.
영화 그래비티에서 주인공 산드라블록이 우주선이 난파당해 구조의 기약 없이 우주에서 떠돌 때다.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응답 없는 무전기에 외치며 생존을 갈망하다가, 우연히 지구의 어느 가정 장난감 무전과 연결된다.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웃고 떠드는 일상의 소리에 점점 안정이 되어간다. 어느새 생의 욕망을 내려놓고 평화롭고 이름 모를 가족의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녀 모습.
지구에서 살 때 사회적으로 잘 나갔음에도 일상에서 괴로움을 느꼈던 그녀였지만, 우주에서 죽음을 앞두고 그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과 평화를 소망하게 된다.
멀리 떨어져서 내 일상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그 속에서 매일 치열하게 살아낼 때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괴롭기만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이 있다는 것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일 아침의 평화로운 리조트 생활도 멋지고, 다시없을 것 같은 대낮의 한량이 생활도 흥미롭고,
웃고 떠들며 건강하게 먹고 자연 속에서 생활을 편안하게 이어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그러나 돌아가야 할 일상이 그렇게 지옥이기만 했을까?
보통 서울에서 호캉스를 하면 엄청 바쁘다.
라운지 가서 에프터눈 티 먹어야지, 호텔 시설 구경해야지, 저녁 해피아워 먹어야지(줄 서야지), 운동하러 짐에 가야지, 목욕해야지, 조식 먹어야지, 책 읽어야지, 정신없이 보내면 체크아웃 시간이 임박이다. 몹시도 바쁘게 채워 넣는 시간들이다. 보통 이런 피곤한 호캉스의 결말은 휴식은 집에 가서….
치앙마이 리트릿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처음 이틀간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뛰어다녔다. 여기까지 와서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살짝 현타가 왔다.
5시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 하면서 새소리 듣고 수련 갈 준비 해야지, 6시에 이른 아침 크리야 수련 가야지, 7시 반에 보조운동 가야지. 8시 반에 건강 스무디 마시러 가야지, 10시에 오전 아사나 수련해야지, 이게 끝나면 바로 점심 식사해야지, 그 오후 자유시간이라고 되어 있는 시간에는 방정리하고 빨래하고, 카페 가서 케이크 하나 먹으면 바로 오후 재활 운동 해야지, 끝나면 바로 저녁 먹고 소화 좀 시키려고 하면 저녁 수련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밤 9시까지 하루종일 요가와 운동으로 채워진 시간. 리조트 내 수영장은 한 번도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 물론 전체 스케줄을 소화하는 선생님이 제일 힘드시겠지만. 그걸 따라가는 참가자들도 혼이 쏙 나가보였다.
매 순간 시계를 보며 다음 스케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초반에는 조금 지치는 느낌이 있었다. 나중에는 스케줄이 몸에 익어서 즐길 즈음에 돌아오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일상과 멀어진 뒤 막연히 비운게 아니라, 좋은 음식, 좋은 활동, 좋은 사람으로 채우니 아팠던 마음이 모두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이 리트릿을 다녀오고 세상과 타인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뭐 살고 죽는 일 아닌데 모든 것에 시시비비 가릴필요 없잖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이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