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전 우주적 차원일 뿐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 다들 같은 마음이다.>

by 전인미D

왜 나에게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예민함이 남들보다 높기 때문일 거다.

남들도 다 겪는 평범한 일이다. 이 일의 무게를 키운 건 당신의 해석 때문이다.


나에게만 더 어렵고 힘들게 발생되는 일 때문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비슷한 일을 겪어도 별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다 비껴가고 나보다 수월하게만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알고 보면 비슷한 처지여도 내가 더 민감하게 인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스로 일을 확대 해석하고 오해로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착시현상처럼 감정의 착시가 일어난 거다.

시각적 착시는 어떤 현상을 보는 위치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진다. 감정적 착시는 오해에 빠져 스스로 객관성을 잃게 된 경우다.


눈앞의 일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편견과 아집이 지나치게 반영되면 같은 일도 고통이 가중되게 느껴진다. 줄자를 대고 이 일과 저 일은 같으며 오해한 건 너의 시각일 뿐이라 설명해 줘도 스스로가 벗어날 의지가 없다면 이 침잠은 끝나지 않는다.

감정적 착시는 자기 연민에 빠진 채 자의적 해석을 더해 별거 아닌 일에서 상처를 부풀리고 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타인과 부딪히며 살아가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는 없다. 변수 없는 삶이란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못볼꼴을 안 보는 걸 택할 수는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흘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불편함을 느껴도 무신경하게 넘기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어떤 사건에 내 개인적 해석과 의미부여를 당장 멈추는 것이 좋다.

불안한 내 감정을 통제 못하고,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 상황을 예측해 현재의 분노로 만들 필요도 없다. 판단의 착시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예민이 지나친 사람은 무심(無心)도 연습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생각과 분석이 지나치다. 생각의 멈춤은 오래 참선한 사람들에게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보통은 멈춤이 어려우므로 생각을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한다.

사람들은 무심을 향하기 위해 명상과 요가수련을 한다. 수많은 생각과 판단만 멈출 수 있다면 마음의 지옥에서 대부분 벗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반복된 일상은 우리를 무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쉴 새 없이 판단하고 스스로 지옥 속에 가둔다.

생각이 많을수록 마음의 고통은 깊어진다.


별 뜻 없이 한 타인의 말을 곱씹으며, 스스로 의중을 만들어 오해하는 것도 하나의 버릇이다.

사람은 모든 말과 행동을 매 순간 의식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별뜻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내막을 캐거나 오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관계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슈는 별 뜻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괜히 분석하고 의미를 왜곡하여 에너지를 쓰고 고통받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의미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별뜻 없는 말을 곱씹어 오해를 잘하는 사람만큼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

타인의 모든 언행에서 분노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뒤를 캐고 스트레스를 받아봐야 당신만 힘들다.


화를 내기 위해 노력한 만큼 무심하게 흘려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건설적이다.

설사 타인이 의도적으로 상처를 줄 언행을 했다고 한들, 그 의도가 나의 괴로움이니 그것에 응해주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저 아무 의미를 담지 않은 채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타인으로부터 꽂힌 말과 행동이 불쾌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을 확대 해석하고 과잉 반응하는 생활이 건강할 리가 없다.


늘 다른 이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면, 괴로움을 넘어서서 정신이 매우 불안해진다. 아무도 믿지 못하며 매사 방어태세를 갖추면 안정감 있게 살기 어렵다.

투쟁–도피(Fight-or-Flight)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면 교감신경은 지나치게 항진된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고 지속되면 결국 현대인의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여유로, 휴식과 이완모드가 필요하다. 이해와 관대함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정신적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다.


투쟁-도피 모드로 많은 것으로부터 피해의식을 갖는 사람은 멀쩡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실생활에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의심에 가까운 자기 믿음의 결핍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지치게 만들고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채 내보이는 일상적인 날카로운 반응은 주변 사람들을 늘 가시방석에 앉힌다.

자기의 불쾌함에만 빠져 사방을 불편하게 만든다.

예민함이 초래한 오해와 피해의식으로 사로잡힌 망상은 나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스스로 건강하게 생각하고 타인이나 세상을 너그러이 내버려 두는 마음을 필요할 때다.

모든 순간을 분노를 키우기 위한 해석에 당신의 삶을 낭비해선 얻을 게 없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지나쳐 마치 자가면역질환처럼 도리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 예민함이 더욱 민감도를 높여, 나 외에 모든 사람이 적이 되며 종국에는 스스로도 자신의 적으로 느끼게 된다.


내가 분노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 일들이라면, 그냥 별 일 아니라고 정신승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더불어 화를 내는 대신 현실도피나 외면도 현명한 솔루션이다.

발생한 사건이 별일이라서 일일이 모든 사건에 대응하며 바로 잡는다고 한들, 내 삶이 더 나아질 게 없다.

그냥 잠시 벗어나 나의 멘탈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살면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바로 잡을 수 없고 해명할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두고 내 마음의 평화를 지켜라.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주로 타인을 의심하고, 혼자의 불행을 확산해 함께 불행한 상황을 조성한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한 채 타인은 나를 공격한다고 여기고,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한다. 세상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오해로 스트레스를 키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관대한 마음보다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생각 비움을 통해 무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당신을 공격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각자의 우주를 살다가 충돌을 하거나 스쳐 지나갈 뿐이다. 행성끼리 부딪힌들 무슨 저의가 있겠는가? 나의 힘을 믿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의 궤도대로 돌 수밖에 없다.


행성들도 서로 충돌하며 원래의 궤도를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는 건 전 우주적 차원이니 혼자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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