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거인의 어깨에서 시작하자

잘 쓴 글의 생각을 따라간다.

筆寫 [필사] : 책이나 문서 따위를 베끼어 씀
剽竊 [표절] :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씀

오늘은 필사[베끼기]에 대해 살펴보자. 최근 글쓰기 강의에서 좋은 글을 베끼라는 조언이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How-to에 대한 내용은 그만큼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에 필사에 대해 보다 방법론적 접근을 하고자 한다. 여기서의 필사는 표절과는 의미가 전혀 다름을 강조하여 밝히고 시작한다.

필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배움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필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

1. 필체의 배움(예. 캘리그래피)
2. 어휘력 확장(예. 읍습하다)
3. 문맥의 디테일 및 뉘앙스
4. 글의 구성 파악

필자는 위 4가지 효과 중 특히 4. 글의 구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어떤 글이던 처음에 “어떻게 쓰지?" 란 질문이 든다. 글의 구성은 이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글의 구성을 따라가는 것은 타인의 생각 흐름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익숙하지 않은 종류의  글쓰기일수록 글의 구성을 필사하면 글의 수준을 어느 정도 급격히 높일 수 있다. 수준 높은 글쓰기의 지름길이 '좋은 글의 구성 베끼기'에 있는 것이다.

먼저  필사하기 전 좋은 글을 찾자. 여기서 좋은 글은 2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본인이 쓰고자 하는 글에 최대한 가까운 종류의 글이어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면 좋은 자기소개서를 찾자. 투자 계획서를 써야 한다면 좋은 투자 계획서를 찾자. 당장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컨설팅 제안서를 참고하는 경우를 실제로 봤다. 설득의 차원에서 컨설팅 제안과 자기 소개서가 같다는 이유였다. 맞는 말이지만 너무 멀다. 지름길로 가야 한다. 당장 써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찾아 적용해야 한다.

둘째. 결과가 검증된 글이어야 한다. 합격률이 높은 자기소개서나 상사에게 인정받았던 기획서야 한다. 좋은 글을 얻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참고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얻으면 글 쓰기의 반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확보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글의 구성을 파악해 보자. 구성 파악은 아래 5단계로  이루어진다.

1. 글 파악 -> 2. 단락 정리 -> 3. 스토리텔링 -> 4. 논리 보완 -> 5. 구조화

첫째. 좋은 글을 읽고 파악하는 단계다. 대략 읽고 내용을 습득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도만 파악하면 된다.

둘째. 단락을 정리하는 단계다. 단락은 글이나 음악, 영화 등의 이야기 진행 과정에서 내용상 일단 끊어지는 자리를 일컬으며 문단이라고도 한다. 보통 글 띄어쓰기로 표시한다. 단락 해체는 단락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는  것이다. 간단히 예로 경제 신문 기사의 단락 정리는 아래와 같다.

[단락 정리의 예]

단락 1: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각 언론 예상
단락 2: 국내 금리 정책도 이에 영향을 받을 것
단락 3: 가계 부채의 악화 우려

셋째. 스토리텔링 단계는 한 줄로 정리된 각 단락의 내용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중얼거리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예]

 "미국의 금리가 인상될 거라고 여기 저기서  이야기하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국내 금리도 영향을 받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투자한 돈이 미국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국내 금리를 올릴 수 있지. 만약 그렇게 되면 지금 집마다 빚이 많은데 이자가 더 올라갈 거야."

넷째. 스토리텔링을 통해 찾은 부족한 논리를 보완하는 단계다. 위 예에서는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투자한 돈이 미국으로 가니깐 국내 금리를 올릴 수 있지."부분이 해당 단계에 속한다. 잘 쓴 글이라 해도 스토리텔링 하다 보면 어색한 부분이 종종 보인다. 이를 보완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자. 신문 기사를 보완하면 아래와 같다.

[논리 보완의 예]

단락 1: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각 언론 예상
단락 2: 국내 금리 정책도 이에 영향을 받을 것
보완: 국내 금리가 미국 금리에 영향 받는 이유
단락 3: 가계 부채의 악화 우려

다섯째. 이를 보편적 프레임으로  구조화하는 단계이다. 내용을 빼고 구조만 발라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의 목적은 내 글에 치환시키기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다. 구조화의 예는 아래와 같다.

[구조화의 예]

단락 1: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각 언론 예상
구조화 1: 언론 인용을 통한 해외의 사건 변화 예측

단락 2: 국내 금리 정책도 이에 영향을 받을 것
구조화 2: 해외의 사건 변화가 국내 사건에 영향을 줄 것을 예상

보완: 국내 금리가 미국 금리에 영향 받는 이유
보완구조화: 해외 사건과 국내 사건의 상관 관계 설명

단락 3: 가계 부채의 악화 우려
구조화 3: 국내 사건의 변화에 따른 시사점

만약 필자가 국내 자동차 산업 시사점에 대해 쓴다고 하자. 위 예의 구조를 국내 자동차 산업에 치환하면 아래와 같은 개요를 얻을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시사점으로 치환]

단락 1: 언론 인용을 통해 해외 자동차 시장 변화 예측
단락 2: 해외 자동차 시장 변화에 따른 국내 시장 변화 예상
단락 3: 해외 자동차 시장과 국내 자동차 시장 간 상관 관계 설명
단락 4: 국내 자동차 시장 변화가 주는 사회적 시사점

좋은 글은 훌륭한 이정표이다. 이처럼 글쓴이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흡수하고 논리를 보강하고 나아가 내 것으로 체화할 수 있다. 필사를 잘하면 처음 쓰는 종류의 글이라 할 지라도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거인의 어깨에 서서 하늘을 보듯 좋은 글 위에 서서 더욱 좋은 나의 글을 쓰자.

커버그림: 니콜라 푸생의 ‘태양을 찾는 장님 오리온(Blind Orion Searching for the Rising Sun·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