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연말의 허무를 피하는 방법은?
<평범하게 그저 일상을 지키는 것>
한 해가 끝을 향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연말의 허무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 온 일 년이 아쉽기도 하고, 한 해 동안 뭘 했나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연말의 특별한 이벤트로 마지막을 빛내지 못한 서운함일 수도 있다.
어릴 때는 오히려 연말의 허무는 모르고 지났던 것 같다. 아쉬울 것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혹은 정신없이 열심히 살았고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하지 않고 매일을 소중하게 최선을 다해 보냈다.
연말의 허무는 오히려 직장인이 되고부터 생겼다. 돈 주는 회사일은 최선을 다 하지만 나머지의 시간은 나를 위한 일상을 만들지 못하고, 지쳐서 멍하니 타임 킬링을 하며 보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연말이 되면 뭐라도 자축을 하고 이벤트라도 만들어서 특별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평범한 회사원에게 파티나 이벤트가 생길 리 만무해서 그냥저냥 흘려보내고 나면 그렇게 허무하더랬다.
지난 한 해는 12월만 있는 것이 아닌데, 그냥 별 볼일 없는 12월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흘려보낸 1년도 참 스스로 한심하고 이렇게 평범하게 삶이 흘러가면서 나이를 먹는 게 슬프기까지 해서 우울함이 더 커졌다.
이렇게 새해가 되면 더 부담되고 또 1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싶어서 사는 게 괴롭고 내 삶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파티의 주인공도 아니고 공주님처럼 사는 인생도 아닌 그냥 직장 개미의 삶이, 누군가에게 끌려가듯 끝나버리는 내 삶의 남은 시간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봤다. 그때는 별것 없이도 참 만족 스러웠다. 어릴 때는 내 행복을 외부에서, 바깥세상의 이벤트에서 찾지 않았다. 그냥 나의 평범한 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내는 걸로 족했다.
크리스마스 전날에도, 새해에도, 명절에도 평범한 일상을 똑같이 유지했다.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서 그날 해야 할 공부를 하고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수능이 끝난 다음날도 똑같은 일상을 살았다. 다행히 공휴일에도 건물을 개방하는 학교였기에 가능했지만.
나의 평범함을 만드는 일상적인 것을 매일매일 해내다 보면, 그 어떤 혼돈의 시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를 지탱하는 사소한 일들이 없는 것이야 말로 나를 빠르게 무너지게 할 수 있다 생각한다. 나를 완성해 나가는 것은 대단히 큰일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 평소처럼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 요가 수련을 마친 뒤, 길고양이 밥 셔틀을 돌면서 그리고 내가 주는 사료를 더없이 맛있게 먹는 길고양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길고양이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자기 연민에 빠질 일도 없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어제와 같이 캣맘이 밥을 주면 기쁘게 먹고 오늘도 내일도 같은 일상에 만족을 찾을 것이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하루를, 그리고 1년을 허무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하루는 타인이나 외부에 나의 행복을 맡기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오늘도 내 일상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어떤 이벤트에 삶을 기대지 않고 그저 매일매일 내 일상의 순서를 유지해 가다 보면, 엄청난 일이 생기지 않아도 평온함 속에 은은한 만족감이 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적어도 불만과 아쉬움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빅 이벤트는 삶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리고 큰 행복과 만족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다. 오늘도 평범한 내 일상을 지켜감으로써...
PS. 내일 지구가 망한다고 하면, 아니 내일 내가 당장 죽는다고 해도 특별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어제 했던 똑같은 일을 하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위기의 하루 전날이라도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편안함과 만족을 느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