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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08. 2023

21.부지런한 내가 더 사랑스러운 이유

<빈둥대는 것을 휴식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주말아침, 나는 늦잠을 자고 싶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눈을 뜨지 않으면 하루의 리듬을 망칠 것을 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골프연습장으로 향한다.

 늘 골프는 너무너무 치기 싫은 상태이다. 잘 치지도 못하지만, 혼자 스크린 앞에서 골프시뮬레이션 연습을 하는 게 그렇게 재밌을 리가 없다.(상당히 꾸준히 쳐서 다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줄 안다.)


 주말이라도 느긋하게 늦잠도 자고, 해야 할 과업에서 벗어나 편하게 지내면 좋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그런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참 잘 쉬었다는 느낌보다 하루를 허비한 듯한 후회스러운 감정 때문에 꾸물댈 시간이 없다.


 어떤 숙제를 미루고 느슨하게 보낸 하루 끝에 느껴지는 절망이 너무 커서, 귀찮은 감정을 이겨내고 움직이는 나의 동력이 된다.

 사실 뭐가 맞는지 모르지만, 그런 빼곡한 하루를 보내는 시간 중에는 즐겁다기보다는 대체로 힘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그렇게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면 만족스러운 감정이 든다. 과정의 기쁨을 버리고 결과의 기쁨만을 중시하며 사는 삶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촘촘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피곤하긴 하지만 하루의 끝뿐만 아니라 인생의 시간으로 봤을 때도 늘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만족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긴 하다.


 순간이 즐겁고 소중한 적은 전혀 없었을까? 어떤 일을 해나가는 과정은 무조건 괴로움의 연속뿐일까?


 대체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나 귀찮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미루면서 현재 상태에 머무는 것을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금 일어나서 귀찮고 하기 싫은 일에 착수하는 감정의 에너지 크기는, 미루고 미룬 뒤 그 일을 해야 할 때 드는 정신적 에너지 보다 훨씬 작다. 

 미룬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시간의 촉박함,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미루는 동안 상상으로 일의 크기를 확대해석한 부담감까지 더해져 훨씬 더 힘겹게 느껴지고 큰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등 떠밀려 억지로 하게 되면 이상하게 만족감조차 굉장히 낮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때 바로 시작해 보면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고, 심지어 어떤 때는 그 과정을 즐기게도 된다. 미리 끝냈을 때 여유로운 감정과 만족까지 더해지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나에 대한 믿음과 애정도 증가하니 자존감이 높아질 수도 있다. 뭐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는 만족스러운 감정으로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


 싫었는데 일단 해보면 꽤 즐기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이건 몰입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미 몸이 시작하고 있는 상태에서 하고 싶다 하기 싫다는 감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그 일을 해내는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재미없고 싫은 일인데 하다 보면 몰입이 되고 재미가 생기기도 한다.

이건 참 신기한 심리상태이다. 미룬 일을 촉박해서 겨우 해낼 때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서 주말 아침, 골프 연습을 하러 가기가 귀찮지만 끝내고 나오면서 무척 만족스러운 기분을 알기에, 늦잠을 거부하고 꼬박꼬박 연습장으로 향한다. (가끔 골프채와 물아일체를 하여 엄청나게 몰입하고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을 해냈을 때 보다 싫어하는 일을 끝냈을 때 오는 만족이 더 큰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하기 싫은 일도 일단 해보면 그 일을 언젠가는 끝내게 되고, 이후에 내 감정에 남은 기분은 상쾌함과 해냄이라는 긍정적인 마음만 남아있다.


 이런 여러 차례의 만족스러운 감정을 알게 되면, 나를 다스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만은 아니게 된다. 

 아무리 어렵고 귀찮은 과업도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며 미루고 안 해서 지금 편한 것보다 해낸 뒤 나중에 얻게 되는 만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 일을 미루고 안 한다고 정신이 아주 평온한 것은 아니다. 그게 계속 머릿속에 숙제처럼 있어서 몸은 쉬는데 마음은 부담감 속에 이미 지쳐갈지도 모른다. 한 거 없이 피곤하다면 자신이 뭔가를 계속 미루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해야 할 것은 일단 해치워버리는 것이 이후 정신 상태를 생각했을 때 현명한 선택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는,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이 아니라 성실하게 모든 것을 해내는 모습일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이 원하는 모습은 여유 있고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그런 하루를 보냈다가는 상실감이 생길 것 같다면 그냥 뭐든 시작해 보는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내가 원하는 생활이 모순이라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대체로 나는 내가 되고 모습을 통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하루를 선택하곤 한다. 

 사실 감정이라는 것이 흘러가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늘 여유롭게 하루를 아무 일 없이 흘려보냈다면 편안한 기분이 들 수는 있겠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에 남은 감정의 결과는 불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시간들로 하루를 채우게 되면, 그것을 하는 동안의 귀찮고 괴로운 감정들은 사라지고, 하루 끝에 남은 감정은 보람과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다.

 나는 이런 결과주의 적인 감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순간에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선택한다. 


 편하게 빈둥대고 보낸 하루가 만족스러웠다면 그렇게 쉬면서 보낼 테지만, 그런 하루를 보내는 나에 대한 한심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서둘러 움직여서 집밖으로 나간다.

 꾸물대며 할 일을 미루는 상황이 올 때는 장소를 이동하는 것만 한 게 없다.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 가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게으른 감정에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그렇다고 1년 365일, 평생을 숙제에 쫓기듯 살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긴 하다. 

 그런데 진짜 휴식은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후련해진 정신 상태에서야 온전히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휴식이 무척 중요하긴 하지만, 인생의 길이로 봤을 때 많은 시간들은 중요한 것들로 채워나감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 만족스럽고 풍성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해봐야 한다. 이것이 휴식인지 어떤 것을 보류하고 미룬 채 빈둥대는 상황인지.



 그래서 집과 일터가 하나인 사람은 보통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장소에 계속 머물면서 자신과 싸우며 행동을 전환해 가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집과 일터를 구분하는 것에서 일의 효율을 찾기도 하며, 멀쩡하게 집을 놔두고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를 찾아가 공부를 한다.


 내가 나를 어떻게 통제하고 다스릴지 모르겠다 싶으면, 여러 가지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로 이동해 보는 것이 좋다. 문제는 그게 너무 귀찮아서 그 장소에 이동하는 것조차 거부한다면 정말 답이 없다.


 우리가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서 그 장소에 간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90%는 완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전 내 수업에 늘 결석하거나 줌(zoom)으로만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에게 해준 얘기가 있었다.

 "수업시간에 와서 다 이해 못 하고 까먹어도 좋다. 그러나 이 장소에 온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90% 이상은 얻고 간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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