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멘체스터 바이 더 씨

누구에게나 겨울은 지나고 봄은 온다.

by 김유진

케네스 로너건 -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7.02.15)
누구나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으로 사는 것이 무의미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 것이다. 지옥 같은 잔인한 날들이 이어질 때는 ‘내 상황이 이렇다. 그래서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마음의 여유조차 사라진다. 위로의 한 마디도 힘이 되지 않는 시기. 그런 시간 동안은 혼자만의 깊은 동굴에서 지내게 된다. 절망의 심연 깊숙이 들어가 어둠에 둘러싸인 우울과 직면했을 때, 내 상태를 정확히 바라봤을 때, 그제 서야 조금씩 수면 위로 발버둥 치며 올라온다. 이렇게는 못 버티겠다며, 힘들다며, 나 좀 위로해달라며, 나란 사람을 좀 알아봐 달라며 소리를 낸다. 그렇게 막혔던 숨통이 터질 때, 어둠이 걷히고 실오라기 같은 빛이 동굴 안에 조금씩 스며든다. 그 빛이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눈이 부셔서 봇물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때 비로소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한층 더 성숙해진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거기까지 도달하기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행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그런 순간들의 반복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복되는 인생의 파도에 한층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다. 크고 작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인생’이라는 바다, 그 위를 항해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작품에서 ‘리(테리시 애플렉)’의 상황이 딱 그랬다. 그는 화재로 아이들을 잃고, 아내와 이별을 한다. 자신의 실수로 아이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사는 그의 삶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다른 누군가의 호감도 부담스럽고, 눈 마주침 하나도 조롱으로 느껴질 만큼 그는 많이 부서져있다. 세상에 대한 회의, 자신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그의 삶에 운명이 장난이라도 치듯이 또 하나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친형의 죽음. 그리고 친형의 아들이자, 조카인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이 되어야 하는 ‘리’. 천덕꾸러기 같은 조카 패트릭과 삼촌인 리가 동행하는 과정 초반은 삼촌 리의 절망적인 상황을 더욱 나락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조카 패트릭의 철없는 모습,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깊게 아파하지 않고 일상을 가볍게 살아가는 모습, 삼촌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짐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두는 패트릭의 모습은 지나치게 밝아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패트릭의 밝은 모습은 삼촌 리의 절망적인 상황을 더욱 어둡게 부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둘의 동행은 중반부,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역시 패트릭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그리고 삼촌 리 역시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눈물을 흘렸을 때 그 둘은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된다.

패트릭이 그렇게 사고 싶어 했던 배의 ‘모터’. 돈도 없는 그들의 형편에 ‘모터’를 사자고 조르는 모습은 그저 철없는 10대 아이의 응석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배의 모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터’는 패트릭이 아버지와 배 위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해 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심장’과 같은 역할이기도 하다. 그들이 배의 모터를 새로 사고 바다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은 그동안 힘든 나날의 상처로 멈춰있던 그들의 심장을 다시 살리는 느낌을 주었다. 모터를 재정비한다는 것은 망가진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어 바다라는 인생길로 주저 없이 뛰어듦을 의미하는 어떠한 상징 같았다.

영화의 계절적 배경은 내내 ‘겨울’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은 날이 풀리고 따뜻해지는 시기다. 시리고, 고통스럽고, 추운 계절은 지나간다. 그리고 모든 게 소생되는 따뜻한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러한 순환은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 또다시 겨울이 올지라도 우리는 분명 더욱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작년에 봤던 영화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왜 나에게만 힘든 일들이 연속적으로 다가오는가 하는 회의가 찾아올 때 보면 위로가 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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