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7.금단도 지속도 다 어렵다.

<퇴근 후 나는 술은 끊고 싶었고 요가는 해내고 싶었다??>

by 전인미D

좋은 것은 지속하고 나쁜 것은 금단하고 싶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게 내 몸은 그 반대로 하는 게 제일 쉽다. 오늘도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요가를 하고 싶지 않고 맥주 한잔 시원하게 마시며 뒹굴거리고 싶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피곤했다.

멍하니 만원 지하철을 탄 뒤 이어폰을 꽂았다. 음악 소리마저 소음으로 느껴질 만큼 피곤했다. 음악을 들으니 멀미가 나서 이어폰을 뽑았다.

지금 내 몸 상태는 아무것도 흡수가 안된다.

어떤 짓을 해도 이 피로는 풀리지 않을 것만 같다. 오로지 오아시스 같은 맥주 한잔이 정답이 아닐까?

악마의 속삭임...


매일 요가를 하기로 한지 햇수로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 정도 세월이면 어떤 유혹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옳다.

물론, 대부분의 일상에서 대략 70% 정도는 꿋꿋하게 별다른 유혹 없이 요가를 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 외 30%의 변수에서 아직도 오늘 요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뇌한다. 대체로 꾹 참고 하지만.

매일 요가를 한다고 해서, 꽤 오랜 시간을 지속해 왔다 해도 100% 변심이 없을 수 없다.


평생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안타깝게도....습관이 된 행위도 지속의 노력이 든다.

금연, 금주처럼... 매일 금할 것을 결심하듯 요가의 루틴도 매일 지속을 결심해야 한다.

사실 완전히 습관이 되지 않는다.

유혹이 없다면, 그게 인간이겠는가?

물론 완전 처음을 하는 사람보다 지속의 결심과 오늘 하루 해내겠다는 마음먹기는 덜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도 매일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과감하게 슈퍼마켓에서 맥주 구입을 패스한 뒤 집에 왔다.

너무 힘들어서 옷을 입은 채 오렌지주스를 한잔 마셨다. 상큼한 맛이 몸에 생기를 줄까 해서.

그리고 억지로 억지로 헐렁하고 편한 요가복으로 갈아입는다.

이런 날은 타이트한 요가복을 입기 위해 낑낑 댈 에너지조차 없다. 모름지기 입기도 쉽고 벗기도 편한, 그러나 전혀 예쁘지 않아서 꺼리던 요가복을 꺼낸다.


내 머릿속에 다양한 수련 시퀀스들이 있지만, 오늘은 수동적으로 남의 수련을 하고 싶다.

유튜브에서 친절한 요가선생님을 한 명 골랐다. 30분짜리 인요가 영상이었다.

오늘 난 회사에서 엄청나게 활발하고 발산하는 하루를 보냈다. 이제 에너지를 좀 모으고 싶다. 내 몸이 수렴의 기운인 인요가를 원하고 있다.


오로지 두 가지 동작만으로 30분이 빠르게 흘렀다. 그러나 솔직히 전혀 충전이 되지 않았다.

수련이 막바지로 향할 때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몸은 피곤했다.

요가를 한 뒤 충전이 된다고 뻥을 칠 수는 없다. 물론 충전이 되고 회복이 될 때도 많지만, 정말 너무 지쳤을 때는 요가를 해도 별달리 개선되는 느낌이 없을 때도 있다.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을 느끼며 사바아사나에 들어갔다. 선생님의 따사로운 깨움에도 전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요가매트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침대를 향했다. 그리고 15분을 깜빡 기절했다.

잠이 들은 것 같지 않은데 잠깐의 기억이 없다.


그대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다. 두통약을 먹지도 않았고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

기분이 상쾌해서 마스크팩도 하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만약 오늘 스스로 타협하고 맥주를 마셨다면, 내내 두통이 있는 채로 술에 취해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요가를 한다고 나아지지 않은 날도 있지만 또 이렇게 완전히 괜찮아지는 날도 있다.

체감상 요가 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수련의 시간을 후회한 적은 없다. 안 한 게 오히려 후회가 될지언정. 요가를 해도 컨디션이 난조이고 기분이 여전히 다운되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요가를 하지 않았다면 더욱더 컨디션과 감정이 바닥을 쳤을지도 모른다.


컨디션이 꽤 좋아져 기분 좋은 저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책도 읽고 명리학 공부도 하며 괜찮은 하루를 끝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좋은 하루를 보내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열심히 사느라 온 세상에 내 에너지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위해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저녁에는 무척 우울했다.

힘들어서 멍하니 유튜브만 보는 내가 한심하고 이렇게 힘든 하루를 마쳤지만 뭔지 모르게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이렇게 힘을 회복해서 나를 위한 시간을 하나씩 마련하다 보면 별거 아닌 일에도 서서히 충전이 된다.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해 에너지를 낼 수 없어서 우리는 우울하다.

의미 있는 저녁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 피로 속에 시간을 흘려보내느라 허무하다.


그래서 우주의 기운이 다시 필요하다.

고요하게 이완하다 보면 숨어있는 에너지를 찾게 된다. 호흡을 통해 한 자세에 홀딩하다 보면 많은 생각들이 흘러간다. 쏟아내듯 생각을 흘려내다 보면 머리가 고요해진다. 자세 홀딩이 지속되면서 신체의 불편함이 생긴다. 이때부터 생각은 끝나고 몸에 대한 의식이 깊어진다.


인요가 후 충전이 되는 느낌은 내 안에 숨어있는 에너지를 찾은 건지 우주의 기운을 끌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자세의 지속을 통해 근육의 찌릿함을 견뎌내며 막혔던 곳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마치 어린 시절 손바닥 전기놀이와 같은 느낌.... 자세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뜨겁고 시원하게 순환이 된다.(이 뜨겁고 시원한 느낌은 인요가를 해봐야 알 수가 있다.)


신기하게 몸이 풀리고 나니 마음도 같이 풀리고 있다.

기분 좋은 저녁이다. 오늘 저녁에는 비가 온다고 하는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6. 치앙마이 요가 리트릿 특별편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