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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조한 글쓰기 Oct 05. 2015

14. 백종원씨에게 배우는 글 쓰기 마인드

막 쓰는 쉬운 글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참 쉽쥬?


2015년은 ‘쉽다의 해’로 꼽고 싶다. 이 단어에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는 이유는 어렵게 보이는 것에 대해 쉽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요즘 책 원고를 쓰면서 느낀 감정과 반성이 저 3 음절에 녹아 있기도 하다. 오늘은 ‘쉽고 아무렇게나의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글은 아무 데서나 쉽게 쓸 수 있다. 일기, 메모와 같이 비교적 간단한  글부터 책의 원고 같은 높은 완성도가 필요한 글까지 가능하다. 오늘은 이 아무 대서나 쓸 수 있는 글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는 사실 막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막 쓰는 글이란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빠르게'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막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생각 나는 대로 쓰기 때문에 글을 쓸 때의 감정에 경도될 가능성이 있다. 수필이나 감상문과 같은 말랑한 글은 되려 감정에 충실한 이때 쓰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다만 글을 쓴 다음 날 본인의 글을 읽고 '이불킥'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 점은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말랑한 글과 달리 건조한 글의 경우 감정에 지나치게 빠지게 되면 자칫 무리한 주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애인과 재즈바에 갔다고 하자. 살짝 오른 취기와 함께 흡사 완전한 자유인이 된 것 같은 분위기를 안고 화장실에 앉았다. 자 여기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건조한 주장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떨까? 거꾸로 애인과 헤어질 듯 싸우고 집에 와 누운 상태에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주장 글을 쓴다면 어떨까?


둘째. 막 쓰는 글은 두서가 없기 때문에 그 전에 써왔던 논리와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 어릴 적 하던 블록 장난감 맞추기를 생각해보자. 본인이 어떤 걸 만들겠다고 충분히 상상하고 만든 모습과 만들다가 말고를 반복했을 때 완성도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만들기의 재미는 후자가 더 재미있을 수 있겠다.  그때의 감각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셋째. 빠르게 쓰면 문장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 번역투, 주어-동사 불일치 등으로 인해 어려운 글이 쓰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읽기 쉬운 글은 그만큼 고민이 어렵게 된 글이다. 반대로 쉬운 고민은 어려운 글을 만든다. 이런 이유로 막 쓰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글은 선호하지 않는다.


이번 원고 작업은 막 쓰는 글의 새로운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필자가 글을 막 쓰게 된 환경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원고 작성 기간 : 약 한 달
원고량 :  A4용지 기준 15장
주제 : 2016년 모바일 트렌드에 대한 자유 주제 선정 후 작성
그 한 달 간 벌어진 개인사 : 결혼(신혼여행 포함), 식중독(1박 2일 입원), 와이프 입원(3박 4일)


이렇게 다사다난한 한 달 간의 이벤트로 인해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그렇다고 이유를 대기는 싫었다. 택시, 버스, 화장실, 점심시간, 자기 전, 엘리베이터 대기 중, 걸으면서 등등 닥치는 대로 썼다. 부끄럽게도 처음 출판하는 만큼 의욕적으로 글을 잘 쓰겠다는 마음에서 어떻게든 주어진 시간 내에 최소한 창피하지 않은 수준은 써야겠다로 임했다. 평소 생각하던 주제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술술 글이 써졌다. 그렇게 콩 볶듯 초고를 보내고 처음으로 출력해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엉망이다. 필자가 건조한 글 쓰기를 통해 제안했던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하지 말자던 내용으로 가득 찼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역시나 읽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다시 쓰는 마음으로 초고를 살폈다. 내 생각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지만 확실한 내 생각이었다. 따라서 잘 정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막 쓰는 글의 쓰임새는 생각을 글 쓰는 수준으로 변환하는데 있다. 정제되지 않은 내 생각이지만 그 만큼 순수한 내 생각이다. 생각은 글의 재료가 되기 마련이므로 요리는 탈고할 때 하면 되는 것이다. 막 쓰자. 주제에 대해 자체 검열하지 말고 자유롭게 막 쓰자. 쓰기 어려우면 음성 녹음도 좋다. 생각을 찾을 수 있는 어딘가에 남겨놓으면 탈고할 때 분명 도움이 된다. 어차피 쓰지 않을 내용은 버리면 되고 이상한 문장은 고치면 되지 않나? 백종원 씨가 국내에서 요리를 제일 잘해서 성공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요리를 대단치 않게 접근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대단치 않게 글쓰기 시작하자. 요리나 글쓰기나 뭐 별거 있나?


생각나는 건 막 정리하고 나중에 순서대로 정리하면 돼요.

어때요. 참~쉽쥬?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립니다. 글은 계속 쓰고 있었습니다. 브런치가 아닌 원고에 말이죠. 10월 중순 중, '모바일 트렌드 2016' 이란 이름으로 출판될 책의 한 파트를 작성했습니다. 보고서나 인터넷이 아닌 실제 책을 쓴다고 하니 힘이 들어갔는지 더욱 어려웠네요. 보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건조한 글 쓰기 - By 정연승

커버그림: tvN의 집밥 백선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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