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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칼 오렌지 Jun 03. 2021

[국제결혼] 결혼 회의주의자가 외국인과 결혼을했다. 1

이놈의 코로나 탓을 해본다.

내 인생에서 결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결혼 안할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그런 네가 가장 먼저 결혼하겠지'라고들 하는데, 주변 지인과 친구 가족들은 나는 결혼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혼자서도 밥벌이 잘 하고 잘먹고 잘 사는 중이었어서 더 그랬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었지만, 두 번의 장기 연애를 했다. 상대는 모두 외국인이었다. 20대 초반부터 해외에서 거주하고 근무하면서 외국인이 주변에 더 많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첫 '외국인'과의 연애는 무척 새롭고 강렬한 경험이었다. 지독하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미국-한국 장거리 연애를 2년 반동안 지지부진하게 끌다 결국 헤어졌다. 아, 나는 다시는 연애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내 연애는 달라, 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보니 그 놈이 그 놈이다. 


두 번째 국제 연애는 지독한 첫사랑과의 연애를 끝내고 리바운드하자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상대도 나도 서로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았다. 연락이 없어도 그러려니, 장기 해외 출장을 가도 그러려니. 첫번째 연애와 비교해서 아주 뜨겁지도 않았다. 각자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였다보니 업무로 바쁜 이유도 있었다.


평소에 하는 운동은 숨쉬기가 전부였던 나. 남자친구를 만나고 4차례 하프마라톤을 뛰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1년 반정도 같이 살았다. 말레이시아 프로젝트가 끝나자 싱가폴로 돌아간 남친과 말-싱 장거리 연애를 1년 했다. 2주마다 비행기를 타고 싱가폴로 날아가 주말을 보내고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1년간 했다. 그러다 내가 태국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태국-싱가폴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됐다. 서로 돌아가면서 태국과 싱가폴을 방문하거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주변국에서 만나 여행을 하는 식이었다.


의외로 재밌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이렇게 자주 비행기를 탈 일도 없었을거고, 이렇게 자주 여행하지도 못했을텐데. 


모든 연애가 그렇듯 우리도 한계를 맞았다. 그놈의 코로나.


영국인 친구와 함께한 10km 트레일런, 갑자기 말레이시안 아저씨가 같이 사진 찍자며 파자마(?)를 입고 등장.

싱가포르는 코로나 상황에 '국경봉쇄'와 '락다운'으로 대응했다. 코로나가 전세계로 퍼지는 동안에도 중국발 비행편을 막지 않은 태국이나, 국경봉쇄나 락다운보다는 생활속 거리두기로 대응한 한국과는 사뭇 다른 조치였다. 결국 2020년 3월 초 이후로 영주권자(PR)나 싱가포르 자국민이 아니고서는 싱가폴 국경을 넘을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회사의 리모트 워킹 기간이 계속 연장되었고,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그동안 남자친구는 계속 싱가포르에 갇혀있었다. 그렇게 코로나로 인해 싱가폴에 발이 묶인지 6개월이 넘어가던 차에 백기를 들었다.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한 쿠알라룸푸르. 너무나도 애정하는 도시이고 언젠가 다시 그곳에서 살고싶다.
답답해서 안되겠어. 남아공에 갈래.

싱가포르는 평상시에는 깨끗하고 살기 좋으며, 말레이시아나 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주변 동남아 국가로의 이동이 쉬워 여행하기에도 좋다. 그런 이점을 마음껏 누리고, 회사 출장으로도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UAE 여러 국가를 이동하다 갑자기 좁디 좁은 도시국가에 묶여버리니 답답할 수밖에.


내가 한국에 있는 약 5개월 동안 남자친구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화상 전화를 했다. 친구들과 저녁이나 술약속이 있어도 약속장소에서 전화를 해 친구들과도 안부를 전했다. 4년 반을 만났지만 평상시에는 문자도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도 놀랐고, 매일 전화하는 외국인 남친을 엄마아빠도 꾸준하다며 신기해할 정도였다.


남아공에서 온 친척과 태국여행을 함께했다. 가방검사에서 키로수 제한에 걸려서 각각 8겹씩 껴입고 통과.

그렇게 2020년 9월 즈음 남아공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1년 전부터 계획한 30명이 떠나는 대가족 여행도 가야겠다며 선언을 했고, 12월에 남아공 국경이 열려있다면 함께 여행하자고 나를 초대했다.


문제는 하루 확진자가 5천명에서 만명까지 높아지며 2차 대유행을 기록하고 있던 남아공에 둘 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비행기표며 숙소며 다 예약을 해놓고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코로나 상황에 긴장하며 12월 남아공행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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