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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칼 오렌지 Jun 03. 2019

[해외생활] 동남아 사람들은 왜 사과를 안 할까

잘못을 인정하면 잘못이 된다.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문화 관련 트레이닝을 받을 때 가장 먼저 알려준 Soft Skill 중에 하나가 


잘못을 인정하면 잘못이 된다.


잘못했다. 죄송하다.라는 사과 조의 말은 절대 고객이나 파트너사에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Sorry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숨만 쉬면 Sorry와 Excuse를 말하는 미국 문화와는 너무 달랐다. 


비단 말레이시아에서만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동남아 국가 문화는 사과를 지양한다.


고객 분쟁 상황에서 잘못을 인정하면 사측의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라고 이해했지만, 이후에도 번번하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꽤 많은 Expat 친구들이 이에 공감을 하는 것을 보면 편견은 아닌듯하다.


결정적으로 이 문화권에서는 사과를 하지 않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고객 우선주의, 친절을 우선시하는 응대 문화가 발달했다 보니 '죄송합니다만~'으로 시작하는 사과문이 일상적이다. 대략 비슷한 상황에서 이곳의 응대 방식은 이렇다.


"OO에 대한 불편은 XX에서 나온 것이다"

같은 표현을 한국에서 했더라면

"OO에 대해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로 시작했을 것이다.


사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 고객을 응대했다가는 매니저와 사장을 부르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게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 

이런 용서나 사과를 하는 표현은 아주 작은 실수에서는 용납되지만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발을 밟았다거나) 실수나 잘못이 커질수록 더욱 이런 표현에 대해 인색해진다. 이런 문화의 차이 때문에 오는 불편함이 작지 않다.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잘못으로 뒤집어 씌우기도 한다. 문제나 불편사항은 너 때문에 생긴 거다. 혹은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렇다.라는 식이다.


예를 들어 생일에 저녁식사를 위해 근사한 레스토랑에 예약했다고 가정하자.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한 저녁식사인데 레스토랑의 단체 테이블이 아주 시끄러워 바로 앞에 있는 친구와 얘기를 할 수 없는 정도. 웨이트리스와 얘기를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불만 접수를 한다.


특별한 날을 위해 테이블을 예약했는데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분위기 때문에 저녁을 망쳤다.
담당 웨이트리스였던 OO에게 이야기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럴 때 나오는 식당의 반응


그런 상황이 있었다니 유감이군요. 
다음번에 방문해주신다면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그 날에 소란스러운 것에 대한 불평사항이 들어온 것은 고객분을 제외하고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이다. 이것은 사과를 받은 것도, 안 받은 것도 아닌 이상한 경우.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컴플레인을 하는 것도 지친다. 그나마 여기서 쓰인 '유감이군요'라는 표현이 이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제스처이다.


여기서 더 싸워봤자 시간과 정신력의 낭비일 뿐이다. 문화 차이를 인정하자 라는 생각과 참을 인 천 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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