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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Mar 01. 2023

30.내 인생엔 요가와 쌍욕이 필요해

<회사원의 요가인생은 어쩔 수 없이 속물스럽다>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요가만 하면 평온하고 행복할 것 같겠지만, 하루 종일 인간에게 시달리는 전쟁통 같은 직장에서 퇴근하고 요가를 한다고 금세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


 내게 수련을 통해 평화가 찾아오거나 평온했던 순간은 별일 없이 평화로웠던 주말 오후나 여유 있던 어떤 날 중에 했던 수련이다. 지옥철에 시달리고, 뒤통수 때리고 싶은 직장 동료와 숨 막히는 업무 마감기한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를 마치고 난 지친 하루 끝에 만나는 수련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퇴근 후 수련에서 평화를 얻은 날은 사실 없는 편이다.(없다고 단정 지어 말하고 싶지만 내 수련의 깊이가 낮기 때문에 언젠가 먼 미래 지옥 같은 하루를 끝내고 만나는 수련에서 스위치를 전환하듯 평화로운 날이 올 수도 있기에..)


 분노로 칼을 갈던 날도 퇴근 후 나는 요가를 하기 위해 매트에 섰다. 분노스러웠던 오늘의 모든 순간을 비디오를 거꾸로 돌리는 재생을 하듯 되돌아보며 그날 가장 화가 난 포인트에 멈추어 서서 상상을 펼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 상대가 해줬으면 했던 아쉬운 행동들을 곱씹으며 입으로 하고 싶은 다음 이야기를 뱉어낸다.

 매일 기록하는 수련 영상에서 내 입이 오물거리는 것이 보인다면 그건 아사나를 읊는 것이 아니라 분명, 대체로 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수련 영상을 음소거로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가 나는 하루를 마치고 대체로 불쾌한 감정 속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퇴근 후 바로 기분이 전환되는 아주 강인한 멘탈을 가진 사람(부럽습니다.)도 있겠지만, 나의 분노는 퇴근은 물론이며 주말 내내 이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잠자다 새벽에 깨서 허공을 보며 분노를 되풀이할 때도 많다. 게다가 기억력도 좋아서 어린 시절의 서운했던 대부분의 일들을 부모님께 되물어 기억도 안 나서 해명조차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 드리기도 한다.


 요가만 한다고 기분이 나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요가만 한다고 평온을 찾는다는 건 절에 간다고 모두 해탈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이 너무나도 성급한 결과주의 일반론이다. 

 매일 이런 속세의 분풀이 도구로 요가수련을 쓰는 것이 상당히 부적절하고 죄송스럽기는 한데 이것이 바로 회사원의 요가 인생 현실판이다. 


 이상적으로는 요가를 통해 나의 내면이 보다 성숙하고 보통 사회인들과 차원이 다른 자의식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무리 수련을 해도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다시 리셋이 된다.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나 자신을 보며 요가해도 사람이 별거 없네 싶기도 하겠지만, 남들 눈에는 다 같이 한심한 존재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다음날 출근 할 수 있는 마음의 용기를 조금은 키워주기는 한다. 요가만 아니었으면 나약한 나의 마음은 이 모든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에서 용서는 못해도 포기할 건 포기하고 받아들일 건 빠르게 인정하여 다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수련을 통해 한 단계 성숙된 인간으로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기보다 다음날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아주 작은 힘을 얻고 있다.


 요가 중에 욕을 하고 나면 때로는 노래방 가서 소리치며 스트레스 푼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수련을 통해 정신이 커가는 게 아니라 그냥 욕받이로 요가를 사용한 거잖아~라는 생각에 죄책감도 든다.

 요가하는 사람이 이렇게 입이 더러워서야 되겠나 싶은데, 안 그러면 사고를 크게 칠 것 같아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생각을 펼치고, 못했던 말을 집에서나마 중얼거린다. 오랜 시간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참고만 살았다. 이제 난 참지 않아. 실컷 욕해주겠어! 혼자 요가하면서.


 이대로 나이를 먹어도 성숙된 요가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지금 나의 생존 도구는 요가하며 욕하기. 그래서 사회생활을 비교적 잘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ps. 요가에서 그룹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 혼자 수련의 장점은 간편하다는 점이 있지만 요가의 긍정적인 기운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렇게 요가를 도구화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나도 요가를 통해 마음이 아주 커졌던 적이 있었다. 요가 티쳐트레이닝을 하며 요가를 사랑하는 요가 선생들과 했던, 단체 수련에서 엄청난 정신적인 에너지와 내 신체적인 파워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지금은 혼자 수련하다 보니, 한계 끝에서 자꾸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수련을 뭐라고 생각하든 일단 요가 매트에 서있는 시간이 쌓여가면 나중에 내 인생에 뭔가는 찾을 수 있겠지라며, 지금 하는 속물적인 생각에 조금만 괴로워하려 한다.(괴롭지 않을 방법을 모르겠다.)

 요가하는 사람치고 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긴 하다. 생각을 심플하게. 라고 하며 생각하지 않으려고 또 생각하는 중이다.

 이너피스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쉽지 않고 은퇴후라고 말하게 된다면 분명 정년 후에도 그때 일상의 괴로움 때문에 이너피스를 미룰지도 모르겠다.(그땐 뭐 관 속에서는 가능하겠죠? 라며 웃픈 농담이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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