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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06. 2023

29.우리가 무엇을 못하는 이유

<작년과 동일하게 매일 후회스러운 루틴을 사는 현실>


 우리는 매해 새로운 목표를 짜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엇을 올해도 못해낸다. 작년과 동일한 루틴을 살다 보면 그 많던 365일 일상은 1년의 순삭으로 끝나있다.

 1년 전에도 회사-집-친구 만나기-유튜브 보기로 끝났다면, 그 1년 전에도, 그 1년 전에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변화 있는 새로운 일을 꼭 해내고, 내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가자.'라고 하지만, 늘 그렇듯 올해도 아마 대체로 순삭 될 예정이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새로운 무엇을 못하는 이유, 우리 일상에 새로운 포인트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는 절대 아니다. 

 그걸 해낼 정신적 여유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연결된 통 시간이 없다. 우리에겐 쪽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12시간은 출퇴근포함 직장이라는 것에 떼어줘야 하는 통 시간이다. 나머지 남은 12시간에서 7~8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야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최소 4~5시간은 남아있어야 한다. (나는 요새 갑상선 항진증으로 인해 8시간 이상은 자야 한다. 이 잠으로 인해 무엇을 해낼 시간이 더더욱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나처럼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5시간의 통시간이 주어진다. 육아도 안 하고, 남편 식사를 챙겨야 하는 의무도 없는 사람이 5시간 중 연결된 1~2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점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퇴근 후 1시간만 확보해도 1년 365일 중 365시간을 투자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고, 작년과 다른 올해의 나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냐고. 시간이 어디 갔나 하며 퇴근하고 잠시 숨만 쉬어도 그냥 잘 시간이다. 퇴근 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도 한 가지만 잘~해도 이미 잘 시간이다. 그렇게만 해도 그 사람은 시간을 아주 훌륭하게 썼다고 칭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왜 이렇게 없을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본 세팅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시간보다 2배 정도는 더 잡아야 그 일을 하기 위해 드는 실 소요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퇴근 후에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세팅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1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위한 세팅 시간은 40~50분이 더 필요하다. 출근복을 벗고 골프복 갈아입기 6분, 골프장으로 이동하기 왕복 20분, 타석 잡고 물 뜨고, 신발 갈아 신고, 골프채 준비 8분, 집에 와서 평상복 갈아입기 및 세탁물 정리 후 샤워실 들어가기 5분. 그 이후 샤워하기 등을 다 생략해도 퇴근 후 딱 골프만 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1시간 40분 이상 소요된다.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어떤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드는 세팅시간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요가는 어떨까? 내가 매일 요가를 목표한 이유는 내 나름대로 세팅값을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세팅값을 최소화하고 퇴근 후 흔들리는 나에게 족쇄를 씌우기 위해 현관에서 옷방으로 이동하는 길에 요가매트를 깔아놓았다. 이 요가 매트는 1년 내내 접히지 않는다. 출근복을 벗고 고민하며 회피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전날 미리 골라놓은 요가복을 쓰윽 입는다. 퇴근하고 돌아와 요가복을 입고 요가 매트 위에 서기까지 대략 10분 이내. 

 보통 퇴근 후 폰을 보기 시작하면 하는 것 없이 1~2시간은 순삭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을 원천 봉쇄한 뒤 바로 셀프 수련을 하며 1시간을 보낸다. 집에서 하는 수련이기 때문에 이동하는 세팅값이 없다. 수련이 끝나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거나 이동할 시간이 전혀 필요치 않고 그대로 옷을 벗고 화장실로 이동하여 샤워를 한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효율 계산기를 돌리는 TJ답게 아주 만족스러운 루틴이다.


 만약 여기서 요가매트를 깔아놓지 않았다면, 매트를 깔기부터 귀찮아서 오늘 수련은 글러먹을지도 모른다. 요가복을 골라놓지 않았다? 그럼 옷을 고르다가 핸드폰 잠깐 하다 보면 아마 1시간 정도 사라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팅값을 최소로 줄이고 바로 그 일에 착수하는 통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세팅은 전날 쪽 시간을 활용한다. 요가복 고르기, 다음날 입을 옷 골라놓기, 요가매트 닦아놓기 등 퇴근 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생각이 나거나 짬이 날 때 다음 달을 위해 미리 세팅해 놓을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전날 세팅시간을 미리 쪼개어 준비해 놓으면 오로지 그것만을 해내는 통시간을 아주 줄여낼 수 있다. 그렇게 적어도 오늘 퇴근 후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끝나버린 하루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셀프 수련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미리 골라놓은 유튜브 요가영상도 좋다. 요가 직전에 서두르며 고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고르다가 또 다른 재밌는 영상을 검색하고 시간은 흘러 흘러, 수련도 패스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도 안다. 이렇게 세팅시간을 미리 투자해 놓아도 우리가 무엇을 못하는 이유를. 

 퇴근 후 우리는 이미 너덜너덜 걸레처럼 에너지가 없다. 그 와중에 호전적인 요가, 골프, 독서, 영어공부를 채워 넣기에는 체력이 달린다. 그저 누워서 시간을 죽이고, 내 마음 살짝 달래기로 수동적으로 SNS를 하고 보내버리고 싶다. 우리에겐 무엇을 더 해내고 싶은 열정도, 의지도, 힘도 없다. 그냥 쉬고 싶은데 심심하기는 싫어서 멍하니 유튜브를 소비할 뿐~

 

 특히 나처럼 허약체질인 사람은 퇴근을 하고 나면 에너지가 바닥을 쳐서 일단 누워야 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항상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엄마 자?"라고 물으면 항상 "아니, 힘들어서 쉬려고."라고 답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쉬는데 보내셨던 만큼 그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정말 체력이 약하고 피로가 자주 몰려온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적인 에너지도 없다. 그래서 무엇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퇴근 후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만성피로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냥 의욕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게을러서라기보다, 타고나기를 신체 에너지가 아주 적게 부여받아서 이것저것 해내기에 몹시 힘든 점이 많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주변에서 '아니 너처럼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이것도 사실 겨우해내고 있을 뿐, 내가 신체에너지가 많게 태어났다면 아마 잠도 안 자고 불도저처럼 모든 것을 해냈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퇴근 후 녹초가 되겠지만, 1년 내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힘든 날도 있지만, 오늘따라 일이 잘 풀리고 칼퇴도 하고 업무 강도도 적당해서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정말로 놓치지 않아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갑자기 여유도 있고 에너지도 있는 날이 온다고 해도 의미 있게 보내기는 힘들다. 평소에 미리 세팅값을 만들어 놓은 게 없고, 퇴근 후 해야 할 도전과제가 아예 없던 사람이라면, 오늘 꽤 힘이 남았는데 갑자기 요가복이 생길 리도 없고, 요가 영상은 아는 것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비싼 골프채가 상비되어 있을 리도 없으니 말이다.


 이 글은 그래서 미리미리 장비에 투자해 놓으라는 것은 아니고(본질을 이상하게 해석하면 미리 장비에 투자해서 큰돈 쓰고 포기해서 더 손해 보는 일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힘든 날도 비교적 평안한 날에 도전할 수 있는 과제를 미리미리 체득해놔야 한다는 슬픈 결말이다. 결국 힘들든 어떻든 꾸역꾸역 평소에 내 몸을 움직여서 뭐라도 하라는 것이 진실이다. 인생에 숏컷은 없음이 진리!


 퇴근 후 오늘따라 비교적 시간이 났는데 할 게 없다? 평소처럼 유튜브 보내면서 그날 하루를 끝낸다면, 올해도 작년이나 재작년과 같은 1년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아프건, 슬프건 호전적인 도전 과제는 항시 상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

 1년 완성 이런 헛된 망상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길게 길게 내 남은 인생 동안 데리고 갈 즐길거리다 생각하고 꾸준히 해내면 된다. 힘든 날은 대충 10분이라도, 에너지가 넘치는 날은 2시간 해버려도 뭐 문제없다.

 우리는 대체로 큰 일 없으면 100세 가까이 사는 시대에 있기 때문에.


ps. 나는 어마무시한 몸치다. 게다가 공도 무섭고 구기종목 꿈도 꾸기 싫지만 일단 골프를 시작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단 한번의 결석(아무도 출첵은 안하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 없이 꾸준히 하고 있다. 그에비해 실력이 아주 형편없다. 너무 못 치니까 재미도 없지만 꾹 참고 볼을 치고 있다. 언젠가 잘 하면 재밌게 칠날이 오겠지~ 하면서. 

 남편이 나보고 재능도 없으면서 무식하게도 친다라고 하지만, 신은 나에게 재능은 안 주셨지만, 묵묵히 해내는 끈기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사실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끈기보다는 루틴의 유지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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