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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14. 2022

02.나 여행 싫어하네?

<보편적 취향이라 나도 좋아 해야하고 좋아 하는줄 착각했다.>


 극 'I'형 인간인 나는 제일 행복한 순간은 집에서 뒹굴 거릴때고,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집에 가는 시간이며 제일 좋아하는 곳은 집이다. 영역동물 고양이의 습성처럼 나는 집에서 벗어날 때가 제일 불안하고 불편하다.


 사람들은 기분 전환, 휴식, 미지의 탐험, 문화적 배움이나 새로운 경험 같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집을 떠난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 타당한 취미이며 싫어할 이유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긍정적인 활동으로 여겨진다. 그런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온갖 곳을 여행하고 떠나며 견문을 넓혔다.


 누구나 여행을 좋아하기에 나도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떠날때 보다 돌아올 때가 더 기쁜 것을 보면 나는 여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나이가 들고보니 여행을 가는 것이 돈 낭비, 시간낭비, 정서낭비(긴장과 스트레스), 에너지낭비(체력) 라는 생각까지 든다.


 누군가가 여행을 가자고 하는 것이 몹시 부담스럽고 거절하고 싶은 변명거리가 늘 간절하다.

 심지어 날 두고 혼자 여행가는 남편을 보고도 질투는 커녕,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쓸어내린다. 누가 보면 참 유별나다 싶지만 나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1년 내내 집 안에서만 지내도 전혀 무리없이 보낼 사람이다. 오히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엮이는 모든 상황이 스트레스일 뿐이다.


 코로나 펜데믹이 만연했던 2020년 1년 이상동안 그 어떤 여행을 가거나 출근 이외의 외출을 하는 것이 불가능 했지만 나는 전혀 타격은 없었다. 그저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 이어질 뿐이었고, 그나마 종종 가던 해외도 안 가게 되었지만 전혀 답답하거나 떠나고 싶은 열망이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 나 여행 싫어하네??


 여행이 싫었던 뿌리를 찾아 가자면 어린 시절로 내려간다. 어린 시절에도 전혀 집 밖에서 활기차게 뛰어 노는 어린이가 아니었으며, 가족여행이라도 가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싫었고 (물론 어린이기에 여행지에 도착하면 잘 놀기는 했다. 그래도 집이 제일 좋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당일치기 등산이나 나들이를 갈때면 너무 가기 싫어서 뒤로 빠져서 몰래 도망쳐서 혼자 집에 돌아온 적도 굉장히 많았다. 뒤 늦게 집에 몰래 도망간 딸을 야단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부모님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호불호가 심한 어린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때도 집이 세상 재밌고 제일 편안하고 좋은 곳이었다. 


 집에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고, 혼자서 상상놀이, 책 읽기, 그림 그리기 같이 소일거리를 하면서 나름 굉장히 알찬 시간을 보였다.

 나 처럼 심약한 인간은 바깥에서 사람들과 접촉해봐야 스트레스만 받고 낯선 곳에 가봐야 실수할까봐 긴장하는 정신적인 소모만 클 뿐이다. 그 에너지를 모아 나는 집에서 가장 최적의 창작 활동을 하는 효율적인 어린이였다.


 이제야 고백컨데, ISTJ형 인간으로써 투자대비 효율이 없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여행보다 집에서 쉬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있는 생활 방식이라는 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효율을 찾는게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에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낯선 상황, 새로운 사람에 스트레스를 잘 받고 사람이든 환경에든 적응하기까지 나다움이 사라지기에 여행이라는 새로운 국면은 나를 어설프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이렇게 어눌하고 멍청한 사람이 아닌데.'라며 여행을 하면서 겪는 시행착오가 나를 한심하게 여기게 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유쾌할리 없다.

 

 그저 새로운 경험 한번 하겠다고 떠난 여행에서 정신이 충만해지기도 전에 에너지가 소모되어 버리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관대함을 발휘하지 못하고 늘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나로서는 여행지에서 생기는 돌발상황 앞에 던져진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유럽 귀족은 여행을 직접 다니지 않고 하인들을 대신 여행하도록 파견(?) 보냈다고 한다. 여행은 몸과 마음이 힘든 고되고 위험한 일이기에 견문을 넓히기 위해 몸소 움직이기 보다는 대신 여행을 보낸 하인이 겪은 여러가지 경험을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경험을 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새로운 장소에 가면 생각의 전환과 평소에 생각치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스트레스를 참고 떠나기에는 나에게 너무 부담이 크다.


 나로서는 책 속의 여행이 더 안전하고 즐거울 따름...남들이 욕하든~ 이상하게 생각하든 괜찮아.

 이제서야 말해봅니다. 나 여행 싫어해요~ 같이 여행가자는 말 하지말아요~


ps. 세월이 더 지나 이 생각이 달라져, 여행이 즐겁고 나에게 관대해지는 시간이 온다면 그런대로 그 생활도 즐겨 보고 싶다. 무언가를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는 기준을 버리고 마음가는 대로 즐기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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