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마음

조급할 게 뭐 있나.

by 조보라

이번 주 영하로 떨어지면서 발이 너무 시렸다.

그제부터 어그 부츠를 꺼내신었다.

평소에도 나는 상황에 따라 운동화도 단화 스타일, 스니커즈 스타일 등으로 이것저것 갈아 신고, 브랜드도 N, A, F 등 여러 운동화를 가지고 있다.


현관에 있는 아들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얇고 구멍 숭숭 나 있는 초경량 러닝 운동화다.

우리 아들은 이 운동화 한 켤레로 살아간다.

크록스 슬리퍼를 제외하고는 이 운동화 딱 한 개로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멋이라고는 관심이 없는 건지, 너무 효자인 건지,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무심했다.

아들 운동화를 보니 얇아도 너무 얇다.

바람이 숭숭 다 들어가서 발이 너무 시리겠다 싶었다.

따뜻한 부츠도 하나 사 주고, 운동화도 겨울용으로 사줘야겠다 싶어서 A**마트에 데려갔다.

아니, 신발 가게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가.

알고 보니 블랙 프라이데이로 빅 세일 기간이었다.

아들과 진열된 신발 몇 개를 신어보았다. 오래전 신발가게 왔을 때만 해도 230mm이었는데, 그 사이 발이 커졌다. 이제는 250을 신어야 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으니, 신발을 가져다주는 점원들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도 기다렸다가 신발 사이즈를 받아서 신어보았다.

아들은 편한 게 제일 중요하다.

이것저것 신어 보면서 자기 발에 편한 신발을 찾았다.

겨울용 부츠 한 개, 방한 기능이 조금은 들어가 있는 운동화 한 개를 골랐다.


신발 박스를 들고 계산을 하러 갔다. 오마나. 계산하는 데 줄이 길다. 놀이공원도 아닌데, 이렇게 기다려서 계산을 할 정도라니.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앞으로 가고 있다.

이제 우리 앞에 세 팀 정도 남았다. 뒤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람들도 이게 다 무슨 상황이냐고 어리둥절해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스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건지, 계산하는 직원이 난감해하며 계산을 마치지 못하고 있다. 점원은 뭐가 잘 안 되는지 계속 포스를 이것저것 누르고, 다른 점원을 불러서 방법을 찾는다. 다른 직원이 해 봐도 영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직원도 난처해하고, 이제 앞에서 계산을 기다리던 손님도 조금씩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른 손님 중에 한 명이 목소리를 높인다.

'계산을 빨리해 줘야지, 지금 뭐 하는 거냐.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거냐.'

한 명이 목소리를 높이니, 이곳저곳에서 목소리를 높여 불만을 제기한다.

점원들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직원이 점심 식사 중이었는데, 빨리 와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를 연거푸 말한다.

식사를 하다 말고 뛰어나온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 직원이 포스기 앞에 선다. 이것저것 누르더니 순식간에 계산을 해결한다. 한참을 기다린 가족들에게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말한다.

김치찌개를 먹고 있던 걸까. 입 주변에 아직 붉은 기도 닦지 못한 채 달려와서 포스기 앞에 섰다. 오후 4시 무렵이었는데, 이제야 점심을 먹은 거라니.

그래도 포스 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베테랑으로 보였다. 같은 포스 기를 이렇게 다르게 조작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해결 못해서 쩔쩔매는 초보 직원과 포스기 앞에 서자마자 빠르게 해결하는 능숙한 직원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해결사로 나타난 베테랑 직원 덕분에 손님들의 줄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나도 기분 좋게 계산을 끝내고 가게 문을 나섰다.


우리는 왜 그렇게 조급한 걸까.

나도 뒤에 약속이 있거나 어디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처럼 큰 소리를 냈을 테지. 하지만, 오늘 다행히 아무 약속도 없고, 집에 가면 되는 일정이었기에 마음이 한결 여유롭고 느긋했다.

급할 것도 없고, 조바심을 낼 것도 없었다. 심지어 일하는 직원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처럼 늘 여유로운 건 아니다. 평소 나는 늘 쫓기듯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직원들에게도 '이것 좀 빨리해 줘요. 이거 빨리 보고해야 해요. '라고 말한다.

마감시간과 해야 할 일에 항상 쫓긴다.

한 해의 마지막 12월, 지금은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때다. 한 해를 돌아보아야 한다. 한 해를 돌아보려면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여유로운 마음은 삶의 마진을 충분히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

그래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꼭 필요한 일인지, 아닌지 걷어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에 달려 있다. 내 삶을 희미하게 만드는 일을 걷어내고,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하며 살기. 그렇게 선명하게, 여유롭게 살아보는 거다.

시간은 지금도 흘러간다. 이 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온도는 달라진다. 이번 겨울, 조금 느리더라도 넉넉한 품처럼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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