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생일이 없어지면 좋겠다>
아직 태어난걸 감사히 여길 만큼 성숙된 내공이 없기에 매해 내 생일이 탐탁지 않다. 차라리 생일을 잊고 그냥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삶을 부여받은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평생 주입받았지만, 죄송스럽게도 전혀 감사하지가 않다.
삐뚤어진 못난이라고 불러도 좋다.
우리 누구든 스스로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태어나게 해 준 주체에게 무한 감사를 올려야 한다. 단지 세상의 일원이 된 것에 대해.
그러나 삶이 축복이 아닌 사람도 있다. 탄생이 축복이라 생일을 축하하는 게 아니라 이건 그냥 의례적인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례적인 행동조차 불편하다.
누차 주변에 말해왔다. 내 생일은 축하하지 말아 달라고. 정말 내가 탄생한 게 감사이자 행복이라면 내 이름으로 기부를 해 달라고. 그리고 행복하길 기도해주기만 하면 된다.
생일 축하를 거부하는 것은 태어난 자체를 잊고 싶기 때문이다.
그냥 나에겐 오늘을 살아내는 순간이 연속될 뿐이다. 생일이라 별 다를 게 없다.
44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났었겠지만 그 뒤에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만 남아있을 뿐이다. 살아내는 평범한 시간이 이어질 뿐, 매년 그날을 위해 탄생 축하를 할 만큼 위대하지 않다. 부처나 예수처럼 종교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도 않았으며 나를 매해 기릴 만큼 위대한 사람도 못된다.
만약 내가 위대한 스승이나 지도자가 된다면 생일 축하를 거부하지 않겠지만 이처럼 평범하게 사는 회사원이 매해 생일축하를 받을 일이 있을까.
중년의 사춘기일까? 솔직히 태어난 것이 짜증이 날 뿐이다.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낳은 사람들을 미워했다.
태어나 살아가는 김에 대충살 수는 없으니 최선을 다 하느라 매일이 고되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고 경쟁하느라 마음은 다치고 몸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사소한 것도 돌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고 매일이 쫓기는 중이다. 고3이 끝나면 세상은 좀 여유 있게 돌아갈 줄 알았지만 삶의 미션은 매해 갱신되어 더 누적된 숙제들이 나를 누르고 있다.
태어난 건 선택 못하지만 괜찮게 사는 건 나의 노력이다. 그렇게 탄생은 어쩔 수 없었으니 비교적 적당하게 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아주 잘 해내야 하니 그 피로도는 말도 못 한다.
태어난 게 못마땅하다는 사람치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주변에서는 아이러니한 거 아니냐 되묻기도 한다. 태어난 게 괴롭다고 사는걸 대충 살 수는 없다. 늘 계획을 수립하고 미션을 달성하고, 많은 것들을 수행하면서 삶을 업그레이드할 수밖에 없다. 탄생은 선택 불가였지만 생의 방식은 내 손으로 만들 수 있고 남은 삶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가는 그 하루조차 너무 불행이 될 테니까.
남에게 미루는 성정이 못되니 모든 것은 내 손에서 해결되고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그 일들이 개인사에서부터 회사업무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누군들 그렇게 안 살고 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맞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는 주체의 행동 방식은 같은 일을 해내도 그 깊이가 다르고 같은 일을 겪어도 그 타격이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상황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객체로써 있는 사람과 주체로써 해결하는 사람의 물리적,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와 피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선택적으로 많은 일들에서 주체자가 되기 십상이라 늘 해결의 중심에 있다.
그걸 할 사람이 정말 나 뿐일까?라는 의문이 따르지만 늘 나에게 더 더 더 많은 해결 미션들이 떨어진다.
좋게 말하면 주인공 같은 삶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말 피곤하다.
이따위 못난 나를 소중히 여기고 축하해 줘서 고맙다. 그렇지만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생일 축하가 아니라 매일의 평안을 빌어주는 것이 낫다. 생축보다는 그냥 일상의 안부가 고맙다. 생일 선물보다 기부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해주는 것이 고맙다. 오히려 생일 선물이 아닌 그냥 평범한 어떤 날 문득 네가 생각이 나서 사봤다는 것이면 기쁠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날 하루 축하를 받는다고 내 기분이 나아질 리 없다.
그냥 오늘도 잘 살아있고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존 여부확인과 위로라면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도 남은 생에 내 생일을 잊고 내가 태어난걸 감사히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냥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해내면서.
뭐 저런 호로자식이 다 있냐 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모르면서 세상의 보편적 기준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할 순 없다. 내 마음을 세상 기준으로 타협하여 조정하고 싶지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이건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부분도 아니며 그냥 내 삶을 위한 가치관일 뿐이다.
그렇게 살면 종국에 혼자가 되고 처절하게 외롭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미 거의 혼자에, 과거로부터 혼자였던 상황이 이어졌고 생일 축하 하나로 내 삶이 풍성해질 순 없다는 것을 안다. 자잘한 건 그냥 패스하는 것이 삶을 이롭게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과 축하를 받고 싶다는 마음은 애초에 먹고 있지 않으니 나를 저주해 봤자 전혀 타격이 없다.
나는 축하가 아니라 위로가 필요할 뿐이다.
사는 게 참 버겁다.
그리고 생일축하 하나 못 받는다고 외로운 인생이 아니며, 그게 없어 외롭다고 쳐도 사는 건 원래 혼자 견디는 수많은 시간의 연속이니 이겨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 외로운 건 나쁜 게 아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외로움 속에서 창조와 혁신이 일어나기도 했다.
카카오 선물하기 서비스 정말 한심하고 낭비일 뿐이다. 보내는 사람만 만족하는, 받는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차라리 그곳에 다양한 기관에 기부하기 서비스를 시행하는 것이 훨씬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돌아보면 기부를 딱 한번 정도 단발성으로 하고 싶지만 귀찮기도 하고 어떻게, 어디에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따로 기부처를 찾아보기는 번거롭기까지 하니 손쉽게 기부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