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을 정리하다,
오래전에 받은 편지 두 통을 발견했다.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사랑받았던 기록이었다.
나는 잠시 앉은 채로 그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손끝에 머물던 그 사랑이
지금도 여전히 따뜻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고, 조금 미안했다.
그 사람은
그 시절의 나를
이렇게 불렀다고 했다.
“그 애의 이름은 박에녹이기 때문에 ‘에녹아’ 혹은 ‘녹아’ 하고 부르면 된다. 근데 ‘녹이야’ 하고 나올 때가 있다. 조금 더 사랑스럽게 불러주고 싶을 때 그렇다.”
‘녹이야.’
그 이름 하나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
그 애는,
마음이 커질수록 더 조심스러워지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불안해진다. 균형을 찾고 싶어진다. 너에게서 조금 멀어진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 애가 거리를 두던 그 하루가
사랑을 숨기는 게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걸.
“속도가 무겁게 붙어버린 사랑이 과속방지턱에 턱턱 걸려서, 그래서 오늘 하루 평소보다 다가서지 못했다고.”
그 애는 나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사랑해서 멀어졌던 것이었다.
나는 그 진심 앞에서 늘 한 걸음 느렸다.
그 거리가 사랑 때문이라는 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
편지의 다음 장엔
조금 더 깊은 고백이 담겨 있었다.
“사랑스럽다는 마음 뒤에는 애처로움이 따라붙는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존재가 현실을 살아가는 게, 삶을 견뎌내는 게 문득 애처롭게 느껴져 버린다.”
“그래서 그 애가 사랑스러울 때 나는 ‘녹이야’ 하고 부르지만 부르고 나면 애처로운 마음으로 ‘너무 많이 사랑해’, 하게 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애가 느꼈던 진심의 깊이를.
그 애가 내 이름을 부를 때,
그건 단순한 호명이 아니었다.
이름 속에 다정함과 걱정,
사랑과 기도가 함께 묻어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 것 같다.
—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이 남긴 마지막 마음을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이 사랑이 끝나더라도 그 애의 날들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부디,
어디서든
따뜻하게 웃으며 잘 지내기를.
한때 나를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
한때 나를,
‘녹이야’라고 불러주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