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호구를 자청해 볼 수도 있다. 알고 보면 호구가 더 이익이다.>
대인배와 호구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
그래서 다들 궁금하다. 나는 과연 대인배인가 호구일 뿐인가?
그럼 이들을 이용하는 자들은 영악한 여우인가 처세술의 달인인가?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요청을 한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그 부탁을 들어준다. 그렇다면 나는 대인배인가?
상대편은 나를 이용하여 이득을 쟁취하여 속으로 나를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나는 호구가 되는 것인가?
형제자매 사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장녀라 늘 모든 것을 동생들에게 배려하고 양보했다면 나는 호구인가? 아니면 대인배인가?
솔직히 알 길이 없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대인배라 생각해도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호구라고 여길수도 있다.
상대가 나의 배려를 이용이라 생각한다고 호구가 되는 것도 아니며, 나의 도움을 감사하게 여긴다고 대인배인 것도 아니다.
호구의 사전적 정의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호구가 정말 나쁜 걸까??
다 알면서도 호구를 자청할 수도 있다. 내가 호구의 정의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호구의 장점도 많다.
일단 엉덩이가 가볍다. 어떤 미션이 주어질 때 할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를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못 본 척 눈감거나 피하는 것과 달리, 그걸 해결하기 위해 차근차근 풀어내는 사람의 시간의 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1년을 보내왔지만 인생의 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된다.
누구는 맹물일 때 누구는 농도 100%의 아주 진한 시간을 채운 것이다.
호구처럼 살아서 물경력, 물인생보다는 아주 진한 삶을 만드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당장의 순간에는 남에게 미루고 남을 이용하여 노력 없이 이익만 얻어걸리는 게 가성비 있어 보일 수 있다.
살아가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텅 빈 가성비를 전혀 쓸 수 없다. 진짜 승부나 해결이 필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는 건 내 몸으로 쓰인 호구력 말고는...
세월이 지나서 사람의 능력은 사소한 디테일이 쌓여서 탁월하게 달라진다.
내가 어떤 것을 양보하면서 그 부족을 스스로 채우기 위해 다른 부분을 찾아 나섰던 순간.
누군가가 귀찮아서 방치한 것을 수습하기 위해 고민했던 순간.
커피 한잔 타오라는 번거로운 요청을 들어준 순간.
정말 사소하게는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양보하고 먼저 내려 계단에 올라간 순간조차도... 우리에게는 사소한 농도가 채워지고 있다.
저런 것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쓸모없어 보이는 모든 순간에 몸으로 참여한 시간은 결국 나의 저력이 된다. 쓸모없고 사소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유능하고 가치 있는 것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자꾸 잊고 만다.
대단한 한방과 번지르르한 딱 한 순간만을 바란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치 있는 순간은 후지고 더럽고 하찮고 귀찮은 것들 없이는 얻을 수가 없다.
자꾸 완성형만 보고 바라다보니 그 이면의 어려운 밑바닥 일들을 생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에 지름길이란 남들과 같은 시간에 더 고생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충 살아도 1년, 고생스럽게 살아도 1년이 지난다. 대충 멍하니 편하게 흘려보내는 1년을 지낸 사람은 지름길은 커녕 내리막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호구의 시간 없이는 대인배의 순간에 가 볼 수가 없다.
무의미해보이고 하찮은 삽질을 수십번 해봐야 가치있는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영화에 클리셰처럼 나오지 않는가? 무림의 고수가 되기위해 10년간 무의미해 보이는 장작패기와 물 길어오기를 해야한다.
인생의 모든 호구적인 순간은, 사실 내가 탁월해지는 기회였다.
그 못난 시간 없이는 멋진 순간을 가질 수가 없다.
어차피 호구의 시간을 수없이 쌓아가야 한다면, 내 속으로는 스스로를 대인배라 생각하면 된다.
타인은 당신이 걸려들었다고 비웃으며 작은 이득을 얻을 때, 당신은 모르고 배려한 게 아니다. 다 알아도 그냥 먼 미래의 나를 위해 그 번거로운 일들을 자처하고 선택했을 뿐이다.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지속적인 착취와 당신을 하찮게 대하는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안 됐다고 생각해라. 지금 잠시 편하고 달콤하면 나중에는 허무함이 한 번에 밀려온다.
원래 인생에 대한 만족도는 힘든 시간이 길고 골이 깊을수록 더욱 커진다.
오늘 회피한 달콤함은 스쳐 지나가는 만족이겠지만, 미래에 내가 얻을 달콤함은 내 몸에 장착된 능력이다.
오늘 달콤한 순간을 선택한 그들을 안타깝게 보면 된다.
이 포인트에서 호구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적정선을 지키면 된다.
호구력을 실천하다 보면 가끔 현타가 오기 때문에 스스로 완급조절도 필요하다. 우리는 싯다르타가 아니니까.
하지만 어떤 경우든 호구적인 행동과 선택은 결국 나에게 해로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신경 쓸 필요 없고, 내가 해야 할 본질에 집중하면 된다.
사회적 평판이 호구이든 대인배든 세월은 답을 내어준다. 유능한지 무능한 입털이범인지.
진짜 대인배는 유능을 갖추고 타인의 불편과 어려움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다. 무능하고 덕만 높아서는 대인배로 칭해지기 어렵다. 일단 결과적으로 순조로운 해피엔딩까지 이끌어내야 대인배의 반열에 이르렀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대인배는, 일단 수많은 세월 동안 실력을 갖춘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칭호 아닐까?
아직까지 우리는 대체로 호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괜찮다.
이 호구의 시간이 없으면 대인배의 시간으로 갈 수가 없으니까, 자발적 호구를 선택하고 있다.
호구가 단어가 좀 부정적으로 느껴져서 그렇지 꽤 괜찮은 행동이다.
우리가 아는 대인배인 사람들도 다 호구에서 출발했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비법은 출발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