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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Mar 18. 2023

16.노력도 관성?

<몰입의 경험이 쌓여 삶의 깊이를 만들어 간다>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가 비교적 젊은 교수이기도 했고, 지루한 강의 말고 나의 찌질했던 학교 생활과 현재의 회사 이야기를 꽤 많이 해줬기 때문 일 것 같다.

  나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평범하고 미약했던 학생일 때가 있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성형이 아닌 하나씩 만들어가는 시간을 통해 어떤 모습이든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저 교수도 예전엔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나는 학생들의 신기한 질문을 통해서 타인의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시작했다.(대체로 난 남에게 관심이 없지만, 제자들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집중 탐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내 인생에 있어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절 강의 중, 한 학생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노력하는 방법."


 아니 저렇게 철학적인 질문을 디자인과 수업에서 할 일인가? 그래그래 내가 편하다 이거지?

 그러나 요새 아이들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될놈될, 복세편살 그저 대충 살자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다른 한 편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되물었다. "노력을 안 하는 이유는? 여러분~ 노력이라는 게 막 엄청 대단하고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한 걸음을 매일매일 꾸준히 가는 것이 오랜 시간, 때로는 평생이 쌓이는 것이 노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노력이라는 게 엄청난 고난도의 지략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란 거죠."


 그러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될지 안 될지 믿음이 없어서 노력을 못 하겠어요."

 될 것만 하고 가능성 있는 것만 투자하고 싶은 그 마음 이해는 한다. 

 "가성비로 살고 싶은 학생이군요? 가성비만 생각하다가 인생 쪽박 찹니다. 하든 안 하든 인생은 흘러가요."


 우리는 무엇을 하든 처음에는 모두 0부터 시작이다. 당연히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안된다는 결과는 내가 포기했을 때만 성립되는 것이다. 내가 계속하는 한 안될 것은 없다는 어쩌면 굉장히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가지면 된다.


 재능은 완성된 상태를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시작 전에 속단한 뒤 할지 말지 의심을 하는 일은 무의미한 저울질이다.

 솔직히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기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판단해 봐야 한다.

 "사실 노력하기가 귀찮았던 거 아니고?"


 고민만으로 행동을 미루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성급한 마음의 문제가 꽤 크다. 사람들은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매일 꾸준히 어떤 길을 향해 간다는 것은 오르락내리락 원하는 결과를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그 사이클을 이해하지 못하면 '난 재능 없음. 여기까지! 포기!'라고 결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스스로 믿지 않기에 노력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노력도 관성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해 몰입해 본 경험은 삶을 대하는 기본 태도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나도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중에 가장 정점은 입시를 준비할 때였고, 고등학교 시절의 노력과 성취는 살아가는 내 인생에 큰 기준점이 되었다. 아무리 짧은 학창 시절이라고 해도 그 3년의 깊이는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엄청난 경험이다.

 그 시절을 치열하게 채워가며 원하는 것을 얻어본 경험은 인생 전체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있어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 어린 시절 한 번이라도 본인이 만들어간 노력과 시간의 누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뤄본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어떤 것을 시작 전에 자신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 될지 안 될지 몰라서 노력을 안 해본다? 시도를 안 해본다? 혹은 지속을 안 해본다? 그것은 아예 모든 것의 가능성이 0%로 만드는 행동일 뿐이다.

 안 될 가능성을 미리 의심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여 뭐든 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안 될 것은 없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 

 '모든 것은 인간이 하는 일들인데 안될게 뭐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작은 도전과 성취이든, 장시간 투자해 오랫동안 도전하고 만들어야 하는 성취든, 다양하게 본인 손으로 무엇을 이뤄내 본 사람은, 사람마다 시간과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고민 없이 일단 움직이고 본다. 

 그저 불필요한 생각보다 몸이 빠른 것이다. 

 그래서 단기 성취나 장기 성취나 여러 가지 성취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노력을 하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무의미한 삽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취에 대한 다각적인 경험은 결국 노력을 습관화하게 되며, 이런 사람들의 삶은 늘 새로운 공부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노력을 관성처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라는 것은 별다른 건 전혀 없고 그저 매일 꾸준하게 원하는 바를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빨리 결과를 보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그냥 일상을 채우는 성실함일 뿐이다.


 심지어 노력이 관성화된 사람들은 스스로 성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루틴한 생활 방식일 뿐인데 남들 눈에 성실해 보인다고 판단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스스로 성실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대체로 남들이 나에게 "참 부지런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밖에 없다. 난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력으로 성취가 많은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1등 강박이다. 그저 살아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일들로 채운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매일 시험 치듯 쫓기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뿐이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환멸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의 인생은 노력을 하든 안 하든 시간은 흘러간다.

 인생이 촘촘하고 깊이 있는 지식과 다양한 경험으로 채워지든 그렇지 않든 나이는 먹는다. 삶이 조금 더 즐겁고 풍성해지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귀찮은 도전과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어제와 같은 나의 모습이 아니라 매해 달라지고 나아지는 모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포기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비록 노력의 과정이 귀찮아서 일상이 약간 고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요즘말로 하자면, 갓생사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더욱 스스로를 사랑하며 인생의 기쁨을 만끽해 갈 수 있다.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지금 자신이 무척 게을러져 자기 삶을 빛내는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력도 재능이다?

 노력을 통한 승리, 성공의 경험은 관성이다. 마약처럼 그 승리의 쾌감을 위해 하루하루를 투자한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있기에, 눈앞에 있는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먼 훗날의 빛나는 열매를 향해 간다. 

 길게 보면 매일의 달콤함이 삶의 기쁨과 성취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결국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매일이 조금 버겁긴 했지만 노력으로 채워진 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소중하게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70대에도 80대에도 도전하는 사람을 보면 배움과 도전이 끝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겨우 50세도 안된 사람이 "이제 와서 어쩌겠어?? 다 늙어서 이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80대 노인이 수능을 공부하여 대학에 가기도 한다. 나이에 대한 제약보다는 무엇을 이뤄내는 기쁨을 아는 것이다. 사실 노력을 통해 성취를 얻는다는 것은 마약만큼 쾌감이 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늘 무언가를 조금씩 해보는 성실함이 루틴화된 형태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노력은 정말 관성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긴 하다.


 이런 어른들은 나이가 어떤 것을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저 더 알고 싶고 나아지고 싶은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삶에서 그저 오늘, 내일, 모레 더 해야 할 공부나 도전을 꾸준히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 그 끝에 성취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활방식에 노력이 관성이 된 사람은 어떤 것을 안 하기 위한 이유 백만 가지 대신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며, 언제라도 원하는 것을 시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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