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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29. 2023

23.화낼 시간에 내 할 거나하자

<인생에 화낼 시간만 아껴도 매해 남들보다 잘나져>


 남들보다 숨은 내공, 자기만의 무기가 많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화낼 시간에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사람들이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기에 수많은 마찰과 잡음은 피할 수가 없다. 타인을 통해 생기는 분노는 회사뿐 아니라 전혀 나와 연고도 없는 길가는 사람들조차 포함이다.

 당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 부모, 자식, 연인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많은 정신적인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수많은 글에서 누누이 하는 얘긴데 우리는 타인을 바꿀 수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말도 잘하고, 감정조절을 하며 차분히 설득도 잘하고, 심지어 핵심을 글로도 잘 정리할 수 있는 나조차도 나의 말이나 글을 통해 남편을 단 1%도 바꿀 수 없었다. 

 

 결혼 생활 대부분 싸움이나 마찰 없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화내며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내 기본 철학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대체로 화를 거의 안 내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 친정 엄마 역시 평생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치거나 화를 내거나, 당연히 욕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보살님인 줄 알았다. 늘 평온하고 인자한 스타일이었다.(과거라서 상당히 미화되긴 했다. 지금 객관적으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전혀 아님)


 다행히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유전자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불같은 아버지 유전자까지 옮겨와 내 안에서 불이 난걸 스스로 물을 끼얹어 끄고, 마음속에서 셀프 방화와 진화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굉장히 평온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사실 나는 화를 내면 몸이 너무 아프다. 근육과 뼈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오며 속이 울렁거리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정신적인 화는 결국 육체적인 아픔으로 이어져 앓아눕는다. 화를 내는 것은 나에게 굉장한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그래서 결국 화내봐야 나에게 이익이 없다는 걸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살아보니 딱히 화를 낸다고 아무것도 인생에서 개선되지 않는다는 진리!

내가 화를 낸다 해서 타인이 깊이 반성하거나 나를 위해 바뀌어주지 않는다. 분노에 따라 내 몸상해, 마음 상해 그냥 나만 손해일뿐.(화는 안내지만 그래도 설득은 자주 하는 편임)


 나라고 왜 화를 안 내고 싶겠는가. 

 나처럼 예민한 여자는 세상 모든 것이 분노포인트이다. 그럴 때 대체로 화를 내기보다 내가 할 일에 집중할 뿐이다. 어릴 때는 화가 나면 공부를 했다. 이건 너무 좋은 습관이 되어 인생 전체로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화가 나도 그 분노 속에 메몰 되어 있지 않으려고 한다. 그 감정을 곱씹거나 분노에 빠져있기보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이어갈 뿐이다.

 직장생활에서 동료들의 갑질이나 괴롭힘 속에서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일을 묵묵히 잘해 나가면 언젠가 그 괴롭힘이나 오해는 잘 풀리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미덕은 업무 능력일 뿐이다. 


 부부 싸움이 없으니 우리 남편이 아주아주 인자한 사람이어서 가능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우리 남편은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게다가 보통 남자들보다 예민하고 짜증이 많다. 그러면 이런 관계에서 안 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남편의 짜증에 반응을 안 하면 된다. 

 

 한 공간에서 상대편의 의미 없는 짜증과 욕은 상대방에게 전이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어떤 남편의 분노도 나에게 화를 유발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한 귀로 그 소리들을 흘려보낸 뒤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인생에 화내는 시간만 아껴도 매해 새로워지고 달라질 수 있다. 


 화의 에너지는 무척 크다.

 그것을 바뀌지 않을 상대편에게 낭비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나에게 쓰면 된다.


 남편의 분노는 대게 별거 아니다. 거실을 걷다가 의자에 부딪혀 허공에 욕을 내뱉거나, 고양이 장난감을 실수로 밟아 화가 나거나. 부인으로서 바람은 어차피 본인이 실수한 거니까 아프지만 그러려니 조용히 혼자 회복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만, 꼭 입 밖으로 짜증과 욕설을 내뱉는다. 그 소리를 들을 상대편 기분을 왜 함께 잡치게 할까 싶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도 타인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위는 사소한 예이지만 대체로 10년 이상 대부분 부부들이 겪는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나는 일관되게 나를 위해 정신을 모아 위기를 이겨냈다.)


 이런 쓸데없는 걸로 싸우지 말고 한 귀를 닫고 자신에게 집중해 보자.

 남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은 이번 생에 절대로 일어날 일은 없으니, 헛된 망상은 거두어들이고 일단 나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몰입하면 좋다.


 그렇게 하면 세상 모든 장애물과 시련 앞에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공을 쌓아갈 수 있다. 그렇게 속이 단단해지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나만의 무기나 취미가 생길 수 있다.


 상대편이 아무리 미친 깨춤을 추어도, 화내지 않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에 몰입을 해보자.

 타인에게 불필요한 화를 내어봤자, 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함께 화를 내며 싸운 상대편도 화만 느낄 뿐 행동은 평생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그 관계만 무너질 뿐이다. 그러니 화라는 것이 결국 서로에게 좋을게 전혀 없다.


 이 세상의 화와 짜증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저 나에게 집중하며 살면 된다.

 그래서 대체로 타인은 나에게 화를 돋굴 수 없다. 그래봐야 나는 더 열심히 나를 갈고 닦을뿐..더 나아져갈뿐.


 그저 멋지게 배운 사람답게 타인을 향해 되돌릴 수 없는 말로 화내지 말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에너지의 방향을 나에게 틀어보면 좋겠다.

 


 세상 힘든 일도 안 겪어본 얼굴을 하고 이런 말을 속 편하게 하는 것 같아 보일까 봐 지금까지 혼자만 간직한 이야기를 하나 풀고자 한다. 자세히 바라보면 자신만의 진흙탕이 없는 인생은 없다.

 

 어릴 때 우리 아버지는 주폭이 정말 심했다. 

 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는 작은 골목길 주차된 차 옆에 앉아 가로등에 책을 비춰 공부를 했다. 현실판 형설지공이라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있으면 자꾸 경비아저씨가 집으로 인도했다. 저는 집에 못 들어간다구요ㅠㅠ)

 

 술을 먹지 않을 때는 꽤 괜찮은 아버지였다. 공부할 수 있도록 티브이도 틀지 않고, 발소리가 안 나도록 발끝을 들고 조용히 다니셨다. 내 방은 공주님 핑크방으로 꾸며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과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남들 보기 유복하고 멀쩡한 집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책, CD, 만화용품들을 잔뜩 구입할 수 있었고 친구들에게도 잘 빌려주어서 인기만점의 집 좀 살아 보이는 여고생이었다. 현실은 주폭에 시달려 집에 못 들어가고 길에서 밤을 새우고 그대로 학교로 가는 불쌍한 청소년이었지만.

 

 가끔 친구들이 왜 내 교복이 그렇게 꼬질해 보이는지 물었지만, 이유를 말하기 힘들었다. 가정폭력 집안의 딸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게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김 없이 살아온 것처럼 보이고 싶지만, 그런 가정을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피해자라는 타이틀조차 내 죄인 것 마냥 부끄럽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화내고 분노하며 나를 망가트릴지, 아니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에 몰입해야 할지.

 나는 당연히 학생으로서 해야 할 공부에 집중했다. 한 겨울에는 손이 너무 시려워 길가에서 수학문제를 풀 수도 없어 암기과목 위주로 공부했던 것이 기억난다. 겁이 많은 소녀가 주차된 차 뒤에 몸을 숨기며, 한겨울 덜덜 떨며 가로등 아래 책을 비춰가며 공부해야 했던 분노의 에너지는 자신에게 쓰게 된다.


 수능시험을 치고 전국 상위 1%의 성적을 얻었다. 그런데 조금 반항심에 대학 입학원서를 안 쓰고 있었더니, 부모님이 학원선생님과 이모부까지 동원해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원서를 쓰도록 했다. 그렇게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학교로 합격했다. 이러니 저러니 분노가 많아도 대체로 부모님이 원하는 이상향의 딸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화내느라 인생낭비 안 하고 내 삶을 비관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고 차갑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Why 보다 How to do를 생각한다.


 부끄러워서 처음 해보는 집안 얘기다.

 브런치에 지인들도 많은데, 이 글을 읽고 나를 뭐라고 생각할지 걱정도 되지만, 내가 폭력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내 선택이 아니며, 내 잘못도 아닌 그냥 내가 겪어내야 했던 환경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괴롭히는 직장 상사를 만나거나, 결이 안 맞는 직장동료를 만나 고생하는 것과 같은 환경요소라고 보면 좋겠다. 이게 나는 혈연이라 대놓고 미워하면 욕먹는 상황까지 감내해야 해서 괴롭긴 하지만.

 지금은 그로 인해 더 단단해지고 발전적인 어른이 되었기에 잘 된 것 아닌가?

 (위로 안 해줘도 돼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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