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생은 더욱 재밌어졌다.>
어릴 때는 내성적이긴 했어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대학시절에는 친구들과 약속을 하면 만나기 전부터 두근두근 했다. 약속이 없으면 쓸쓸하고 아무래도 재미가 없었다.
혼자 노는 걸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주변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생활을 했다.
내가 모임이 부담스러워진 것은 30대, 커리어를 쌓아갈 때였다.
회사에서 감당 못할 정도로 업무가 폭발했고 야근과 주말근무가 연일 이어졌다. 직상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아 노력하는 만큼 신임을 얻지 못하며 절망적이고 고독한 시간을 버텼다. 미션은 높고 능력과 시간의 한계 속에 시행착오하며 갈아 넣다 보니 멘탈과 체력은 바닥끝까지 내려갔다.
더 이상 힘이 없어서 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날그날 맡겨진 일을 해내고 내일 해야 할 미션에 대한 걱정만 가득 차,
따로 시간 내서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기도 어려웠다. 관계는 필히 상처를 동반한다. 그런 아픔까지 감당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저 홀로 버티며 남편에게 털어 넣는 것 외에 이겨낼 방법도 없고 다른 여유도 없었다.
20대에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그 친구들은 지금 내 곁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각자 흩어져 최선을 다해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내고 있다.
일과 청춘을 바꾸고 난 뒤 이제야 겨우 한숨 놓고 돌아보니, 내가 놓쳐버린 시간 속에 증발해 버린 인연들이 가득하다.
우정과 추억을 만든 20대의 시간이 아깝진 않다. 나에게 행복한 경험을 남겨줘서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반동으로 나는 30대에 무척 달려야 했다.
20대 시절 놀러 다니던 과거를 30대에 뒷북치며 만회하기 위해 많은 일상의 것들을 놓치게 됐다.
온통 일에 빠져 사느라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남편과 따뜻한 저녁 시간을 보내던 신혼시절도 없었고,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들의 청춘들도 함께하지 못한 채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하지만 그 시절의 고생이 지금의 나를 더욱 밀도 있게 만들었던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때는 전성기인 줄 몰랐는데 10여 년 지나 돌아보니, 이제야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정점의 시간에 최고의 커리어를 쌓고 싶어도 그런 기회가 없는 사람도 많다.
그땐 벗어나고 싶고 신세한탄만 했던 내 삶이 이제야 돌아보며 고마운 기회였다고 여기게 된다.
일만 하는 동안 많은 인연과 나의 젊은 시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타인은 피곤한 관계라 느껴져 단 하루가 빈다면 무조건 잠을 자고 충전해야 했다.
사람 챙길 에너지가 없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사람들과 노는데 재미를 못 느꼈다. 반복되는 불평도, 일상적인 대화도 피로하기만 하다. 함께 할 때 즐거운 느낌을 점차 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거의 혼자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혼자 놀기 위한 취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멍청하게 핸드폰, TV만 보며 시간을 날렸다. 휴식도 안되고 의미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휴식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휴식은 비운 곳이 의미 있게 채워지는 것이다.
혼자서 의미 없는 유흥으로 노는데도 한계가 있다. 혼자 놀 때 무의미하게 보내면 진짜 삶이 허탈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일수록 더 현명하게 잘 놀아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혼자 놀기의 진수는 독서와 공부하기다.
지식을 업그레이드하는 재미도 있고 책을 통해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점도 좋다. 성인이 되어 취미로 하는 공부는 시험성적이 필요 없다.
그저 즐기기 위해 하는 공부라 부담이 없어 배우는 즐거움과 보람만 챙기면 된다.
공부는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지 않으며 자존감을 높이기 최고의 취미생활이 된다.
어떤 분야든 상관이 없다.
어른이 된 뒤로 공부를 멈춘 사람은 사고가 좁아지고 아집에 빠지게 된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학생의 겸손한 태도 속에 있게 된다.
비록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배움 앞에서는 늘 초심자가 된다. 이 지루하고 막막한 비기너의 시간을 묵묵히 가다 보면 취미 공부를 통해 삶의 지평이 넓어지게 된다.
놀이는 그저 휘발성이 강한 활동이지만, 공부와 독서는 중요한 알맹이가 내 안에 남는다. 공부는 할수록 나에게 이득이 되고 힘이 누적된다.
별 쓸모없어 보이는 지식도 일하고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새로운 공부를 향한 세계의 확장 없이 좁은 그릇에 갇혀서는 기쁨도 딱 그만큼일 뿐이다.
공부만 했을 뿐인데 다양한 세계관을 갖게 되고 다방면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나만의 힘을 갖게 된다.(이걸 언제쯤 쓸 수 있을진 모르겠다.)
시간 = 성장으로만 계산하며 살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을 더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관계를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이 높아지면 자신에게 집중하고 투자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사람과의 만남 보다 혼자 공부하는 게 더 즐거운 나이가 되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즐겁게 친구 모임에 가는 사람을 보면 나도 같은 마음이다.
회사에서 하는 회식 시간이 아깝고, (얼른 집에 가서 요가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마음이 쫓긴다.)
친목 모임이나 친구들과 만나 식사하는 시간도 아깝게 여기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가족도 귀찮다. 오로지 나를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사회성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에게 쏟을 힘이 없다는 게 사실이다.
피곤하면 사람이 즐겁지가 않다.
인간을 통해 충전이 되는 건 내가 컨디션이 좋을 때뿐이다.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에너지가 소진된다. 좋은 사람에겐 잘하느라 싫은 사람은 경계하느라 힘이 빠진다.
그렇다고 일 외에 오로지 쉬는 걸로 삶을 보낼 수는 없으니 힘없이 누워 공부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지금에서야 이런 삶에 사람과 공부의 밸런스를 찾고 있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지낸 지는 10년이 넘었다.
혼자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 시간을 조금씩 할애해 보는 중이다. 생각보다 사람 만나는 게 싫거나 힘들지 않다는 걸 느낀다. 나는 원래 사람을 좋아했고 대화도 즐기는 사람이었다.
물론 예전보다 사회적으로 업무 강도도 줄어들어 직장생활에 워라밸도 생기고, 개인적으로 업무의 능숙함이 효율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대체로 긴 시간 혼자 놀며 지내다 보니, 자투리 시간을 쪼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모든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취미가 다양한 나에게 대체 언제 그걸 하냐고 사람들이 묻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타인을 만나는데 시간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혼자일 뿐이다.
혼자여서 기동성이 좋기에, 언제든 나에게 아주 약간의 시간이 생긴다면 조금씩 채워 넣을 수 있는 취미들이다.
그동안 나는 히키코모리처럼 세상으로부터 숨어 집-회사만 반복했다.
일이 너무 좋아서는 아니었다. 그냥 해야 하는 의무감에 짓눌렸을 뿐이다. 즐기는 마음도 없었고 사명감도 모르겠다. 그저 책임감.
그러다 보니 나를 모든 관계에서 떼어놓고 일하는 존재로만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남들 하는 거도 다 하고서 제대로 해낼 수가 있었을까? 그랬다가는 나는 부끄러운 40대가 되었을 거다.
그 사이 친구들도 연락이 뜸해지고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참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 유희는 중요했으므로 혼자 놀았고 그게 지겨울 때쯤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어딘가 붐비는 장소에 가서 힘을 뺄 에너지도 없고 시간도 없었으므로 대부분 놀이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프로집순이로써 다채로운 취미와 취향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아주 많다.
어떤 공부라도 조급할 거 없다.
100세까지는 살 거 같은데 뭐라도 지금 시작하면 서너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미 한 분야는 전문가가 되어있지 않은가?
아무리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그 흘러가는 자투리 시간에 작은 공부를 채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하느라 지친 나를 보며 더 허무해진다. 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된다.
나중에 시간 나고 여유될때...는 쉽게 오지 않으며, 그전에 이미 번아웃에 빠지게 된다.
공부만큼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이 또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하다 보면 친구나 모임보다 재밌다. 다양한 지식을 쌓아가 보면 인생이 기대가 되고 사는 게 참 재밌어진다.
이 나이에도 장래희망을 생각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된다.
주변에 친구가 거의 없는데도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혼자 놀기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