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홀가분함
몸이 뻐근하다. 무거운 책과 서류들을 정리하고 4층에서 1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옮긴 탓이다.
사무실에서는 정보 보안 작업을 위해 보존 기한이 지난 문서를 파쇄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 파쇄 업체가 오기로 했으니 미리 정리를 시작했다.
2층 회의실 책꽂이부터, 4층 창고를 둘러보니, 연도가 지난 문서들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러 권의 책들도 많다. 연도가 지난 공문서와 사례 파일들을 골라내자 파쇄할 자료가 벽면 한쪽에 다 채워졌다.
직원들도 각자 책상을 정리한다. 나 역시 지난 몇 년간 쓴 다이어리와 상담 수첩, 책꽂이에 쌓인 출력물들을 꺼내니 A4 한 박스가 넘는다. 언제 이렇게 많은 종이들이 쌓였을까. 정리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서류를 버리며 마음도 비운다. 종이와 각종 서류들처럼 내 안에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사회적 위치와 명예, 재산과 부에 대한 기준. 남이 정해놓은 잣대를 따라가려 했던 마음들.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흔들리곤 했다.
높아지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
성과와 성취의 압박까지
내 안에 도사리는 마음들을 돌아본다.
삶에 중요한 가치를 다시 한번 붙잡는다.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물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 그것이 내가 원하는 길이다.
이런 찬양이 떠오른다.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는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은 동산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었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 기왕이면 직접 마음을 전하는 사람. 따지고 보면 평생 내가 해온 일도 이런 일이었다. 나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취약하고 아픈 사람들의 깨지고 찢어진 마음을 30년 넘게 꿰매어 왔다. 잘못된 관계는 수선하거나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쁨이나 환희보다는 고통과 아픔에 먼저 반응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참 괜찮은 어른> 이서원, 마디북, 27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