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톰한 입술에 걸린 담배.
그걸 쥔 손끝은 아무 힘이 없었고,
고개를 살짝 기울일 때마다 목선이 천천히 드러났다.
나는 그 장면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애는 내 첫사랑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애처럼 섹시한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흡연은 자극이었다.
섹슈얼하고, 날카롭고,
내 안에 없던 어떤 충동을 깨우는 것.
그 애는 나에게,
내가 아직 꺼내보지 못한 모습의 열쇠 같았다.
우리는 오래 가진 못했다.
내가 필리핀으로 떠난 뒤, 연락은 서서히 줄었고,
결국 아무 말도 없이 끝이 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 애의 사진을 지우지 못했다.
그 애의 연기와 입김이,
내 숨결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 즈음, 한 오빠를 알게 되었다.
나이 차는 제법 났지만,
신기하게도 어른 같으면서도 꼰대 같진 않았다.
나는 물었다.
“담배 피는 법, 알려줄 수 있어요?”
오빠는 웃으며 말했다.
“뭐든 해보고 결정해. 안 맞으면, 안 하면 돼.”
그렇게, 처음으로 불을 붙였다.
첫 흡입은 썼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고, 연기를 내뱉는 순간
나는 분명, 그 애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담배는 나의 연기가 되었다.
입김이 아니라, 연기.
진짜 내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고 싶은 내가 뿜어낸 것.
나는 그 애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연기는 늘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 애는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섹시했는데.
나는 자꾸 그 애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그래야 그 애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첫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후로, 담배는 꽤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렀다.
스트레스를 삼킬 때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속이 뒤집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 모금.
때론 담배가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말 대신, 눈물 대신, 숨을 참는 대신.
한참 후, 유정을 만났다.
그 사람은 비흡연자였고,
담배 냄새를 유독 싫어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난 유정의 몸에서
내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미안했고, 그 미안함이 결심으로 굳어졌다.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그 후로 4년 반을 피우지 않았다.
사랑했고,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참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별은, 사람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보낸다.
입 안이 허전했고, 숨이 들쑥날쑥해졌다.
자일리톨 껌을 하루에 스무 개씩 씹었다.
뭔가를 물고 있어야 마음이 덜 흔들렸다.
그렇게 몇 주, 몇 달.
결국, 다시 불을 붙였다.
그 후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비흡연자였다.
어떤 애인은 서운해했다.
“예전 애인 때문에 끊은 적 있다며.
왜 나는 안 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땐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때는 몰랐다.
숨을 참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참는 게 사랑인 줄만 알았다.
침묵하고, 감추고, 버텨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민하를 만났다.
민하와 나는 함께 피웠다.
샤인머스캣 향 액상전담.
냄새는 달콤했고, 입술은 따뜻했다.
나는 처음으로,
담배 피우는 사랑이 편하다고 느꼈다.
그 애와 있으면,
내가 내 숨을 참지 않아도 됐다.
그게 너무 새로웠고,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자주 함께 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향의 연기.
가끔은 말보다 조용히 연기를 나누는 일이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민하의 숨결과 함께 피워내던 연기,
그 사람의 입술과 나눴던 내 가장 편안한 숨.
그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는 결국 헤어졌지만,
나는 그때의 연기와 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건 단지 담배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숨 쉬었던 순간의 기억이었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다음에도 같은 흡연자를 만나게 될까.
같이 피우는 게 당연한,
그런 사람이면 편하겠지.
아니면, 예전처럼 누군가를 위해
다시 끊게 될 날이 올까.
그러니까 나는,
아직 끊지 못한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담배도, 기억도,
연기처럼 번져가는 사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