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위대하고, 자연은 때때로 부끄럽다.
내 안의 자연은 매일같이, 시도 때도 없이 존재를 드러낸다.
그 자연의 이름은, 방귀다.
나는 대자연이다.
조금만 긴장해도 뽝, 긴장을 풀면 뿡,
심지어 아무 일도 없는데도 부왁.
아무 예고도 없이, 아무 맥락도 없이 찾아오는 자연의 신호.
장을 조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나보다 나를 먼저 안다.
긴장을 눈치채고, 마음을 읽고, 말보다 앞서 반응한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자연을 잠시 가두어둔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타협일까.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늘 흔들리는 사람이다.
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다. 장이 예민하다.
그러니까, 나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장을 달래려면 먼저 마음을 달래야 하고,
마음을 쉬게 하려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자연을 온전히 받아줄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방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내 연애사를 되짚어 보면 방귀를 튼 사람과는
오래가지 못했고, 방귀를 안 튼 사람과는 이상하리만큼 오래갔다. 처음엔 그게 참 이상했다.
장은 편했는데, 마음은 불안했다.
장을 열어 놓았는데, 관계는 닫혔다.
방귀를 튼 연애는 언제나 초반이 좋았다.
처음 뿡! 했을 때 상대는 웃었다.
“아 귀여워.” 하면서 장난치듯 이불을 걷기도 했고, 나보다 더 크게 껴보겠다고 경쟁이라도 하듯 따라 하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편했다. 장은 자유로웠고, 배는 평화로웠고,나는 나로서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웃음은 줄고, 어색한 정적이 늘어났다.
나는 여전히 부왁! 뿡! 뽝! 하며 존재를 증명했지만,
상대의 반응은 점점 무표정해졌고,
이불을 걷는 손엔 장난기 대신 인내가 깃들었다.
어떤 순간부터 나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방귀를 뀌었지만, 그 ‘자연’이 우리 사이의 틈이 되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그다음 연애에선 방귀를 트지 않기로 결심했다.
장의 자유보다 관계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타협을 가르쳤다.
어떤 연애는, 나 혼자 조용히 꼈다. 정말 아주 조용히.
화장실이나 베란다, 문틈 같은 데서.
들켰는지 안 들켰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 사람은 내게 한 번도 “껴도 돼”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 연애는, 더 조심스럽고, 더 불편했고, 이상하게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이 유정이었다.
유정과 나는 참 오래도 사귀었다.
가장 오래된 연애였고, 가장 단정했던 연애였다.
그리고, 가장 숨 막혔던 연애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방귀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그저, 유정 앞에서는 내 몸이 알아서 조심했다.
조금이라도 장이 반응할 기미가 보이면,
나는 몸을 굳히고, 자세를 고치고, 말을 끊고, 그 모든 기운을 항문 쪽으로 보냈다.
어떤 밤이었다. 같이 누워 자는 중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유정은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나는 배가 너무 아팠다.
내장이 안에서 뭔가를 걸고넘어지는 기분.
이제 진짜로 뭔가가 터질 것 같았다.
피할 수도, 숨길 수도, 연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용기 내서 말했다.
“나… 방귀 뀌어도 돼?”
유정은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안 돼.”
그 말이 너무 명확하고 또렷해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다시 이불을 덮었다.
방귀는 나가지 못했고, 나는 그날 죽을 뻔했다.
장을 잡고 숨을 참으며 내 안의 자연을 억눌렀다.
그 밤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다시 살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이 오래가는 법을 잘 모른다.
방귀를 트면 관계가 멀어지고, 참으면 마음이 멍든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조용히, 장을 움켜쥔 채로,
누군가를 오래도록 사랑해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나는 대자연이다.
방귀 하나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자연을 조심스럽게 숨긴다.
숨기고, 조이고, 눌러두고.
장을 쥐어짜듯,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타협일까.
나는 아직 그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다.
장은 편안해지고 싶어 하고, 마음은 오래가고 싶어 한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오늘도
조용히, 부글부글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