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시차 적응 중>
태국과 한국의 시차는 -2시간이다.
치앙마이 리트릿에서 수련 일정은 밤 9시에 모두 종료된다.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
이 일주일의 생활로 인해 이른 취침을 유지했던 수면패턴이 무너졌다. 한국에 돌아온 뒤 시차적응의 실패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평소 9~10시면 자러 갔지만, 요새 자꾸 11시를 넘기고 있다.
겨우 2시간에 무슨 시차 적응이 필요하냐? 싶겠지만 이른 수면을 위해 30분을 조절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경험해 봤다면 2시간의 위력을 알게 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자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수면에 들어가는 시간을 조정하지 않으면 매일 조금씩 취침 시간이 뒤로 밀리는 건 일도 아니다.
치앙마이에서 돌아온 뒤 틀어진 취침시간. 리트릿 동안 야간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오던 밤 시간을 몸이 기억하며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아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다.
리트릿 첫 이틀은 태국 시간 저녁 7시만 돼도 너무 졸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늦은 취침에 대한 적응은 생각보다 빠르다.
오히려 늦게 자기란 쉬워도 일찍 자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생체리듬은 사실 24시간보다 약간 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면 사람의 수면시간은 점점 늦춰지게 된다.
(우리의 생체리듬 주기는 24.2시간임)
그러나 우리는 지구의 24시간 리듬에 맞춰서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그 어긋난 시간 때문에 이상하게 피곤하고 자연스럽지가 않다.
일찍 자기 보다 매일 조금씩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체로 아침시간에는 단 10분으로 사투를 벌이지 않는가.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었을 거다.
아침 2시간이면 체감상 낮 4~5시간 분량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새벽의 힘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놀아 본 사람은 안다. 2시간이 얼마나 긴지.
퇴근 후 2~3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흘러가지만, 이른 새벽 2시간 동안은 수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많은 생각, 고민, 결심. 그리고 생각을 멈춘 채 행동.
새벽의 가치를 알지만 대체로 아침은 너무 피곤하다.
치앙마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기상 패턴에 맞춰져 있었기에 새벽 4시에 일어나곤 했다. 오랜만에 새벽 놀기가 가능한 시간이다.
엄청나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 같지만, 그토록 꿈꿨던 아무것도 안 하고 대충 시간 때우기를 즐겼다.
사실 노트북이 살아있었다면 글을 쓰고 흘러가는 생각들을 모두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여행지의 새벽에는 별로 할 게 없다.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무디다.
더군다나 노트북도 고장 난 상태로, 정글의 리조트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새벽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캄캄한 창밖을 보다가 무섭거나 혼자가 쓸쓸하게 여겨질 때는 리조트 쪽을 향한 반대 창문을 보며 리조트단지 안 밤새 밝게 켜진 밝은 조명을 번갈아 바라보면 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 태국의 겨울이라 쌀쌀한 방안.(이 지역은 실내 난방이 없다).
뜨겁게 끓여낸 물을 마시며 몸을 데운다.
자연 속에서 외로운 나와 리조트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나를 오락가락 느낀다.
새벽의 생각들은 한밤의 감성이 이어지는 중이다. 차갑고 외로운데 혼자여서 자유로운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이게 여름이었으면 조금 더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처럼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혼자라는 외로운 감정이 아니라, 정말 자연 속의 고독과 해야 할 미션이 없어서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상태였다.
이곳은 쓸쓸함을 피하기 위해 나를 파괴적으로 만들 도구(술, 게임, 쇼핑)가 없다. 그냥 오롯이 온몸으로 느껴야 할 뿐. 게다가 외로움과 쓸쓸한 느낌이 싫은 게 아니라 좋기까지 하다~
이런 이상한 감상에 빠져서 아침 생활의 소소한 여유를 사치스럽게 느끼다 보면, 이른 수련을 갈 시간이 다가온다.
리트릿을 참가할 때 수련 스케줄이 타이트해서, 개인적으로 푹 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새벽에 혼자 잘 놀았다.
별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은 한량이 놀이를 하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 수련을 가면 된다.
매일 아침에 다음 할 일을 위한 압박이나 부담도 없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중압감 없이 시간의 흐름을 즐기기만 해도 되는 새벽 놀기는 너무나 꿀맛이다.
사실 평소에 미라클모닝을 꿈꾸며 새벽에 일어나도 몇 시간 뒤 출근준비를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가슴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없이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달콤한지.
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시간의 효율을 생각하며 다음 할 것까지 모두 계획하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치앙마이의 아침에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멍하니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커튼을 열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커튼을 열고 그때부터 창밖 보기를 신나게 할 수 있었다.
흐르는 시간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돈 보다 시간을 막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사치다.
여행의 완성은 새로운 곳에 머무는 것뿐만 아니라 떠나는 그 순간 시작되고 있다.
서울에 돌아와 외롭고 자유로웠던 그 감정을 찾고 있다.
남과 더불어 행복한 것이 힐링이라기보다, 혼자의 시간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진정한 치유로 향하는 느낌이다.
혼자 만들어가는 시간이 어떤 느낌을 주든 나를 회복시키고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싫다고 그 시간들을 피하고 외면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건강하고 단단해지기가 힘들다.
야생에서 동물들은 몸이 아플 때, 구석의 은신처에 숨어 식음을 전폐하고 회복을 기다린다.
혼자서 조용히 머물 때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