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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life Aug 01. 2019

아이는 엄마가 회사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여섯 살.

20년 직장생활을 끝내고 워킹맘에서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엄마가  되었다.

비가 오는 어느 일요일 저녁, 외출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와 너무 행복하다. 내일 비 오는 월요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스트레스가 없어"

그러자 뒷 자석에서 자고 있는지 알았던 딸아이가 불쑥 끼어든다.

"난 싫어!"


할머니가 등 하원 시키다가 퇴사 이후 자연스레 내가 등 하원을 시켜줄 때 좋다는 표현도 하지 않고 한 번도 "엄마 왜 회사 안 가?"라는 질문도 하지 않아서 '왜 그럴까? 아이는 내가 집에 있어서 좋지 않나' 했던 막연한 의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불쑥 나올 줄이야.


우리 부부는 놀라 잠시 눈을 마주친 후 남편이 말했다. "왜??? 엄마 집에 있으니까 좋지 않아?"

그러자 딸이 말한다. "아니 난 싫어. 왜냐믄...나 장난감이랑 맛있는 거 못 사주잖아"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혀 있었는데 남편이  그래도 사줄 수 있다고 하여도

아이는 엄마가 회사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니 그동안 엄마 회사 가지 말라고, 나랑 같이 놀자며 울었던 아이는 어디 간 거지?


아이가 엄마를 찾고 울 때마다 할머니는 "엄마가 회사에 가야 장난감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지" 하며 달랬던 걸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니...

물론 할머니가 그렇게 달랠 때 그 말이 바로 효과가 있었던 것도 아녔기에 더더욱 놀랍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외출할 일이 있어 아이와 함께 근처 상가에 나갔는데

한 카페 창에 그려진 케이크 포스터를 보고는 "엄마 이거 맛있겠다. 이거 사줘"라고 무심코 말하였고

나는 평소처럼 생각 없이 "안돼. 먹고 싶다고 다 살 순 없어"라고 말해 놓고는

곧바로 어제의 그 대화가 생각이 나서 

"아.. 그래? 그럼 우리 이거 하나만 먹을까?" 라며 아이 손을 끌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아이에게 한 입 떠주며 떠올랐다.

'아.. 내가 낚인 거 같은데'


아이는 그 케이크에 그다지 맛을 느끼지 못하여 결국 포장하여 집으로 왔다.

아이는 그냥 한 말이었고, 나는 그 말에 찔려 평소에 하지 않던 소비를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운 좋게 5년을 잘 지나왔다. 워킹맘이면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직장 어린이집에 데리고 출퇴근을 하면서 함께한 시간은 많았다. 물론 다른 워킹맘에 비해서 말이다.

한 겨울 새벽에 출근할 때에도 컴컴해진 저녁에 퇴근을 할 때에도 함께였다.


그러다가 집 근처 유치원을 보냈고 아이는 동네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였으니 어린이집에서 동네 유치원으로 옮긴 건 참으로 시기적절한 변화였다.


될 수 있으면 워킹맘으로 아이에게 죄책감 같은 건 갖지 말자 주의이긴 해도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기 싫어 병이 도질 때마다,

영상통화를 하며 엄마 보고 싶다고. 

유치원 안 가겠다고 울 때마다

'아 이 회사를 안 다닐 수도 없고...' 하는 마음이 컸었는데


이 아니 무슨 말이던가.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 하여 긴 머리 잘랐더니

긴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남자 친구도 아니고.

이제 와서 엄마는 회사 가는 게 더 좋다니.


그리고 뭔가를 좀 알고 엄마의 손이 필요 없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또 한 달, 두 달이 흐르고.


아이는 엄마의 등 하원 배웅과 마중을 받고.

하원 후에는 다른 친구들 엄마와 같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눈치다.

"아직도 엄마 회사 나가는 게 좋아?"

"아니... 엄마 있어서 좋아"

(휴우... 다행이다. 하마터면 아이 눈치 보다가 직장 나가야 할 뻔했다)




햇빛을 마음껏 받아 쑥쑥 자라는 나무같이 하루가 다르게 아이는 커간다.

까맣게 타고 무릎은 까지고 모기에 물리고 하면서도 세상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듯

있는 힘껏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에너지를 얻는다.


너의 일생에 이렇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은 너를 더더욱 튼튼히 받쳐 줄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래서 뙤약볕에 함께 나와 있더라도, 내 얼굴에 기미가 올라와도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딸을 보면서 또 하나의 인생을 알아가고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가 기억할 수 없는 순간까지 내 기억 속에 담아 둘 수 있는 시간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시간이 결코 헛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의도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다시 언젠가는 일하는 엄마가 되어 딸의 시간을 지금만큼 같이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며 지금 이 순간순간을 기억하려고 한다.






리듬 체조하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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