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에세이> 10화. 아직 끊지 못한 것들

by 박에녹


도톰한 입술에 걸린 담배.

그걸 쥔 손끝은 아무 힘이 없었고,

고개를 살짝 기울일 때마다 목선이 천천히 드러났다.


나는 그 장면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애는 내 첫사랑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애처럼 섹시한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흡연은 자극이었다.

섹슈얼하고, 날카롭고,

내 안에 없던 어떤 충동을 깨우는 것.


그 애는 나에게,

내가 아직 꺼내보지 못한 모습의 열쇠 같았다.


우리는 오래 가진 못했다.

내가 필리핀으로 떠난 뒤, 연락은 서서히 줄었고,

결국 아무 말도 없이 끝이 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 애의 사진을 지우지 못했다.

그 애의 연기와 입김이,

내 숨결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 즈음, 한 오빠를 알게 되었다.

나이 차는 제법 났지만,

신기하게도 어른 같으면서도 꼰대 같진 않았다.


나는 물었다.

“담배 피는 법, 알려줄 수 있어요?”


오빠는 웃으며 말했다.

“뭐든 해보고 결정해. 안 맞으면, 안 하면 돼.”


그렇게, 처음으로 불을 붙였다.


첫 흡입은 썼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고, 연기를 내뱉는 순간

나는 분명, 그 애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담배는 나의 연기가 되었다.

입김이 아니라, 연기.

진짜 내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고 싶은 내가 뿜어낸 것.


나는 그 애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연기는 늘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 애는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섹시했는데.


나는 자꾸 그 애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그래야 그 애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첫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후로, 담배는 꽤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렀다.

스트레스를 삼킬 때마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속이 뒤집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 모금.


때론 담배가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말 대신, 눈물 대신, 숨을 참는 대신.


한참 후, 유정을 만났다.

그 사람은 비흡연자였고,

담배 냄새를 유독 싫어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난 유정의 몸에서

내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미안했고, 그 미안함이 결심으로 굳어졌다.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그 후로 4년 반을 피우지 않았다.


사랑했고,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참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별은, 사람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보낸다.

입 안이 허전했고, 숨이 들쑥날쑥해졌다.


자일리톨 껌을 하루에 스무 개씩 씹었다.

뭔가를 물고 있어야 마음이 덜 흔들렸다.


그렇게 몇 주, 몇 달.

결국, 다시 불을 붙였다.


그 후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비흡연자였다.

어떤 애인은 서운해했다.


“예전 애인 때문에 끊은 적 있다며.

왜 나는 안 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땐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때는 몰랐다.

숨을 참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참는 게 사랑인 줄만 알았다.

침묵하고, 감추고, 버텨내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민하를 만났다.

민하와 나는 함께 피웠다.


샤인머스캣 향 액상전담.

냄새는 달콤했고, 입술은 따뜻했다.


나는 처음으로,

담배 피우는 사랑이 편하다고 느꼈다.


그 애와 있으면,

내가 내 숨을 참지 않아도 됐다.


그게 너무 새로웠고,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자주 함께 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향의 연기.


가끔은 말보다 조용히 연기를 나누는 일이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민하의 숨결과 함께 피워내던 연기,

그 사람의 입술과 나눴던 내 가장 편안한 숨.


그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는 결국 헤어졌지만,

나는 그때의 연기와 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건 단지 담배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숨 쉬었던 순간의 기억이었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다음에도 같은 흡연자를 만나게 될까.


같이 피우는 게 당연한,

그런 사람이면 편하겠지.


아니면, 예전처럼 누군가를 위해

다시 끊게 될 날이 올까.


그러니까 나는,

아직 끊지 못한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담배도, 기억도,

연기처럼 번져가는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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