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동남아와 바퀴벌레
동남아시아에서 절대로 뗄 수 없는 것이 있다.
더운 날씨, 열대 과일, 맛있는 음식
그리고 각종 벌레.
사시사철, 아니. 철이 없이 내내 따뜻한 동남아시아에는 벌레들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하다. 손을 쫙 펼쳐서 검지 손가락과 손바닥이 연결되는 부분부터 손목까지. 대략 6~7cm 사이즈의 바퀴벌레들이 득시글하다. 그리고 얘네들은 잘 날아다닌다.
한국에서는 바퀴벌레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정말 가끔 길거리에서 보긴 했지만 다들 사이즈가 크지 않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현지 바퀴벌레를 봤을 때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크기만 큰 것도 아니고 애들이 잘 먹고 잘 자란 건지 오동통한 게 맷집이 남달랐다. 식량 고갈로 벌레를 식자원으로 사용해야 한다면 동남아 바퀴벌레가... 예...
바퀴벌레가 큰 데다가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어딜 가든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고급 식당, 영화관, 쇼핑몰, 아파트, 콘도, 주택, 수영장, 바비큐 시설, 기타 등등. 그냥 모든 곳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내 집에 바퀴가 보이지 않는다고 바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놈들이 언제 하수구를 타고 배수관을 타고 현관으로 화장실로 부엌으로 창문으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는 살아남는다고 했다. 지금은 깨끗해도 언제 바퀴로 점령당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경우는 참. 기분이 뭐 하다. 차라리 주문하기 전에 녀석들을 목격한다면 빨리 자리를 뜨면 되지만, 한창 먹고 있는 와중에 나오는 경우에는 있던 식욕도 싹 사라진다.
특히 바퀴벌레가 자주 나오는 곳은 식탁마다 부르스타(라고 하는 휴대용 가스버너)를 쓰는 곳이나 실내가 어두침침한 펍이나 바, 혹은 주방이나 홀에 에어컨이 잘 가동되지 않거나 아예 야외에 좌판을 벌여놓고 음식을 파는 곳들이다. 위생적인 걱정 때문에 야외에서 스트릿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깨끗해 보이는 쇼핑몰 내 고급 식당에서 바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삐빅. 오산입니다.
처음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직원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들고 있던 행주를 이용해 바퀴를 팍팍! 잡아버렸다. 미간에 숫자 팔을 잔뜩 만들고 항의를 했더니 사장님이 오셨다.
"아 그건 어제 inspection을 해서 그래"
inspection.
동남아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항의를 하면 10 중 10 저 단어를 듣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식당에서 위생점검을 위해 벌레가 있는지 확인하고 방역을 했는데, 원래는 벌레가 없는데 그 약 때문에 꼬인 거다.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우리는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동남아 식당에서 바퀴를 발견하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음식값 할인이다. 환불도 아니고 할인(많이 받아야 5~10%). 그것도 주인이나 매니저가 정말 정말 착하고 미안해해야 얻을 수 있거나 손님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인 경우에만 가능하지, 대부분은 'inspection'을 타령하며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바에서 바퀴벌레가 나온다면 뭐, 칵테일 한두 잔 정도는 공짜로 내어줄 수도 있다.
언제는 펍에서 바퀴벌레를 여러 마리 발견했는데, 바텐더가 미안하다고 건네준 선물 꾸러미 안에서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쏟아져 나온 적도 있었다. (네 그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습니다.)
3년 넘게 동남아시아에서 거주하고 여행하면서, 바퀴벌레가 '없을 거다'라는 생각은 그냥 버렸다. 좀 더 강심장을 가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