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도시 생활의 외로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외로움과 함께 그냥저냥 살아가기>

by 전인미D

우리 대부분은 현대화된 도시에서 살고 있다.

가정의 형태는 혼자 또는 둘로 이루어진 초마이크로 단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본래 이렇게 소규모로 쪼개진 무리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생존 형태가 아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혼자가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혼자 존재할 경우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본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혼자가 됐을 때 외로움이라는 경고등이 울려 무리를 찾아가거나 무리를 형성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개별로 분리되어 기능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여전히 본능의 경고등은 혼자 있는 우리에게 외로움이란 형태로 울려 퍼지고 있다.

‘너는 지금 무리에서 떨어졌다. 너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얼른 무리로 돌아가 안전을 도모하고 보호를 받아라.’


그렇지만 현대화된 도시에서 홀로 떨어진 작고 여린 인간이 위협받을 일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외로움이라는 본능을 따라 무리를 찾아가지 않아도 우리의 생존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혼자 살아도 딱히 문제없으니 외롭다는 건 생존을 위한 주요 해결과제가 아니다. 즉 외로움은 실체 없는 감정이라는 거다.

하지만 외롭다는 느낌 속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를 작은 상실을 느낀다. 생존의 여부와는 무관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삶의 만족도 역시 이 외로운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달려있다.



생존을 위해 무리를 형성할 필요가 없는 오늘날의 우리는 이 외로움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저 몸에 새겨진 생존 본능일 뿐이라는 것을.

진화를 거듭해 오며 무리를 짓는 것이 이 연약한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및 종의 번식을 유리하게 했다. 그렇게 외로움을 경계하고 사회와 무리에게 소속되길 희망하도록 세팅되었다.

오늘날 사회는 홀로 살아도 위험할 일이 없고, 혼자 지내도 불편한 것이 전혀 없다. 세상은 분업화되었고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은 혼자 살기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단 하나의 문제는 몸은 홀로 살도록 현대화에 맞춰 적응되었는데, 오랜 시간 호모사피엔스 본능에 새겨진 외로움은 전혀 해결할 수가 없다.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 핵도시화된 곳에 사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혼자 살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이나 사회 같은 무리에 속해 있어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이 정신적인 결핍을 해결해보고 싶어한다.


외로움은 물리적으로 혼자여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집 밖에 나가기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 있고, 카페만 가도 주변 테이블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외로움은 어째서 생기는 걸까?

세상의 사람들이 나와 친밀한 교류를 하는 존재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풍요 속 빈곤이라는 말처럼 정말로 우리 주변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어서 생기는 게 외로움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고밀도의 도시라 어딜 가도 사람이 가득해 피곤할 정도다.


세상에 사람들이 차고 넘치고 있어도 외로운 감정에 빠지는 이유는 이들은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서다. 즉 나의 생존에 전혀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면 나의 정서적 안정감에 관여하는 특별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에 공존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익명적 존재일 뿐, 나와 연결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김춘수 시인이 쓴 꽃의 한 구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세상에 사람이 많아도 특별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나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정서적 안정감을 얻기는 어렵다. 의미를 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로 외로움을 불식시기키 어렵다는 거다.


결혼을 하고 가족을 형성하면 외로움이 없어질까? 일단 사람이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안정감은 나를 지켜주는 존재와 가정의 울타리다. 가정이라는 작은 집단에 소속되어야 안전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소속 범위를 확장해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와 국가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과 보호받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어떤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


물론 결혼 후 배우자와의 마찰과 가족의 지지를 못 받고 그 안에서 외로움을 토로할 수는 있다. 가족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해도, 가족으로 부터 얻는 신뢰와 지지 없이 안정감을 얻을 수는 없다.

개인은 사회화의 최소 단위인 가정을 구성함으로써 1차적인 안정감을 획득하고, 가족 형성 이후에는 구성원들과의 공동 노력을 통해 그 안정감을 유지하며 외로움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가 둘이 되든 셋이 되든, 사회에서 요직에 소속되어 있든 프리랜서로 무소속으로 살든, 우리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 도시에서는 모든 순간 자유롭고 자립하여 살 수 있게 시스템화되어있기에 모든 순간을 내 지지자와 함께할 수는 없다. 도시 생활에서는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은 늘 존재하고 있다.


도시의 삶은 이어져 있지 않으며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다. 그래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이 독립성 앞에서 외로움을 더 강력하게 느낀다. 자유와 외로움은 연결되어 있다.

현대적 삶은 독립과 동시에 고립과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관건은 외로움을 어떻게 없앨지가 아니라 어떻게 외로움과 함께 일상을 꾸리고 살아갈지가 중요하다.

본능을 컨트롤할 수 없다. 그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생활을 슬기롭게 꾸미는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내 몸에 달린 그림자처럼 같이 즐기며 가는 동반자다. 없앨 수도 없고 없애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외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냥 오늘 할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은 인간은 왜 외로운가를 근원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저 선조들의 생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없앨 수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며 그냥 할 일을 하면서 살다 보면,

이 외로움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다양한 크기와 형태가 된다. 외로움의 모습이 변해가는 걸 지켜보며 살아가는 재미도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외로운 모습 자체를 즐기게 된 경지라 말할 수도 있다.


안정감이란 어쩌면 신기루 같은 일일 뿐이다. 우리가 단체로 동굴생활로 돌아가야 없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어쩌면 사실 그때도 누군가는 무리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느낌이 들든 말든 그냥저냥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막 말로 외롭다고 이 감정이 나를 죽이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우리는 늘 기대하게 된다.

내 편 한 명 있으면 전혀 외로울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아무나 곁에 두고 내편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냥 냉철하게 정신을 유지한 채 외로운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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