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하게 지내느라 애쓰지 않아도 돼.>
모든 관계를 유하게 가지기 위해 애쓸 거 없다.
그 사람은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미워할 거다.
인간은 거부당하고 미움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호모사피엔스 출신인 우리는 본능적으로 유약한 육체를 타고나 혼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인간은 무리 지어 살며 서로의 생존율을 높이고, 함께 살기 위해 사회화가 되어, 멸종되지 않고 지금까지 종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도시 생활을 하는 우리는 더 이상 무리 지어 살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세상은 시스템화되고 서비스는 분업화되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이 사회화와 원만함에 대한 본능을 거부할 수 있다. 몸에 새겨진 유전자가 바라는 대로 사회 속 무리로 부터 인정과 사랑을 무의식적으로 바랄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아무리 미움을 받아도 무리에서 배척당할 일이 없다.
족장에게 찍혀 지혜와 기술을 전수를 못 받고 굶어 죽거나, 친족 무리에서 쫓겨나 객사할 일이 없다.
타인의 미움을 받든말든 돈을 내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나는 오늘 저녁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세상이 다원화된 덕분에 이런 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걸리지 않는다.
즉, 타인의 미움이 나에게 어떤 불이익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그저 마음이 살짝 아플 뿐?
마음 아픈 게 왜? 그냥 내가 할 거에 집중하고 재밌는 일을 찾아서 혼자 즐기다 보면 남의 미움 따위 증발하는 수증기보다도 가볍게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의 미움을 극도로 거부한다.
사실 미움받는 게 근원적으로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무관한 시대 아닌가?
우리는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 굳이 미움받을 상황을 수동적으로 회피한다.
정작 미움받길 거부한다면 살신성인으로 살며 모든 일에서 희생하면 된다. 내가 모든 책임과 업무를 떠맡으며 남들이 거부하는 귀찮고 짜증나는 일들을 웃으며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 희생정신없이 잇속은 챙기면서도 타인의 눈치만 보는 어설픈 수동태적 행동은 여전히 동일한 미움을 유발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신성인으로 살아도 미움은 받을 수 있다.
부처와 예수도 안티가 있으니 진정하자. 미움이라는 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감정이다.
인간에게 있어 안티의 뜻을 생각하면 슬플 일도 없다. 그저 사람의 다채로운 취향이 안티라는 감정일 뿐이다. 어떤 것에 대한 호오의 취향.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안티를 받을 때 무너진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아 어설프게 해결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남발하여 냉랭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애쓴다. 그럴수록 더욱 미궁에 빠진다. 타인이 당신을 미워할 이유를 더욱더 구체화시킬 뿐이다.
당신을 이미 미워하기 시작한 타인은, 당신이 잘하려고 애쓸수록 당신을 하찮게 여기고, 배려하면 그 의미를 곡해하게 된다.
뭘 더 하려고 할수록 편견의 시선으로 무장한 타인은 그 미움을 더욱 키울 뿐이다.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은 타인에게 미움 포인트 1을 더 적립하고 있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아마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욕은 먹을 거지만 어설픈 노력에 대한 질타보다 그 파장은 적다.
근본 문제를 뜯어고치기 힘들기에 얄팍하고 표면적인 관계개선의 노력은 오히려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당신을 미워하는 타인은 그런 어설픈 농담과 인사말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 핵심 문제는 내버려 두고 짜친 안부인사나 입에 발린 칭찬 따위 서로가 진심이 아닌 거 안다.
타인은 당신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바뀔 수 없다.
타인은 당신이 옷을 단정하게 입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스타일을 바꿀일이 없다.
타인은 당신이 잘난 척을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잘난 당신은 그럴 수가 없다.
타인은 당신이 간섭이나 쓸데없는 의견 좀 그만 내면 좋겠지만 실수가 자꾸 눈에 띄어 당신은 자꾸 의견을 내게 된다.
타인은 당신이 000을 하거나, 000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을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은 당신을 계속 싫어하고 뒤에서 욕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타인이 싫어하는 000을 개선하지 않고 스몰토크를 건네고, 관심도 없는 근황 토크, 식사 여부를 묻는다는 건 오히려 상대편으로 하여금 더욱 짜증만 가중할 뿐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거다.
당신 자신을 100% 객관화하여 다 뜯어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면.
물론 그렇게 다 뜯어고칠 수 있다고 해도 취향이 다른 누군가는 또 당신을 싫어한다.
세상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춰 당신을 바꿀 수 없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법을 어기지 않는 상식선 안에서 그냥 당신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당신이 거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당신이 사랑스럽기도 한다. 취향이 다 다르지 않은가?
물론 몰상식하고 개념 없으면 모두가 싫어하긴 한다.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인간이라는 가정하에 호오가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아무 잘못 없는 연예인들도 TV에 나와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미움을 받기도 한다.
이런 걸 바로 숨만 쉬어도 욕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저 취향존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식적인 인간으로 살아도 누군가는 취향적으로 당신이 싫을 수도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다. 누군가가 당신을 미워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남이 당신을 미워한다고 편의점 알바가 나에게 물건을 안 팔리도 없고, 지하철 카드센싱이 안될 리도 없고, 잘 살고 있는 집이 없어지지도 않는데 뭘 그리 전전긍긍하나.
그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오해 없이 잘 지내면 되는 거다.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들에 대해선 의연해지면 된다. 어차피 그들의 편견을 바꿀 수도 없고, 노력할수록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타인이 욕하는 당신의 모습은 그들이 오해하고 만들어낸 모습이다.
진짜 내 모습과 내 진심을 이해하고 하는 비난이 아니다.
그러니 상처받을 거 없다.
물론 마음은 아프지만, 괜찮다. 그건 진짜가 아니니까.
나를 미워할 사람에게 해명하느라 힘 빼지 말고, 잘 보이느라 애쓰지 말고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 된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랑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그냥 네 인생 미션에 집중하며 살면 된다.
당신을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이 평생 당신을 따라다닐 리 없다.
그들은 나를 스 쳐 지 나 가 고 있을 뿐이다.
나를 스치며 나와 부딪히고 서로 불편한 에너지를 확인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걸림돌이다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물론 세상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싶지만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은 나를 힘든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숨만 쉬어도 욕먹을 때, 대체 넌 어떻게 대응할래? 에 대한 내성을 키워주는 중이다.
어떡할 거냐면 그냥 관심 끄고,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그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쿡쿡 찔리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어쩔 건가. 하나하나 다 이해시킬 수가 없다.
타인은 미움에 할애할 시간은 있지만 나를 이해하는데 쓸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해명한다고 해도 남들은 믿지도 않는다.
그냥 이 시기는 막연하게 아파야 하는 때인가 보다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괴로움을 느껴보기도 하고 흘려보내면 된다. 시간이야 붙잡고 싶어도 흐른다.
당신을 싫어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힘 빼지 말고,
그 에너지 아껴서 나를 멋지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면 되고,
진짜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면 된다.
스쳐가는 인연에 연연할 거 없다.
100세 인생에서... 그들은 고작 몇 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인생은 길다. 지금은 찰나고....
돈 벌어서 사치스럽게 명품이나 사 입고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내 스타일을 바꾸거나 스타일링의 기쁨을 버리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떤 스타일로 꾸미든 불법이 아니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각자 번 돈을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투자할 뿐이다.
그게 옷이든 부동산이든.
이렇게 재밌고 신나는 스타일링을 남 눈치 보느라고 왜 포기해? 내가 즐거운 게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또 내가 옷을 잘 입는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출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