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송이랑 타로집에 들어갔다.
그냥 재미로, 궁합이나 한 번 보자며.
중년의 여성 선생님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따뜻하게 웃어주셨다.
족히 백 장은 넘어 보이는 타로카드를
부채 모양으로 촤악 펼치고는
각자 세 장씩 뽑아보라고 하셨다.
나 세 장, 송 세 장.
여섯 장의 카드를 뒤집자,
선생님도 우리도 동시에 놀랐다.
내가 뽑은 카드에는
모두 ‘왕’이 그려져 있었다.
왕 카드만 세 장을 뽑은 거다.
송이 뽑은 카드는
공주, 교황, 요정이었는데
놀랍게도 전부 보라색 옷을 입고 있었다.
특히 요정은 온몸이 보라색이었다.
송이 제일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이다.
우리는 눈이 동그래진 채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선생님이 내 카드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왕 카드가 세 장이네요.
지금에 오기까지 고생 많았겠어요.”
나는 잠깐,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도 생각했다.
“굉장히 안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맞아요!”
송이 힘 있게 말했다.
나는 그냥 멋쩍게 웃었다.
“테토남이시네요.”
선생님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하마터면 “네”라고 대답할 뻔했다.
혹시 짧은 머리 때문에
나를 남자로 오해하신 건가 싶었다.
“저, 여자인데요… 선생님?”
“하하하. 타고나길 남자 사주예요.
주로 리드하는 쪽이시죠?”
“맞아요!”
이번에도 송이 맞장구쳤다.
나도 부정하진 못했다.
송이 차도 안쪽으로 걷게 자리를 바꿔주는 쪽도,
손을 잡을 때 바깥쪽으로 잡는 쪽도
항상 나였으니까.
그게 리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엔 송의 카드를 봐주셨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것저것 배우는 걸 좋아하시네요.”
“맞아요!”
이번엔 내가 강하게 대답했다.
송은 진짜 그렇다.
지금 배우고 있는 것만 해도
보석세공, 은장도, 앙금플라워, 폴댄스.
최근엔 나보고
화과자 배우러 같이 가자고도 했으니까.
그냥 가볍게 보자고 들어온 타로집이었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정확히 간파당하니까
우리는 어느새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진지해진 거다.
“궁금한 게 있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우리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희, 결혼할 수 있을까요?”
“자, 카드를 한번 뽑아볼까요?”
이번에도 내가 세 장, 송이 세 장을 뽑았다.
여섯 장의 카드가 펼쳐졌다.
선생님은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말했다.
“결혼하시겠네요.
그렇게 나와요.”
나는 바로 송의 손을 잡았다.
그때였다.
“그런데…”
‘그런데’라니.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해외 카드가 두 장이 나오는데…”
헐.
우리는 그 자리에 앉은 채
놀라 자빠질 뻔했다.
선생님께 그 이유를 설명하진 못하고
둘이서 흔들리는 동공을 공유하며
조용히 마주 봤다.
사실 걱정이 있었다.
중년의 여성이,
결혼을 묻는 여자 둘 앞에서
불편해하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 분을 시험하려던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 맞히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걱정은 기우였다.
“혹시 두 분, 외국에 나가서
혼인신고하실 계획 있으세요?”
선생님은
우리가 염려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열린 분이었다.
‘테토남’이 여전히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우리를 봐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게
전혀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치만 사실은
송의 유학이 아직 3년이나 남았다.
내년 8월이면
송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얘기를 드리자
선생님은 퍼즐이 맞춰졌다고 하시며
구체적인 결혼 시기를 봐주시겠다고 했다.
직접 카드 세 장을 뽑으시더니
2029년에서 2030년 사이라고 알려주셨다.
“자녀 계획도 있으신가요?
한번 봐드릴까요?”
알고 보니 이 선생님,
정말 편견 없는 분이었다.
편견이 있었던 건
오히려 나였다.
송이 뽑은 카드를 뒤집자
여자 셋이 마주 보고 웃고 있는 그림이 나왔다.
“딸이네요.”
송은 뛸 듯이 좋아했다.
우리가 아이를 낳게 되면
딸이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으니까.
시간이 다 되고,
선생님은 선물이라며
왕 카드 세 장을 내게 주셨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서는데,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미래를
살짝 들여다보고 나온 것처럼.
어젯밤,
뜨개질하고 있는 송 옆에
누워 있다가 말했다.
“나, 너랑 결혼하게 될 것 같아.”
고백인 듯
고백 아닌
고백 같은 말을 꺼내놓고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는데,
송이 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싶다기보단
얘랑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
그런 거 있잖아.”
“맞아.
우리 진짜 결혼할 것 같지 않아?”
“응.”
그러고는 송이
뜨고 있던 목도리를
내 목에 대보며 말했다.
“얼른 떠서 자기 주고 싶다.”
“내년 크리스마스엔 우리 같이 유럽에 있겠지?”
송은 대답 대신
조용히 실을 손에 감았다.
우리 둘 다, 그 미래를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리고 있었다.
송은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고,
나는 송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실 한 가닥이
조용히, 단단히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엔 분명 무언가가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