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라 글쓰기 19기] 글쓰기
고난주간의 시작이다. 주일은 종려주일로 보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을 구할 메시아가 왔다며 얼마나 흥분했을까.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행진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외친다. '호산나'의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의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왕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며칠 후 싸늘하게 돌변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기대와 오해는 잘못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왕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게 아니었다. 정권을 전복시키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목적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철저히 해석한 것이었다. 자신의 기준과 욕망에 미치지 못하자, 예수님께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그리고 심지어 죽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수님을 못 박아라!"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던 무리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외치던 것처럼 극과 극의 모습은 곳곳에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던 베드로 역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부인한다.
3년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유다 역시,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만다.
이뿐 아니다.
너밖에 없다며 사랑을 고백하던 사람이 어느 날 아는 사람과 바람피우기도 한다.
간, 쓸개 다 내어줄 것처럼 따르던 사람이 험담을 한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내 모습만 봐도 극과 극의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내 안에도 긍휼 한 마음, 따뜻한 마음도 있지만 냉정하고 매몰찬 마음도 있다.
굉장히 용기 있는 것 같지만,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겁쟁이 같은 모습도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늘어지게 게으른 모습도 있다.
업무 할 때 계획적인 부분도 있지만, 여행을 할 때는 즉흥적인 부분도 있다.
다시 처음, 예수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예수님을 환영했다가 싸늘하게 돌아서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처참했을까.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이런 말을 내뱉으셨을까.
실망과 배신감에 마음이 많이 쓰라리셨겠지.
예수님은 그 상황을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신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신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그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하는 일이라고 변론하신다.
우리도 살면서 이해하지 못할 상황을 많이 만난다.
배신이라는 큰일은 고사하고, 아주 작은 거절만 받아도 파르르 실망한다.
내가 기대한 만큼 돌려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내가 요청한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한다.
예수님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할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예수님은 배신과 모욕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우리도 변덕스럽고 상처받기 쉬운 영혼이지만, 예수님 닮은 삶을 살 수 있다.
용서와 사랑을 선택하며 살 수 있다.
직장, 가정, 관계 속에서
미움을 쌓으며 살기보다 사랑을 쌓으며 살기 원한다.
고난주간을 시작한다.
십자가를 통해 온전한 사랑의 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기간이다.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나를 못마땅해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해도
예수님 마음 기억하며 친절하게 대하기를
용서와 사랑을 선택하는 제자의 길 걸어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