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에세이> 미치도록 사랑해 본 적

by 박에녹



“자기는 나를 미치도록 사랑해?”

송이 물었다.


미치도록이라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사랑하지. 근데 미치도록은 아닌 것 같아.”


그날 나는 삐진 송을 달래느라

“파치도록 사랑해”, “솔치도록 사랑해” 같은 말을

끝없이 만들어냈지만,

그래도 ‘미치도록’만큼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나도 미치도록 사랑해 본 적 있다.

그게 어떤 사랑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지금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친구 림과 술을 마시며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림아, 나는 진짜 미치도록 사랑하면 여기가…

으— 하고 아파.”

나는 심장 언저리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나 그 느낌 알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하잖아.

난 그게 그냥 비유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

근데 나… 여기가 안 아픈지 꽤 됐어.”


“고장 났네.”


림은 지금 애인을 떠올리면

심장이 으— 한다고 했다.


정말 내 심장이 고장 난 걸까.



나는 유정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미치도록 좋았고,

미치도록 불안했고,

미치도록 설렜고,

미치도록 아팠다.


다신 없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물여섯, 스물일곱에 만나

서른, 서른하나에 헤어졌다.


유정과 헤어지고,

나는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은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유정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올 것만 같아서.


그 뒤로 몇 번의 연애가 있었지만

심장은 조용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거의 매일

유정이 나오는 꿈을 꾼다.


꿈에서 유정은

나를 반기지도,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 있게 해 준다.


나는 늘

유정이 다니는 길목 어귀에 서 있다.

그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오늘은 이 핑계로,

내일은 저 핑계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꿈속의 나는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마음으로 서 있다.


눈을 뜨는 순간

꿈의 장면이 너무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 다시 잠들고 싶어진다.

유정을,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보기 위해.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은

이렇게 잔재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어디선가 계속 깜빡거리는 흔적.


완전히 끝난 마음이 아니라

아직 닿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무언가.



유정을 사랑하던 그 시절에,

나는 가장 불안하고,

가장 서툴고,

가장 다치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만큼 가장 ‘살아 있음’을

정확히 느끼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그 감각을 잊지 못한다.


똑같은 깊이로,

똑같은 무모함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다시,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가끔은

유정을 사랑하며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이미 한 번 다 써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누구에게도

그만큼의 자리와,

그만큼의 무모함이

남아 있지 않은 건 아닐까.


어쩌면,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사랑이

가벼울 거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어떤 사랑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뿐.



“자기는 나를 미치도록 사랑해?”

송이 다시 물었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지 못한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한 사람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걸,

송도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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