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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칼 오렌지 Jun 03. 2019

[해외생활] 동남아식당에서 살아있는 바퀴벌레가 나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동남아와 바퀴벌레

동남아시아에서 절대로 뗄 수 없는 것이 있다.


더운 날씨, 열대 과일, 맛있는 음식

그리고 각종 벌레.


사시사철, 아니. 철이 없이 내내 따뜻한 동남아시아에는 벌레들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하다. 손을 쫙 펼쳐서 검지 손가락과 손바닥이 연결되는 부분부터 손목까지. 대략 6~7cm 사이즈의 바퀴벌레들이 득시글하다. 그리고 얘네들은 잘 날아다닌다. 


한국에서는 바퀴벌레를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정말 가끔 길거리에서 보긴 했지만 다들 사이즈가 크지 않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현지 바퀴벌레를 봤을 때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크기만 큰 것도 아니고 애들이 잘 먹고 잘 자란 건지 오동통한 게 맷집이 남달랐다. 식량 고갈로 벌레를 식자원으로 사용해야 한다면 동남아 바퀴벌레가... 예...


바퀴벌레가 큰 데다가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어딜 가든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도저히 실사는 첨부 못하겠고 그림자로나마


고급 식당, 영화관, 쇼핑몰, 아파트, 콘도, 주택, 수영장, 바비큐 시설, 기타 등등. 그냥 모든 곳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내 집에 바퀴가 보이지 않는다고 바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놈들이 언제 하수구를 타고 배수관을 타고 현관으로 화장실로 부엌으로 창문으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는 살아남는다고 했다. 지금은 깨끗해도 언제 바퀴로 점령당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경우는 참. 기분이 뭐 하다. 차라리 주문하기 전에 녀석들을 목격한다면 빨리 자리를 뜨면 되지만, 한창 먹고 있는 와중에 나오는 경우에는 있던 식욕도  사라진다.


특히 바퀴벌레가 자주 나오는 곳은 식탁마다 부르스타(라고 하는 휴대용 가스버너)를 쓰는 곳이나 실내가 어두침침한 펍이나 바, 혹은 주방이나 홀에 에어컨이 잘 가동되지 않거나 아예 야외에 좌판을 벌여놓고 음식을 파는 곳들이다. 위생적인 걱정 때문에 야외에서 스트릿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깨끗해 보이는 쇼핑몰 내 고급 식당에서 바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삐빅. 오산입니다.


처음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직원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들고 있던 행주를 이용해 바퀴를 팍팍! 잡아버렸다. 미간에 숫자 팔을 잔뜩 만들고 항의를 했더니 사장님이 오셨다.


"아 그건 어제 inspection을 해서 그래"


inspection.

동남아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항의를 하면 10 중 10 저 단어를 듣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식당에서 위생점검을 위해 벌레가 있는지 확인하고 방역을 했는데, 원래는 벌레가 없는데 그 약 때문에 꼬인 거다.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을 때, 우리는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동남아 식당에서 바퀴를 발견하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음식값 할인이다. 환불도 아니고 할인(많이 받아야 5~10%). 그것도 주인이나 매니저가 정말 정말 착하고 미안해해야 얻을 수 있거나 손님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인 경우에만 가능하지, 대부분은 'inspection'을 타령하며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바에서 바퀴벌레가 나온다면 뭐, 칵테일 한두 잔 정도는 공짜로 내어줄 수도 있다.


언제는 펍에서 바퀴벌레를 여러 마리 발견했는데, 바텐더가 미안하다고 건네준 선물 꾸러미 안에서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쏟아져 나온 적도 있었다. (네 그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줄 알았습니다.)


3년 넘게 동남아시아에서 거주하고 여행하면서, 바퀴벌레가 '없을 거다'라는 생각은 그냥 버렸다. 좀 더 강심장을 가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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