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다

by 조보라


"2025년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에 감사한가?"


2025년을 마무리하며 팀원들과 팀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한 해를 돌아보며 소감을 나눈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지만, 자유롭게 나누자고 하면 한 명도 제대로 나누는 사람이 없기에, 결국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기로 한다.


소감 나누는 시간은 꽤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불편함 속에 의미를 길어 오른다.


우리는 아동학대 사례관리를 하며 학대피해아동과 가족을 만난다.

거부감 높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설득해서 협력하려고 노력한다.


큰 변화는커녕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복합적인 어려움과 문제 속에 길을 잃는다.

아주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가정 내에서 폭력, 학대가 발생하면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은 힘이 쭉 빠지면서 전의를 상실할 때도 있다.


피하고 싶고, 쉬운 길로 가고 싶어지는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지난한 아동학대 사례관리 현장이 내가 발 딛고,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할, 내가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나의 대지다.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기에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과 협력과 연대하며 헤쳐나간다.


편리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과 가족에게서 '밤톨만 한 작은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기쁘다.



"2026년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있는가?"



며칠 전,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들 여행 이야기를 꺼낸다.


L은 하와이에 가 보고 싶다고 했고, J는 유럽 여행을 꿈꾼다고 했다.

C는 포르투갈에서 꾸덕꾸덕한 에그타르트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2026년에 무엇을 해 보고 싶을까.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다. 아주 극한의 경험에 도전해 봐야 하나?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본 남극 탐험가 김영미 대장의 이야기, 무동력 요트 세계 일주도 생각난다.

이런 어마어마 도전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여행이 하나 있다.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2026년에는 할 수 있을까.


nature-3306920_1280.jpg?type=w1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dre_Grunden님의 이미지


은퇴 후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꼭 은퇴하고만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할 수 있다면 해 보는 미루지 않기!


다행히, 나에겐 5년 근속으로 주어진 2주 휴가가 있다. 진짜 소중한 순간에, 꼭 하고 싶은 일에 쓰고 싶어서 아껴두고 있다. '나 2주 휴가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휴가라고나 할까. 몇 년째 모셔두고 있는 이 휴가는 나에겐 든든한 비밀 병기다.


"나랑 산티아고 순례길 걸을래"

남편에게 툭 물었다.

"왜 그런 고생을 해야 하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 남편은 제치자.


대신 함께 걸을 동반자를 찾아야겠다.

아니면 혼자라도 떠나볼까. 하지만, 아직 혼자 걸을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


문득 생각한다. 휴양지도, 편안한 여행 코스도 있는데, 나는 왜 무거운 짐 7~ 10kg 정도를 지고 걸으려고 하는 걸까. 수영장 옆에서 여유롭게 누워만 있어도 되는 여행 대신, 왜 불편함을 선택하려는 걸까.


아마도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편리함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안락함 속에서 얻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직 내 발과 내 피부로 느껴지는 나만의 경험 말이다.



jakobsweg-747482_1280.jpg?type=w1 Pixabay로부터 입수된 xtberlin님의 이미지


불편함은 단순한 고생이 아니다. 나를 시험하고 나를 깨우는 과정이다.

무거운 배낭을 고 끝없이 길을 걸어야 한다.

잘 씻지도 못한다. 코 고는 사람들 틈에서 잠도 자야 한다.

숨이 차고 발이 아파도 계속 걸어야 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 내 한계와 마주하게 될 테다.

내 안에 균열이 일어난다. 균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로운 빛이 스며드는 틈이다. 익숙하고 편안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불편함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편안한 여행이 주는 휴식도 분명 소중하다. 때로는 그런 여행도 좋다.

하지만 불편한 여행은 값으로 치를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그 여행에서 주는 깨달음은 오래도록 내 몸에 각인되어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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