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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02. 2023

19.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병은 아니잖아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관계를 맺고 교류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진리라고 하지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일까?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삶일까?

 나는 여행도 싫다. 사람도 싫다. 이게 정말 제정신인 사람인가 싶지만. 의외로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필히 집 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직업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다양한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미팅이나 전화통화를 하며 외근을 나가서 거래처 사람을 직접 만나기까지 해야 하는 직업이다. 내향인으로써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밝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대화를 한다. 심지어 꽤 다양한 주제로 말하기도 잘하는 편이어서 사람들이 내가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내향인의 조건은 남들이 판단하기보다 스스로 느끼기에 사람들과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이 무리 없어 보여 심지어 굉장히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다. 같은 맥락으로 주말에 긴 외출 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외출은 늘 큰 결심으로 도전하게 된다. 사람이 없는 시간을 선택하게 되고 사람이 많은 장소를 갈 때는 빠르게 일을 마치고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효율적 동선을 고려한다.

 

 이 세상에 타인들이 있기에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으며 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은 혜택과 기여하는 바를 생각하면 다른 이들의 존재를 소중하고 귀하게 연결해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나는 태생자체가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낮고 예민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공간에 가는 것만으로도 모든 에너지를 뺏긴다.

 그리고 남은 하루는 오로지 쉬거나 충전하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온 후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친 나를 달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으로 삶이 흘러가버리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좀 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외출과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삼가고, 조용히 집에서 책 읽기와 글쓰기, 좋아하는 운동하기나 고양이 바라보기로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들을 채우고 싶다.

 아무 일 없는 주말, 창가에 앉아 고양이를 품에 안고 책 읽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이다.

 부교감 상태에서 호흡은 천천히 그리고 깊이 쉬어지며 햇살 아래에서 온몸이 편안하게 늘어지는 느낌. 배고프거나 목마르지도 않고 계속 이 시간 속에 있고 싶은 평화의 시간.

 아~ 정말 요가나 명상조차 필요 없는 이 느낌 정말 사랑한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딱히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타인이지만 지하철이나 길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뺏기고, 업무 상 마찰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과 실랑이를 끝낸 하루 뒤에는 나다운 생활을 이어갈 수가 없다. 나는 굉장히 정적인 생활을 원하지만 세상에 들어갔다가 쑤욱 빠져나온 뒤 집에 돌아오면, 엄청나게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있다.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집중 하면서도 몰입하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긴장하고 예민해진 나를 달래고 쉬느라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단 1분도 살아낼 수가 없다.


 무슨 외출 한번, 출근 한 번으로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는 그렇게 된다. 극심한 방전이.

 한편으론 나도 무뎌지고 싶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무뎌지길 바라진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삶을 대하는 날카로움이 사라질 테니까.


 지금이야 열심히 사회생활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 직장인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진심을 다해 바라는 것은 세상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는다면 나는 1년 내내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고서는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렇게 아껴놓은 나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하루 24시간 전체를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채워가고 싶다.

 저게 무슨 인생이냐 싶겠지만,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냥 세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고 싶은.


 이런 예민성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우리 같은 내향인들이 매일아침 어떤 각오로 출근과 등교를 위해 세상에 나오는지를.

 그러니까 제발 회식은 음. 왜 자꾸 회식을 하자는 거죠? 출근도 겨우 하는 판인데...

 


 타인이 필요한 순간을 생각해 봤다. 타인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이라는 것이 필요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나는 고민이 있다고 털어놓는 것이 속 시원하지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온다. 순간적으로 예측 못한 개인사 질문을 받을 때 대체로 거짓말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아픈 이야기들을 꺼낼 때면 몹시 불안하고 불편하다.

 약점 잡힌 느낌? 사실 정작 상대편은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사회생활에서 사이가 가까워지면 나를 드러내야 한다. 철벽 치기가 심할 때 상대편이 느낄 서운함을 알기에 최대한 거리 두기를 하고 싶지만 나 혼자 멈춰있다고 상대편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거리를 둬야겠다.

 나는 딱히 누구에게 털어놓는다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훨씬 편하다.


 사회생활 20년 가까이한 중년이 되어도 이 상태인 것을 보면, 이 기질은 바꿀 수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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