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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Lapres midi Jan 08. 2023

아찔한 장바구니

거북이 배송도 가끔은 필요할 테지

가끔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다 보면 해외배송, 무료배송, 당일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새벽배송... 다음엔 어떤 배송이 생길까 궁금할 때가 있다. 총알배송과 로켓배송 중 더 빠른 배송은 뭘까? 이보다 더 빠른 배송도 가능할까? 배달하면 철가방부터 떠오르고 자장면과 치킨 정도 배달되던 어린 시절을 지나온 나에게 지금의 세상은 마치 신기루 같다. 클릭 몇 번으로 온갖 산해 진미가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시대 아닌가.      

세기 초인 2001년 2월 서울에 폭설이 내렸더랬다. 그때 녹화 시간은 다가오는데 출연진들은 도로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한 상태여서 결국 서울대로 한복판에서 퀵서비스를 불러야 했다. 당시 퀵서비스는 한 도시권 안에서 업체들이 업무상 급한 서류나 물건들을 주고받는 시스템 정도였는데 위기 시엔 슈퍼맨이 따로 없다. ‘도와줘요 슈퍼맨’ 아니고 ‘도와줘요 퀵서비스!’ 일하면서 퀵서비스를 처음 이용했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한데 우리나라의 배달문화는 그 후로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고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셧다운이 됐을 때 우리 민족은 단군 이래 다시 한번 배달의 민족으로서의 빛을 발하게 된다. 

배달은 우리나라의 상고 시대 이름으로 한자를 빌려 倍達로 적기도 한다.

     

요즘 시대에 과연 배달 안 되는 게 있을까? 게다가 배달 속도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본다. 클릭 후 몇 분 후면 띵동! 이게 기적 아니고 뭘까? 밥이 뜸도 들기 전에 진수성찬을 차려 낼 수 있는 세상인데.      

하지만 편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도 아닐 것이다. 일단 배달에 의존하다 보면 통장은 텅장이 될 수도 있고 안 그래도 게으른 나는 더더욱 게을러질 수밖 없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가끔은 집밥이란 것도 해 먹여야지 싶은데 그러기에 배달의 유혹은 너무 크다.(요리를 못하는 엄마로선 더욱 그렇다) 웬만하면 직접 장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니 종종 배달앱으로 손이 간다.      


무엇보다 길에서 배달 오토바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양가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폭설에 계속되는 영하 날씨로 도로가 빙판길이 됐다. 외출했다가 폭설을 만나 거의 기다시피 집에 들어오는 그 시각에도 트렁크?를 실은 오토바이들이 꽤 지나갔다. 사실 이런 날은 더더욱 배달을 의존할 밖에 없는데 오토바이라고 그 길이 쉬울 리 없다. 가끔 음식을 시켜놓고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엔 후회가 될 때가 있는데... 무거운 마음에 배달 메시지에 ‘천천히 오셔도 돼요’라고 남겨두긴 하지만 왠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런가 하면 빠른 배송을 위해 거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까지 아찔해진다. 음식 배달은 시간이 생명이라지만 그렇게 목숨 내놓고 달리실 필요까지야. 신호 때문에 인도에서 차도로 차도에서 인도를 넘나들며 앞다퉈 가는 모습을 보면 서커스가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비라도 오는 날엔 주차장이 미끄러워 아파트 입구까지 다 와서 넘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몸보다 음식 상태를 더 걱정하는 모습에 쓸쓸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또 배달을 안 시킬 수도 없고(배달을 안 시키면 그분들의 수입이 줄어들겠죠?) 날씨라도 궂은날이나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 시키는 건 왠지 또 도리가 아닌 것 같고. (나만 이런 생각하는 거 아니죠?) 

이럴 땐 달리는 장바구니라 할 수 있는 배달 시스템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가 싶고, 소비자들에겐 더없이 살기 편해지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 누군가는 맹추위 속에서 빙판을 달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너도나도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선 무엇이 최선일까 싶고.

  

판매자의 과열 경쟁으로 인한 빠른 배송이 소비자에게 당장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현장에서 종사하는 분들께는 초능력적인 힘을 발휘해야만 가능한 일들이란 걸 알아준다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다소 불편한 세상을 살더라도 생명과 안전이 먼저여야 서로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가뜩이나 ‘빨리빨리’란 말로 유명해진 나라가 아닌가. 이젠 좀 서로가 속도를 늦춰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유인 즉 코로나로 관광객들이 없어져서 소매치기들이 딜리버리로 업종 변경을 했기 때문이란다. 합법적으로 일하고도 돈을 벌 수 있게 되니 더 이상 도둑질은 하지 않아도 된다나? 우리나라도 배달 선진국답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향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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