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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25. 2023

22.위로의 말씀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

<네 힘내라는 말엔 전혀 진심이 없어 힘 빠진다고>


 

T형 인간이지만, 사실 나도 진심을 담은 위로와 응원을 좋아한다.

 대개 진심이 없고 사회생활에서 으레 앵무새처럼 하는 말이기에 그다지 의미 부여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말들은 딱히 나에게 힘을 주거나 내게 필요로 하는 메시지라 생각지 않기 때문.


 T형 인간은 공감보다 팩트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인간이 로봇도 아니고 T라고 공감과 소통을 무조건 혐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F형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공감과 위로 따뜻한 말을 중시하지만 T라면? 

 공감이 필요하다면, 내게 있어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가 아닌 무조건 진짜여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인간에게 공감이 필요한 건 F든 T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만 예쁘게 포장한 진심 없는 공감의 말은 불필요하게 여길 뿐이다. 그런 말을 해줄 바에야 그냥 침묵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서로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 아닐까?


 세상 모든 T를 다 알 수 없기에,

 내 기준에서만 생각해 보면 입에 발린 위로의 말씀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심 어린 공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나를 속속들이 알기 힘드니 타인 입장에서도 진심 어린 공감을 하기 힘든 건 안다. 그래서 대체로 바라지도 않는다.

 내 삶의 기준, 직장 내의 관계나 생활의 상황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은 남편 밖에 없기에 남편 외엔 아무도 나에게 진심 어린 공감을 하는 것이 어렵다. 우리 남편도 감정으로 아는 것이 아닌 실제 팩트(사건)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 편이 나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


 주위에 능숙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진심 없이 관계를 위한 거짓 공감을 남발할 바에야 팩트를 알려주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나는 위로보다는 대안과 개선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세상살이의 위로의 메시지는 나에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그래서 선동당할 염려는 전혀 없는 성향이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 대충 마무리로 하는 '화이팅!' '힘내!' 라는 말은 오히려 힘 빠진다. 난 관심 없고 니 인생 네가 잘 살라는 말처럼 대화철벽으로 들리는 건 꼬인 내 심상일까? 

 그럴 때 나 역시 철벽 고마움을 표한다.

“고생하세요.”(인생살이 고생스러우라는 기도인가?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 중. 가는 말=오는 말 동기화의 법칙이라.)

”수고하세요.“(진심없이, 네 인생 수고나 하면서 너도 대충 지내라는 말인가. 윗분께 이 말 쓸 때 난감하긴 함. 대략 서로 할 말 없어 내뱉는 위로문구.)


 껍질밖에 없는 공감 메시지는 노진심을 담아 핑퐁을 치고 있다. 정말 불필요한 정신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에 생각 없이 대체로 아무 따뜻한 메시지들을 막 내뱉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말들이 하도 남발되다 보니 진짜 알맹이 있는 메시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그런 말들에 어떤 감흥도 받을 수 없다. 그런 진심 없는 공감의 말대신 팩트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


 ‘빈말이라도 해줘?”

 가까운 이가 해주는 빈말은 더 큰 상처가 된다. 남들이야 나를 모르고 관심 없으니 공적인 관계로 아무 말을 내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가까운 사이에 참견은 하고 싶지만, 내 사정 전혀 관심도 없고 귀찮고 골치 아파서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저 '힘내!'라는 영혼 없는 응원은 오히려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런 진심 없는 위로는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


“네가 예민해서 그렇게 피곤하게 느끼는 거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유난 떨지 말고 제발 생각 단순히 하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대범하게 살아라. 화이팅!”

 내 탓으로 돌리는 위로의 말씀 같달까? 

 저렇게 말하면 너무 서운하잖아. 차라리 모른 척 관심 안 가져주면 좋겠다.


 그럼 어쩌라는 것이냐고?

 딱히 위로도 공감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 

 차라리 같이 욕이나 실컷 해주면 좋겠다. 누군가 힘들 때는 응원보다 분노를 공유하는 편이 낫다. 그게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어설픈 위로를 전혀 안 하는 남편의 무심한 태도가 참으로 맘에 든다. 앞으로도 진심 없이 대충 하는 응원은 필요도 없고 영영 안 해주면 좋겠다. 다행히 앞으로도 안 할 성격이다.

 나도 아주 콜드한 인간이지만, 남편 역시 정말 콜드하다.


 인간관계의 모든 것에서 실용적 목적을 따질 수는 없지만 진심 없는 빈말을 듣는 것에 대한 분노는 나에게만 있는 걸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 분노는 더 커진다.


나는 빈말을 못하기도 하지만 빈말 듣는 것이 너무 싫다 못해 분노스럽다.


 내 삶에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도 사실 타인의 말이 전혀 중요했던 적이 없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이 중요했고 내가 풀어나가야만 모든 일은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내가 겪는 문제는 내 손으로 정리해야 하고 누구도 대신 위로해 줄 수도, 해결해 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남이 대신 밥 먹어 준다고 내가 배부를 리 없고, 남이 대신 화장실 가준다고 내 속이 시원할리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고 말의 힘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속없는 위로는 천냥빚을 갚아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내게 진정 필요한 건 공감과 위로보다는 현실적인 솔루션을 바랄 뿐이며, 

 그것도 힘들다면 같이 욕하고 분노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인간미 있다.



차라리!

돌직구가 필요해!

배려한다고 돌려 말하다가 결국은 너무 둥글게 서로 오해하는 상황만 벌어졌다.


 작년, 남편과 H호텔 테판에 가서 식사를 했다. 

 우리는 기본 코스메뉴를 각각 시키고 추가 메뉴로 이곳의 시그니처 파피요트를 시켰다. 이건 오래 걸리는 메뉴에다 코스 후반부 메인과 함께 나와야 하기에 미리 주문을 했다.


 그런데 메인디쉬를 먹어도 파피요트는 나오지 않았다. 담당하는 서버를 불러 확인을 했더니 주문만 받고 주방에 오더를 넣지 않은 것이다. 괜찮다 그럴 수 있지.(사실 호텔에서 이런 일은 처음. 아마 자기들도 비상이었을 터)


 우리 앞에서 요리를 해주고 있던 쉐프는 당황스러운 눈빛을 하고 성급히 메인 주방(카운터 주방이 아닌 뒷 주방)으로 달려가시는 것을 보았다.


 쉐프님이 뒷주방으로 사라진 뒤 담당 서버가 나와 다시 한번 추가 메뉴 확인 및 웨이팅 안내를 받았다.

“주문하신 파피요트는 지금 조리가 들어가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나는 당연히 시그니처 메뉴인 그것을 먹으러 온 것이므로

“네 괜찮습니다.”(심지어 고맙고 미안한 미소까지 지어 보임)

그때 느꼈어야 했는데.. 서버는 엄청 당황한 표정을 하고 주방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쉐프님이 주방에서 나와 카운터에서 우리 디저트를 준비해 주셨다.

응? 뭐지 파피요트 시간 때문에 디저트를 먼저 만드시나 하는데 디저트가 완성되었다. 메인을 안 먹었는데 왜 디저트를 주지?? 싶었지만, 그냥 이런 일류 호텔에서 실수할리 없고 이미 디들 너무 당황했으니 재촉하지 말자 싶어 그냥 디저트를 먹었다.


 그리고 거의 다 먹어감에도 파피요트가 나오지 않고 음료가 제공되길래 그제야 모든 것이 취소되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쉐프님, 오늘은 파피요트가 안되나 봐요?"


쉐프님은 다시 한번 당황하시며 대답하셨다.

“아뇨, 되는데 시간이 걸려서.”


나온다는 것으로 난 이해를 했다. 기다리라는 건가?

"아~ 네. 저흰 괜찮아요."

????

????

순간의 정적. 나는 다시 물었다.

"안되는 거죠?"

"시간이 걸리는 메뉴라."

이 대화는 상당히 젠틀하게 진행되었다. (서로 의중을 숨긴 채 교양 있게 거절 동사와 뒷말을 생략한 게 문제다. 호텔식 화법은 최대한 거절을 긍정적으로 완화하여 표현하는 것에 있어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아오~ 이쯤에서 돌직구 메시지가 필요했는데 워낙에 서로 말 조심하며 품격과 교양있는 화법을 사용하다 보니 소통의 오류가 생겼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 스스로도 고구마 답답.

 교양 있게 예의 차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할 말 못 하고 서로 둥글게 둥글게 에둘러 말하는 대화법.

 직접적인 요구도, 직접적인 거절도 하지 않은 예의 차리기용 둥글둥글한 대화.


“아 그럼 오늘은 안 되는 거네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다시 한번 용기 내어 확인. 마지막 디저트 음료를 마시는 중이었다. 안되면 안 된다를 안내받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왜 말씀 없이 안 주시나 궁금했다. 나는 계속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


"아 그게 아니라 취소한다고 하셔서."

"네? 취소가 아니라 괜찮다고 했는데."


 "시간 좀 걸리는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네 괜찮아요." 말고 "네!! 준비해 주세요. 기다릴 수 있어요."라고 했어야 헸는데.


 이미 주문을 놓쳐 멘탈나간 서버는 내가 무슨 말을 했어도 취소라고 이미 속단하며 서버&쉐프를 똥개훈련 시키는 못된 손님이라 생각했을지도 ㅠㅠ(만들라 했다가 취소하라 했다가. 그런 대화는 전혀 오가지 않았지만 상황이 너무나 가시방석이 되었다.)

 나는 그런 갑질할 위인이 못된다.


 서로 진상을 파악하고 나서야 중간 소통의 오류를 안타까워했다. 쉐프님에게 많이 놀라셨겠다고 위로도 해드렸다.


돌려 말하지 말고 직관적으로 꽂아 줄걸. 지나친 배려의 대화법은 오히려 오해를 조장했다.

서로 예의 차린다고 망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완전 하나도 안 됐다.


 그런데 한국식 화법에서 "네. 괜찮아요."가 대체 왜 거절로 이해가 됐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 서버는 그날 점장님께 혼났을까 봐 맘이 쓰인다. 저 파피요트 안 먹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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