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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노 에어컨~어쩔 수 없이 핫요가!

<에어컨이 없던 시대를 떠올리며, 원래 이게 여름이었지>

by 전인미D

우리들의 육체적 인내심은 아주 낮게 바뀌었다.

요즘 세상 누가 더위에 맞서며 피곤하게 살겠는가? 자연에 맞서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에너지를 쓸 시간이 없다.

더욱 고도화된 정신노동을 위해 더운 날은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추운 날은 따뜻한 실내에서 쾌적하게 지내고 있다.


도심 속 요가원도 현대화가 되었다.

한 여름 요가원에 가면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게 수련을 할 수 있다. 서울의 요가원은 습도와 온도를 현대인에 맞춰 쾌적하게 유지한다.

사바아사나에 들어갈 때만 아주 잠시 에어컨을 끄지만 대부분 수련은 에어컨 속에서 이어진다.


원래 인도 요가는 40도씨의 온도, 습도 70% 이상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이 인도의 기본 날씨다. 진짜 요가를 위한 온도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요즘 진짜 인도 요가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

집 에어컨이 문제가 생겨 사용하지 못해 오랜만에 에어컨 없는 여름을 맞이했다.

에어컨이 없으니 어쩔 수 없어 집에서 핫요가 비슷한 환경 속에 수련을 하고 있다.

도시에서 일부러 인도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40도의 한증막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우리 집은 한쪽으로만 문이 있어 맞바람이 치지 않고 서쪽 방향이라 실내온도는 40도씨가 훨씬 넘는다. 여름에 최악이라는 서향집은 올여름 더욱 여실하게 이해되고 있다.

습도 90%인 요즘 어쩌면 인도보다 더 극한의 환경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요가는커녕 입맛도 없으며 움직일 힘이나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에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그냥 삶의 많은 부분에 의욕이 없고 귀찮기만 한다.

그러나 예전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도 꿋꿋하게 일상을 이어가지 않았겠는가.

더위에 적응이 된 건 아니지만, 더운 걸 받아들이게 됐다. 더움에도 불구하고 게을러지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생활의 루틴에 펑크가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있다. 느리지만 꾸역꾸역 하고 있다.

이런 날씨에 빠릿빠릿하기는 너무 어렵다.


이 온도에 멍하니 앉아서 공부하기도 힘든데, 몸을 움직여 요가를 하기란 정말 나와의 싸움을 수십 번 해야 한다.

어제는 너무 더워서 몸을 움직일 힘이 도저히 안 났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인요가를 했는데, 땀은 나지만 신기하게 수련이 이어질수록 몸에 열기가 시원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덥다. 선풍기도 없이 살다가, 오늘은 이 날씨에 도저히 수련을 할 자신이 없어 남편 방에 있던 우리 집 단 한 대뿐인 선풍기를 빌려 왔다.

날이 습하고 더우니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뜨겁고 습하다. 그래도 선풍기 바람이 있으니 조금씩 힘이 나서 수련을 끝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더우면 카페나 도서관으로 피서를 가야 하지만 집순이라 더워도 꿋꿋하게 집에 붙어있다.

집 밖에서 시원한 건 휴식이 아니다. 오히려 집에서 이 더위와 싸우며 편히 있는 것이 휴식이 된다.


어릴 때 여름 방학은 늘 이런 날씨였다.

더워도 방바닥에 엎드려서 방학숙제를 하고 아이스크림과 냉면을 먹으면서 꿋꿋이 날씨를 버티며 일상을 유지했다. 더워서 뭘 못한다거나 안 한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없다.

당연히 여름이니까 그냥 별생각 없었고, 힘들면 힘든 대로 참으면서 살았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도 못 견딜 줄 알았는데 이 40도씨의 집에서 웃통 까고 어찌저찌 잘 참아내고 있다. 사계절 내내 털코트를 입고 지내는 고양이들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사실 고양이들은 사막 태생이라 이 정도 온도는 뭐 귀여운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살다가 구조된 코숏냥이는 이 정도면 천국이지라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한 여름에도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놓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자던 남편이었다. 나는 늘 추워서 여름에도 긴팔 잠옷과 양말을 신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강제 노에어컨 사태에 남편은 속옷 차림이다. 인간적으로 나는 요가복 차림이다.

뜨거운 물 샤워는 필요 없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등목 하듯 샤워를 한다. 찬물을 맞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고 아저씨 소리 "허어~~~"가 절로 나온다.

그래 이게 원래 여름이지....


이 에어컨이 언제 고쳐질지(에어컨 수리 기사에게 달려있다), 혹은 운이 나빠 여름 내내 이렇게 덥게 살아야 한다고 해도... 여름은 원래 이런 거라 생각하며 요가를 하고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원래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올여름은 살짝 위기다. 마냥 좋아하기엔 심하게 덥고 습하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여름의 생활을 강제 체험 중이다. 그냥 우리는 견디는 게 아니었다. 여름을 즐겼다.

더운 대로~습한 대로~강한 햇볕 그대로~


회사가 제일 시원하다.

사무실은 심지어 냉장고처럼 춥다. 예전 같으면 회사가 추워서 엄청나게 불평했겠지만, 집이 덥다 보니 회사가 추운걸 또 즐기고 있다. 많이 추워하고 집에 가야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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