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무너져가던 때
우리부부는 여행을 좋아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약속하고 결혼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이 좋고 하고 싶은게 많아서 뒤로 뒤로 미루는 시간이 길어졌다.
남들보다는 조금은 빠르게 결혼 3년만에 서울에 신축아파트도 장만하고 그 덕에 대출금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 다녔다. 결혼하고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5년간 매년 한해 3회씩 해외에 나갔다. 그렇게 해외를 다니면서 막연히 40대가 되기전에 우리 유럽과 미국, 세계여행을 해보자!하고 꿈꿨다.
영어도 잘 못하고 겁이 많은 우리 둘이었지만, 그렇게 다녀와야 우리의 아이라던가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삼형제 중 막내였다.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부모님은 또래의 부모님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셨다. 내가 어렸던 1990년대에 초등학교 1학년 어머니가 40대가 흔치 않던 시절 어머니는 40대셨고 아버지는 50대셨다. 어린마음에는 단순히 친구들 보다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우리 엄마도 30대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나이를 먹고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건강은 늘 우리 가족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특히 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몸이 편찮으셨다. 몸이 약한 편이셨고, 전세계에 코로나가 발병하던 즈음 크게 다치시고 말았다. 주변의 도움없이는 거동조차 어려운 상태.
삼형제나 키우셨지만, 큰 형은 중국에 둘째 형은 캐나다에 살고 있어 삼형제중에는 막내인 나만 서울에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담당해야했다.
길어지는 투병기간 동안 매 주말 나는 부모님의 댁을 찾았다. 아픈 어머니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던 아버지의 부담이 너무 가중되어서 내가 주말에는 그 일을 맡아야만 했다.
어머니의 상태가 안좋아지기만 하던 날. 어느새 나의 나이는 한국 나이라 30대 끝자락에 다다랐다.
'내가 마흔이 되어도 유럽, 미국은 가보지 못하겠구나. 그 먼 뉴욕은 영영 가지 못할 수도있겠다.'
부담과 죄송함, 안쓰러움이 공존하던 2022년, 어머니는 결국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집 안 곳곳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가족 모두는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80이 넘으신 아버지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처럼, 연이은 불행은 우리 가족을 더욱 힘겹게 했다.
삼형제 중 유일하게 부모님 가까이에 살던 나는, 자연스럽게 간병을 도맡게 되었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장과 병원, 집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일상은 숨 막힐 듯 답답했고, 약 봉투와 간호 용품들이 널브러진 거실은 무거운 현실을 상기시키는 공간이었다. 병세가 악화될 때마다 드리워지는 무거운 침묵은, 마치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희망을 가졌던 신약이라는 면역항암제마저 빠르게 내성이 생기고 말았다. 이어지는 항암..
하지만 독한 항암제도 연로하신 아버지 몸속에 자리한 암세포를 줄어들게 하진 못했다. 아버지의 상태는 악화되어가기만 했다. 이제는 나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끝없이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걷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어둠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당시 나와 아내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결혼 전부터 우리는 전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함께 키워왔다. 하지만 현실의 무게는 그 꿈을 짓눌렀고,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치 눈앞에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부모님의 간병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부부의 삶 또한 소중했기에,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했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의 작은 불씨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해 보였다.
그렇게 나의 40대의 첫 해는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게만 이어져갔다. 금방이라도 일상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