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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Dec 31. 2022

28.기분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없어도.

<깊은 침체 속에 뭐라도 해야 했다.>


 기분이 전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저녁시간에도, 지치고 모든 것이 귀찮고 무의미할 때도, 요가매트에 섰다.

요가를 하는 동안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당연하다!

 요가가 마법도 아니고, 엄청난 요가 맹신자들은 요가 전후 굉장히 달라진 자신들의 상태를 SNS에서 어필하고 있지만, 정말로 매일 진심으로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요가는 기분 전환용 마법이 아니다. (전혀 아니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런 날도 아닌 날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요가 매트에 서는 이유는, 그 우울한 감정 속에서 달리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가는 완전한 기분전환 해결책이라고 약을 팔고 싶지만, 어떤 짓을 해도 마음이 우울한 날은 이마저도 전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우울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냥 멍하니 시간을 죽이며 그 감정에 점점 더 메몰 시켜 불행을 3배속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무엇을 해도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기에, 조금 귀찮아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화가 나기도 하고, 나를 불쾌하게 했던 사람에게 원망도 내뱉으며 요가 아사나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간다.

수련이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내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매트에서 다음 아사나로 동작을 이어간다. 


 남편은 나보고 요가하는 사람이 입이 왜 그렇게 거치냐고 할 정도로, 요가를 하며 온갖 분노와 욕을 쏟아내기도 한다. 남편이 있건없건, 듣는 사람이 없어도 그냥 허공에 대고 오늘 하루 하지 못했던 억울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낸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은 남들에게 다 하기보다 참았다가 집에 와서 혼잣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혼자 벽 보고 말할 때 엄청난 달변이 된다.

 이렇게 수년간 단련을 했더니, 나는 대중 앞에서 비교적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쿨하지 못한 성격이기에 나름대로 혼자서 빈 방에서 터트리며 살았다.


 수련을 마치고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오늘의 수련은 정신적인 편안함을 전혀 가지오지 못한 실패한 수련이라고 속상해하며, 매트에 누워 사바아사나에 들어간다.

 사바사나를 위해 눈을 잠시 감은 순간, 수련 내내 나아지지 않았던 기분이 조금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네. 견딜만하네.'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다시금 말하지만 요가를 한다고 기분이 180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채화처럼 아주 연하게 조금은 괜찮아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전히 괴롭지만 비교적 견뎌볼 만한 무게감으로 줄어있다. 

 수련이라는 것이 기분 스위치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내가 일 년 내내 하며 깨닫는 바는, 날마다 그 강도가 다르다.

 확연하게 몸과 기분이 개운해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주 조금 나아져서 겨우 다음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기력을 떨친 상태일 때도 있다.


 완벽하게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지만, 사바아사나 시간 동안 수련을 마치고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마음속에 정리해 보게 된다. 물론 사바아사나에서 깨어있음과 잠들어있음 사이에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하고 할 일이 많아서 고민이 있는 시기에는 사바아사나의 청정한 머리 상태일 때 다음 할 일을 계획해보곤 한다.


이것이 정석에서 벗어난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요가와 함께 내 일상을 조화롭게 이루어나가는 방법일 뿐이다. 나는 요가 강사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수련생일 뿐이기에, 어떤 방법이든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요가를 조금 변형하여 기꺼이 그렇게 하고 있다.

 요가는 내가 이 세상을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수단으로 요가를 이용해서 몹시 죄송합니다.


 기분이 너무 안 좋거나 괴로울 때 오늘 상태로 수련을 해봤자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매우 확신에 찬 믿음이 있는 날에도, 수련을 마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다음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방전된 배터리에 1% 정도의 에너지를 겨우 부여한 상태랄까.

 그래서 수련을 하며 사실은 그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대로 내 머릿속이 흘러가도록 그냥 두기도 한다.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더 생각할 것이 없을 때, 그냥 불편한 감정만이 약간 남게 된다.


 생각을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다 쏟아낸 뒤, 불편했던 감정만 남으면 그 기분을 바꾸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샤워를 하고 고양이 뱃살을 만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남은 찌꺼기의 감정은 조금 흐려지게 된다. 그렇게 오늘을 이겨내고 한숨 자고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비교적 괜찮아져 있다.


 그렇게 그날 하루하루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전혀 수련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지만, 이 수련을 끝내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매트에 올라간다.


ps. 성실한 요가 수련자이지만 마음속에는 불신이 많다. 그러나 기대를 안 하면 그보다 조금 나은 결과를 얻었을 때 비교적 기분이 괜찮다. 요가해 봤자 기분은 그대로일꺼야 라고 생각하지만, 내심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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