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겨졌다는 것은 잃어버린 것인지, 자유로워진 것인지
2023년 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병원에서 암진단을 받으신지 일 년도 되지 않으셨을 때였다. 아버지의 암투병은 길지 않았다. 면역항암제가 내성이 생겨 약을 바꿨고 그다음 항암제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밸런타인데이에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응급실에 가시는 일이 잦았지만, 스스로 운동도 하시기도 했고, 외출을 하기도 하셨다. 당장 돌아가실 것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폐암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뇌전이도 없었고, 인지 기능에도 문제가 없으셨다.
우리에게 폐를 끼치지 싫어서 혼자 지내셨지만, 주말에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평일에는 요양보호사가 돌봐드릴 수 있을 정도였다.
5월 어버이날 동네 갈빗집에서 함께 갈비를 구워 드실 정도로 잘 버텨내고 계셨다.
5월의 어느 주말 나와 삼계탕을 드시고 잠자리에 드실 준비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는 25분 거리의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적지는 않지만, 백세시대라는 요즘 부모님을 모두 여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은가.
나에게는 큰 지지자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부모님을 모두 잃은 상실감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세상의 모든 색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였다.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없고 무가치하게 느껴졌고,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모든 의욕을 잃고 한동안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깊은 심연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심연은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일반적인 삶을 살던 내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마치 나침반을 잃어버린 배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없고 무가치하게 느껴졌고,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마치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내 안의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실은 냉정했고,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떠나 주인을 잃은 집을 정리해야 했고,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유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했으며, 복잡한 재산 정리 절차도 거쳐야 했다. 삼 형제 중 막내였지만, 최근 나에게만 온전히 맡겨졌던 모든 일을 처리해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묵묵히 혼자 모든 일을 감당했다. 불만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오랜 시간 굳어진 습관처럼 그리고 담담하게 하나하나 다가오는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마치 기계처럼, 감정의 동요 없이 주어진 일들을 해치워 나갔다. 하지만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옷가지와 유품들을 정리할 때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것 같았고,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품 정리 업체의 도움을 받아 짐들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를 비워두고 문을 잠그는 순간, 그 빈 아파트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마치 텅 빈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처럼 무겁고 불안했다.
우려했던 재산 정리는 비교적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어떠한 부채를 마음속에 지고 있던 형들은 나의 뜻에 대부분 따라주었다. 지금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정소모와 법정다툼 같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들이 일어났다면, 그 해는 훨씬 더 괴로운 나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작년 7월의 일이었다. 모든 정리가 끝나자, 일순간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감정이 폭발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댐의 수문이 갑자기 열린 것처럼, 억눌렸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슬픔,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해방감…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것처럼,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이러한 혼란과 고통 속에서,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은 한없이 우울했다. 부모님에 대한 지난 기억과 후회가 하루 종일 머리를 맴돌았다. 어느 날은 상실감에 힘들었다. 어머니가 몸져눕던 날부터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안부전화를 이틀에 한번 했고,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가 혼자 남으셨을 때는 매일 저녁 안부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들이 나를 괴롭게 했고 잠들 수 없게 했다. 단순히 회사와 집을 오가며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돌파구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꿈, 바로 아내와 함께 떠나는 세계 여행이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처럼, 희망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마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처럼, 새로운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여행은 나에게 단순한 휴식이 아닌,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아내와 나는 오랜 시간 함께 꿈꿔왔던 세계 여행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현실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차마 꺼내지 못했던 꿈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마치 오랜 시간 묵혀둔 보물을 꺼내든 것처럼, 소중한 꿈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2023년 7월 말 그동안 모아두었던 마일리지를 가지고 처음 파리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여행을 얼마나 갈지 전혀 정하지 않았다. 단지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그 순간 조금은 마음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