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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감정은 기록될 때 비로소 정리된다

by 김현아

살다 보면 마음이 복잡하게 얽히는 날이 있다.

무슨 기분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냥 어딘가 불편하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마다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남기는 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지만

속에서는 여러 감정들이

서로 부딪히며 자꾸만 무게를 만들어 낸다.


예전의 나는

이런 마음을 그냥 넘기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유도 모르고 터져버리거나,

사소한 일에 크게 흔들려

스스로도 당황한 적이 많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마음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있던 것이다.


그러다 기록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감정을 글로 옮기자

보이지 않던 무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연했던 불편함은

언어를 가진 감정이 되었고,

감정이 이름을 얻자

나는 비로소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이 조금 서운했다.”

“오늘은 이유 없이 불안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런 문장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지만

마음을 정리하게 만든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흩어진 먼지처럼 떠다니지만

기록된 감정은

한 자리에 가라앉을 수 있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건

감정을 키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작게 만든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감정일수록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글로 꺼내 놓는 순간

그 크기가 정확하게 보인다.

대부분의 감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다만 말하지 않고 쌓을 때

커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나는 기록하면서

나 자신을 오해했던 순간들을 많이 발견했다.

내가 화가 났던 게 아니라

사실은 서운했던 날이 있었고,

지쳤던 날을

괜히 예민함 탓으로 돌린 적도 있었다.

기록은 그런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다.

감정은

맞게 보아야만

맞게 다룰 수 있다.


어떤 날은

한 줄을 쓰는 것조차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오늘의 나는 그냥 복잡하다.”

이렇게만 적어도 충분하다.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해도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감정이 정리되는 과정은

항상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거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큰 결심을 하라는 부담도 없다.

그저 오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 단순한 행위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장 부드럽게 정리해 준다.


나는 이제 안다.

감정은 기록될 때

비로소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정리된 감정은

나를 흔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한 줄을 쓴다.

그 단순한 기록이

오늘의 내가 흔들리지 않게

작은 등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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