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송이 우리 동네로 놀러 왔다.
먼 길을 지하철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며 왔다.
내가 나고 자란, 너무 익숙해서 더 조심스러운 동네로.
송은 나를 보자마자 안겼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두 팔을 다 감싸 안는 데 몇 초가 더 걸렸다.
“송아, 여기선 나를 꼭 언니라고 불러야 해. 알겠지?”
만나자마자 입단속부터 시켰다.
이 동네에서 나는, 나일 수 없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고,
우리 가족을 알고,
학교와 교회를 공유한 얼굴들이
골목 모퉁이마다 숨어 있는 동네다.
그 이틀 동안,
나는 밖에서 송의 손을 한 번도 잡지 못했다.
잡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사랑보다 시선이 먼저 떠올랐고,
그 시선이 내 안의 모든 반사신경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뽀뽀하고 싶어.”
송이 귓가에 속삭였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참아야 돼.”
서울이나 부산처럼,
우리가 아무 연고 없는 도시에서는 괜찮다.
누구도 우리를 모르는 거리,
우리의 과거나 관계를 묻지 않는 공간에서는
손을 잡고, 포옹하고, 뽀뽀도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카페 줄을 서면서도.
우리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처럼 굴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정서상 공공장소에서의 뽀뽀는
이성 커플에게도 아직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만 자라온 나는
사람들의 눈이 자꾸 신경 쓰인다.
하지만 유럽에서 오래 살아온 송은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보든 말든, 사랑이 생기면 표현하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해오는 사람.
그럴 때면 나는
조금 유러피안이 된 것 같기도 하다가,
곧 시선을 잃고 만다.
사랑받는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사랑을 숨겨야 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저 사람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민망함을 덮기 위해 툭 던지는 농담.
송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왜?”
“우리 뽀뽀하는 거 봤잖아.”
그러면 또, 아무렇지 않게 되묻는다.
“그게 왜?”
그 ‘왜’에,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입은 다물고, 시선만 흔들린다.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사람들의 얼굴을 훑고,
가게 유리창에 비친 우리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손은 그대로 송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자꾸 뒷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
—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레즈비언 단편 시놉시스만 줄기차게 쓰던 학생이었다.
하루는,
뽀뽀가 너무 하고 싶어진 두 여자가
사람 없는 골목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를 썼다.
그 시놉은 자전적이었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내가 겪고 있던 갈증의 기록이었다.
그 작품을 제출한 날,
중년의 남자 지도교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여자들도 성욕이 그렇게 많아?”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 말의 천박함도 문제였지만,
이 이야기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무지가, 오히려 더 절망스러웠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에서 여자 둘이 손 한번 마음껏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산과 눈치를 견뎌야 하는지를.
얼마나 많은 골목을 헤매야,
겨우 입을 맞출 수 있는지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는 동성 커플의 스킨십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나 오늘 여자 둘이서 뽀뽀하는 거 봤다?’
따위의 안줏거리가 될지언정,
우리가,
동성애를 하는 우리가
대한민국에 당신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송과 내가 어쩌면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조금은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동네에서 송의 손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내가 바꾸고 싶은 세계는,
아직 내 안에도 남아 있었다.
—
그날은, 엄마와 송이 처음 대면한 날이기도 했다.
송은 특유의 밝음으로 다가가
“안녕하세요!” 하고 환하게 인사했지만,
엄마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밤이 되자 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걸까?”
당황한 나는 황급히 설명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엄마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정도면 오히려 괜찮은 반응이라고.
너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직 낯설 뿐이라고.
그래도 송의 얼굴에는 실망이 내려앉아 있었다.
“예전 외국인 애인들의 부모님들은
널 어떻게 대해주셨어?”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송은 조용히 말했다.
“따뜻하게 안아주셨어.”
그제야 알았다.
송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얼마나 낯설고 조심스러웠을지를.
나는 밖에서 송을 안아주지 못한 만큼,
그날 밤, 송을 더 힘껏, 더 오래 안아주었다.
세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방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마음껏 서로를 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조금은 자유로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