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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15. 2022

03.마음맞는 남사친과 결혼한다는 것

<베프는 사라지고 배우자가 생긴 인생에 대한 반추>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과 이성과의 친구관계는 썸의 준비 단계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도 정말 마음 잘 맞는 남사친이 있었다. 생각, 취향, 사상이 모두 잘 맞는 친구는 동성이 아니라 이성었을 뿐이다. 그 존재가 동성이었다고 해도 나는 베프가 되었을텐데 너무도 잘 맞는 그 베프가 우연히도 이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 소중한 남사친을 내가 갖고 싶은 열망이 커서(혹은 다른 여자가 채가서 잃게 될까봐) 남친으로 만들고 남편으로 도장을 찍었다. '저 남자는 거의 내 마음의 도플갱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행동을 해도 내 이해범위 안에 있어 성격적으로 마찰이 거의 없었다. 

 서로가 배려가 깊어서가 아니라 둘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포인트라도 우리에게는 그게 아주 잘 맞는 경우다. 사실 우리는 각자 다른 배우자를 만났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나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가정에서 자라왔기에,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이다. 눈치 안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삶이 중요한데, 결혼하고 처음으로 가정이라는 곳에서 불안이 아닌 편함과 아늑함을 느꼈다.


 남편은 딱히 어떤 잣대로 나를 판단하는 일이 없고, 내가 어떠한 엉뚱한 일을 벌여도 응원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반응한다. 지지가 아니라도 비난하고 말리는 것이 아닌 무심함도 또 다른 지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무모한 꿈꾸기와 도전하기를 부모님, 아주 가까운 지인들조차 속으로 '미쳤네.'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대부분의 일들은 남편의 정서적 응원(대부분 무관심)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결혼 하고도 수많은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며 살아왔다. 결혼과 동시에 한 여성의 모든 성취를 접어야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기혼 여성이 되고나서 오히려 편안한 가정과 든든한 배우자의 지지 속에서 많은 것을 도전하고 해낼 수 있었다.

 친구 같은 남편을 만나서 같이 자취하듯 정서적 마찰없이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

 

 나는 연락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내향인이라 친구가 거의 없다. 간간히 연락하는 대여섯명 이내의 친구들은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먼저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다. 그 중 완전 소중했던 베프가 남편인데 결혼과 동시에 친구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


 남사친과 결혼함으로써 최고의 친구는 잃었지만 평생 나를 응원하는 반려자를 얻게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이성친구라면 절대로 사귀거나 결혼을 욕심내지 말아야한다. 이렇게 비교적 괜찮은 결혼 생활을 하지만 아주 가끔 잃어버린 내 남사친이 그립긴하다. 다시는 그렇게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를 평생가도 못 만날 것 같아서다.


 남사친이 남편이 되면 친구일 때보다 무심하긴하다. 친구일때는 가끔 만나니까 한마디 한마디 소중하게 여겨 주고 공감해 주었다면, 함께 생활을 나누는 배우자가 되면 모든 순간을 그렇게 상대에게 집중하기 쉽지 않다.

 그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대충 듣고 넘어가도 되는 말들이 있는가 하면 오늘은 정말 베프처럼 내 이야기에 집중해서 나와 함께 마음을 나눠주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게 된다.


 평소에는 농담 따먹기, 깊이 없는 일상의 대화로 이어가다가 정말 속 깊은 얘기나 각자의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집이 아닌, 비싸고 새로운 곳에 가서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대부분 일상이 연결되는 생활 속에서 부부란 깊은 대화나 공감없이 각자의 삶에 집중하는 평범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부부의 모습이란 일상을 함께하는 편안함이겠지만, 정말 깊이 정서적으로 공감해주고 특별했던 남사친이 그립긴하다. 이 정도면 부족할 것 없는 결혼 생활이지만 가끔 욕심을 내게 된다. 마음 털어놓을 친구가 거의 없는 I형 인간에게 친구 한 명 사라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 우리가 사귀지 않았다면 평생 마음 터놓는, 잘 맞는 친구로 남았을까?


ps. 부부가 되면서 배우자는 모든 것을 내 편에서 지지 하지만 절대로 해서 안되는 불문율이 있다.


 친구와 달리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는 것. 서로와 결혼으로 연결된 가족 관계에 대한 진실된 감정은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서로의 가족에게 어떤 감정이 있어도 나 혼자 생각하고 삭히며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서로가 마찬가지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의를 지킬수 있고 그렇지 못하게 되었을때는 말 못하게 큰 싸움으로 크게 번질 수 있다. 

 내 인생의 많은 것을 털어 놓을 수 있지만 내 가족, 배우자 가족 그리고 배우자 당사자에 관련된 것은 나 스스로 참고 이겨내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속 시원하게 질러봤자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결혼하고 생긴 습관은, 길을 걷거나 운동을 할때 혼잣말로 불만을 중얼거리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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