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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03. 2023

20.냉장고에 버리기?

<여보 그만버려. 냉장고는 쓰레기통이 아니잖아.>


 요즘 음식들은 1인분의 양이 많다. 모든 생활을 배달음식으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음식이 남게 되는 일이 꽤 많다. 그렇게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들어간다. 냉장고로 들어간 음식은 며칠동안 내 차지가 된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있다. 나는 육식을 안하기 때문에 내가 못먹는 고기베이스의 음식들은 냉장고에 들어간다고 한들 내가 처리할수는 없다. 결국 남은 배달음식은 남편이 먹어야하지만 남편은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은 다시는 먹지 못한다. 그렇게 냉장고로 들어간 음식들은 결국엔 버려지게 된다.


 음식이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상하게 만들어서 버리면 멀쩡할때 버릴때 보다는 죄책감이 덜한 기분은 알지만, 그것을 치우는 사람으로써 굉장히 곤혹스럽다.

 애초에 내가 못먹는 메뉴를 혼자 여러개 욕심내더니 결국은 또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로 버린다. 냉장고에 넣으면서 지금 당장 음식을 쓰레기화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게된다. 그러나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다는 것은 쓰레기통으로 보내는 시기만 늦출뿐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냉장고에 상한 음식을 버리면 박테리아가 번식한다. 냉장고 속에서는 모든 생물의 활동이 멈춘다는 착각을 버려야한다.

 멀쩡할때 버리나 상해서 버리나 결국은 버림으로써 끝나는 일이다. 결코 다시 먹게 되는 일이 없다.


 1인분 양도 많은데 대체 왜 여러개를 시키는것인지 알수가 없다. 이미 최소 배달금액도 넘었는데. 오늘도 저 남자 남길줄 알았다. 결국엔 버릴거면서 냉장고로 음식을 넣으러 간다.

 남편이 남겨서 냉장로고 직행시킨 음식 정리를 하니 쓰레기봉투 하나 가득채웠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음식을 많이 시키느라 돈 쓰고 그걸 버리느라 돈 쓰고 게다가 그것을 버리러 가는 부인의 노동력까지 쓰니 정말 이런 비효율이 있을 수가 없다.

 화내봤자 무엇하리?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을.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면 지금 난 계단을 오르내리며 칼로리를 소비했다는 것.


 내가 음식을 먹을때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은 날은 일년중에 며칠없다. 대체로 조금 적당한 선에서 식사를 끝내고 싶은데 배달 음식을 시키면 그 양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양도 많지만 추가 옵션을 선택하지 않기가 정말 쉽지 않다. 떡볶이를 시켰는데 볶음밥도 먹고 싶다면 굉장한 과식을 하게된다.

 남이 만들어준 음식과 그것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편리함은 감사하지만 그로부터 비롯되는 포장 쓰레기와 남은 음식 쓰레기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다고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할 시간도 없지만 2인 가정에서 그 재료를 살뜰히 다 쓰기란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게 재료의 폐기율을 줄이기 위해 어떤 메뉴를 준비할지 고민할 여유도 없을 뿐더러 다른 일에 그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 생활의 효율이다. 주부로써의 모든 활동을 내려 놓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공적인 일에만 내 시간을 쓰다보니 가사는 뒷전이긴하다. 물론 남편도 마찬가지라 집 상태는 대학교 자취생 2인이 동거하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서 누굴 초대하기도 남사스럽다.


 우리 남편은 왜 집안 일을 저토록 방치하는가에 분노할 필요는 없다. 그냥 같이 안하면 된다. 집이 조금 쓰레기통 같지만 우리는 화목하게 잘 지낸다. 집이 아주 청결하지만 사이가 나쁜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다.

 어차피 내가 잔소리를 해봤자 내 성에 차게 해줄리도 없다. 그렇다고 혼자만 노력하자니 자꾸 상대편에게 바람이 생기려고 한다. 너도 나만큼은 해주면 좋겠다는.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어서 함께 안하는 것을 선택하다보니 좀 난장판이 되긴했다.


 가끔 자다가 등 밑에서 바사삭 감자칩이 깨지기도 한다. 남편이 내 잠자리 위에서 과자를 흘리며 먹었나보다. 그저 과자를 털어내고 그냥 자면된다.

 어차피 잔소리 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라서 불필요한 짜증을 내며 내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다. 예전엔 왜 과자를 먹으면 집 바닥에 빈봉투 쓰레기를 버리는가에 대한 분노로 혼자서 3박4일 남편을 지켜보며 언제 치우나 노려본적도 있는데 결국에는 치우지도 않았고 나만 며칠동안 지옥 속을 오갔다.

 결국 항복하고 그 과자 봉투를 내손으로 버리면서 비로소 행복해졌다. 괜히 며칠동안 내 맘만 상했다. 정작 남편은 느긋하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는게 그렇게 얄미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이걸 언제해줄까 기대심에 찼다가 원망으로 바뀌기전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건 내가 해버려서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것들만 남편에게 부탁하는 걸로 내 정신적인 에너지를 아끼기로했다. 남에게 잔소리하고 짜증내는 시간에 그냥 내가 해버리는 편이 효율이다.

 싸움없이 무탈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비결 중에 하나는, 대체로 남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내 성격 덕분이기도 하다. 남에게 뭘 믿고 맡기지도 못하기도 하지만 뭔가 기대심리 자체가 아예없다. 이게 육아가 이어졌다면 말이 달라졌겠지만, 우리 성격상 자녀양육이 어려움을 진작 깨닫고 그저 둘이 그리고 각자 잘 사는 것으로 합의됐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냉장고 뿐만 아니라 집안 청소 상태도 거의 쓰레기통과 다를바 없긴하다. 그러나 우리 사이의 평화를 위해 이 정도 더러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집에 누구도 초대할 수 없음을 양해바란다.



 아무리 마음을 너그러이 가져도 같이 사는 사람에게 불만이 안 생길수가 없다. 그러나 화를 내고 싶은 순간에 생각을 고쳐먹는다. 분노를 해봤자 남는 것도 없으니까 그 에너지를 효율적인데 써보자. 그래서 화가 나면 그 에너지를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면서 좋은 곳에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 사실 화를 내 봤자 서로 남는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있다. 화를 낸다고 해결이 될 일이면 화를 내면 되겠지만 그렇게 해서 잘 풀리는 사례를 본적이 없다.

 남편과는 그래서 전혀 다툼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평화롭게 사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 방법이 별다를게 없다. 화낼 시간도 없지만, 화낼 에너지를 내가 더 잘 되는 것에 투자할 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남이 나의 기대치를 충족해주길 바라는 것이 크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남이 달라질리가 없다. 그래서 그런 화내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남을 원망할 시간만 아껴도 우리는 충분히 더 나아지고 성장할 수 있다.

 그저 화남-> 그래서 남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내가 더 성장하자는 생각으로 치환하는데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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