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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Mar 20. 2023

17.용서하라는 말 쉽게 하지 마세요.

<미워할 자유. 기억하는 것이 복수라서.>


 용서하라는 말은 또 다른 폭력이다.

 피해자를 배려하는 척하면서 미움이 지속된다면 너도 불행할 거라는 2차 가해까지 해가며 억지 용서를 구하는 세상이다.

 상처 입은 것도 서글픈데 용서해야 하는 책임까지 지워야 할까?


 이 세상엔 용서하지 않을 짐을 지고 살 자유도 있는 것이다. 내가 피해자가 된 것이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용서도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할 선택은 아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왜 용서라는 짐을 지고 살아야 할까. 그저 미워할 자유도 있다. 

 모든 문제의 마무리는 피해자가 용서를 해야 끝이 난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는 피해자가 마무리 지을 필요가 없다. 혹은 피해자는 이 일을 용서로써 없던 일로 마무리 짓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나쁜 일들은 곱씹을 때마다 괴롭긴 하지만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용서를 통해 잊음을 선택할 수 있지만,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기억함과 분노를 선택할 수도 있다.

 가해인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한다고 해도 피해자에게는 용서를 할 만큼 충분히 곱씹을 시간 역시 필요하다. 단순히 이 모든 사건의 마무리를 피해자의 조속한 용서만으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깟 피해자의 개인사. 그가 용서 하든 안 하든 그의 짐이 아닌가? 그가 괴롭든 아니든 용서하지 않는 결정은 피해자가 택한 일이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피해자를 향해 용서하면 편안해진다며 그만 잊고 흘려보내라고 한다. 피해자는 아직 용서할 준비가 안 됐는데 억지로 화해시키면 당신이 마치 행복 전도사가 된 양 위대하게 느껴지나요? 세상을 평화롭게만 만들고 싶다면 본인이 조금 더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하면 된다. 타인을 억지로 화해시켜 대리만족을 할 필요는 없다.


 땅을 치고 후회하든 사는 내내 가슴에 돌을 얹든 그건 피해자의 선택이다.

 용서하고 흘려보내는 것으로 그 지난 슬픔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하고 괴로워하면서 영원히 잊지 않음으로써 상대편이 죄책감과 책임을 가지고 이 생을 마무리하기를 바랄 뿐이다. 용서를 통해 이 일들이 별것 아닌 것으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사는 내내 미워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고, 이 시간을 곱씹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위로다. 내가 용서를 하면 이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된다. 그렇게 가해인들은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어차피 편안하기 글렀으므로 이 고통을 준 사람 역시 용서를 받고 편안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내가 미워하고 있음을, 본인의 잘못은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상처로 남아있음을 꼭 기억하기를 바랄뿐이다.


 피해자가 행복하고 편안해지길 바란다?

 허울뿐인 조언 말고 정말 힘들 때 힘께 분노해 주고 함께 미워해주는 것이 위로라는 것이다.

 

 용서하라는 말 쉽게 하지 마세요.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모르면서 단편적인 정보 하나만 갖고, 일반화된 조언이 해결책이랍시고 내미는 우매한 오지랖 거둬주면 좋겠다.


 아이러니하게 어떨 때는 미움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을 미워할 수 있게 자립의 힘을 키워왔다.

 평생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더욱 나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날들을 채찍질한 원동력이었는데 이것을 멈추라는 건, 삶의 원동력 중 하나를 거두라는 의미가 된다.


 상처받은 이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당신은 아마 행복하고 구김 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쉽게 그런 말을 하는 걸 지도. 용서를 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는 말을. 

 그런 분들은 앞으로도 그런 핑크 빛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고, 본인 기준으로 타인이 완전 무결하기를 종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세상은 어두운 곳도 있고 엉망진창 구겨진 곳도 있다. 세상 속에서 다양한 삶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살면 된다.

 저런 사람도 있다. 저런 인생도 있다. 그렇구나.


 끝내 내가 망가지거나 다쳐도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내 마음, 내 인생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내뱉는 제안들은 다시 상처가 된다.


 사랑만큼 미움이라는 것도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다. 용서만이 우리 감정의 종착지는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용서 없이 무겁게 살아도 상관없다.

 누군가는 괴로움을 짊어진 채 나에게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미워하는 마음으로 평생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저는 피해자로 남겠어요.


 나에게 용서하라 마라 지적하지 말고 본인의 인생을 멋지고 올바르게 잘 사시길 바랍니다. 저는 음습하고 어두운 인생을 안고 갈게요.


 충분히 화를 내고 분노한 뒤 마음의 찌꺼기를 용서를 통해 흘려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흐른다고 모든 것이 흐려진다는 건 가해자의 말이다.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그 상처는 없어지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피해자의 자유고, 그 일을 피할 수 없었던 나약한 자신을 원망하며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니 제3자가 용서를 제안한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

 우리는 똑같이 가해하지 않지만 기억하는 것으로 이 복수를 유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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