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만족하는 기준치가 사회적으로 정해진 어떤 적정 수준보다 낮은 사람일 때 종종 무시당하거나 안타까운 시선을 받는 이유가 되곤 한다. 누군가에겐 별 볼일 없는 소기업에서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옮길 이유를 못 찾겠다. 그런데 사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기까지 필요한 능력도 의지도 내겐 없다. 그것을 스스로 깨달은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한쪽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한계를 정해 버린 거라고 한다. 도전은 고통스러우니까. 더 큰 회사에서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시야를 더 넓게 가질 기회를 도전해보지도 않고 나에겐 맞지 않아- 라며 포기해버린 걸까. 하지만 내가 다시 그 지긋지긋한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인 취업 시장에 날 던져둘 수 있을까. 면접 때마다 조금만 날이 선 질문에도, 아니 질문도 하기 전 날 쳐다보는 그 눈빛에조차 상처 받는 나약한 자신을 또다시 감당할 힘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더 큰 규모의 조직으로 가는 게 도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너무도 다르기에 아직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 쪽이 내겐 도전이라 확신한다.
길을 잃을 때마다 과거의 내가 한 선택을 되짚어 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 오고 식은땀이 나는 10년 전 수험 시절. 끝나지 않는 터널 같았던 시간의 끝에는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성적이 있었다. 생애 가장 규칙적인 패턴과 인내와 끈기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1년을 보낸 내게 재수할 힘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예상 리스트에 없던 학교였음에도 입학을 결정한 건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결정은 당시 막연히 예상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시야와 기회와 유의미한 시간들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비로소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맞았어. 비록 학교에서 얼마나 만족스러울지는 몰랐더라도 재수하지 않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그건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에 대해서 만큼은 비록 전부 다는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들보다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이후에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마다 그때의 결정은 더 큰 혼란을 막아 주는 길라잡이가 되었다.
내게 능력이 있다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조금 더 빨리 스스로를 파악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나를 더 많은 연봉이나 더 높은 지위로는 못 데려다주겠지만 대신 삐끗하면 떨어질 수도 있었던 고통의 굴레를 번번이 피해 갈 수 있게 해 주었고 나라는 사람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어떤 만족과 기쁨, 보람과 성취를 느끼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최근 오래도록 하고 있는 고민들, 그 시간들이 외부 요인으로 서글퍼질 때 가 많았어서.. 다시 그 마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의 글이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 사는 이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들을 내가 알고 있으니 됐다. 일단 그럼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